걸망에담아온 산사이야기(7)-두륜산대흥사

승병 서산대사의 구국혼과 초의선사 다도가 머무는 곳

등록 2003.07.09 08:41수정 2003.07.1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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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산사는 새벽산사가 제격이다. 아무래도 낮 시간엔 많은 사람들을 조우해야하기 때문에 명상은커녕 한적한 시간을 가져보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낮 시간이 긴 한여름이지만 새벽 3시를 갓 넘긴 산사 주변은 온통 깜깜하기만 하다. 아스팔트 포장이 끝나고 발길에 툭툭 차이는 돌을 더듬으며 찾아가는 산사 쪽에선 이미 따그락 따그락 목탁 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새벽 산사에서 기원하는 목탁소리는 생각보다 멀리까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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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흥사에는 일주문이 두 개 있다. 매표소를 막 지나며 맞게되는 첫 번째 일주문이다. 단청되지 않아 투박한 느낌을 주며 커다란 글씨의 <두륜산 대둔사>란 편액이 걸려있다.

대흥사에는 일주문이 두 개 있다. 매표소를 막 지나며 맞게되는 첫 번째 일주문이다. 단청되지 않아 투박한 느낌을 주며 커다란 글씨의 <두륜산 대둔사>란 편액이 걸려있다. ⓒ 임윤수

깊은 산 속, 이렇게 컴컴한 주변이라면 무서움이 생길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덜 깬 잠의 무게가 뜸벙뜸벙 깜박이는 눈꺼풀을 더디게 하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가로등 빛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한다.

초입 매표소를 지나 30여 분은 올라온 듯 하다. 이른 시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울창한 숲 속은 마치 터널처럼 앞쪽으로만 눈길이 트일 뿐 위와 옆은 어둡기만 하다. 그런 녹음의 숲 터널을 걸어온 것이다. 장마철이라 넉넉히 흐르는 계곡의 물줄기 소리가 마음을 추스르게 한다. 피안교를 건너 두 번째 일주문을 지나니 가로등 불빛에 부도군이 보인다.

수십 기의 부도가 운집해 작은 부도 마을을 이루었다. 이 부도군 속에는 승병 서산대사의 고혼이 잠들어 있을 부도도 있음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 진다. 이쯤에서 잠시 발걸음 멈추고 부도군을 향하여 합장삼배하였다.

a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까지 가는 3km의 진입로는 빼곡한 나무들이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숲 터널다운 숲 터널을 보려면 대흥사엘 가면 된다. 새벽산사로 들어가는 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까지 가는 3km의 진입로는 빼곡한 나무들이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숲 터널다운 숲 터널을 보려면 대흥사엘 가면 된다. 새벽산사로 들어가는 길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 임윤수

부도군을 지나 한참을 그렇게 올라가니 저만치 가로등 속으로 해탈문이 보인다. 오욕칠정에 물들고 세태에 찌든 속세의 모든 업으로부터 벗어나 안락함과 평온함이 전제되는 불보살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이라고 생각하니 암흑의 긴 터널에서 빠져 나온 듯한 그런 기분이다.

컴컴한 저편에 경내를 돌아보고 있는 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아마 도량석을 하고 계신 모양이다. 목탁소리를 따라 금당천을 건너고 침계루를 지나니 대웅전 앞마당이다. 주변을 둘러보나 눈에 띄는 사람이 없다. 법당에서 예불을 올리고 있는 스님들만 계신 듯 하다.


고요함 속의 또 다른 고요함에 빠져든 기분이다. 넓은 공간이 텅 빈 듯 하더니 마음속에 뭔가가 차 오르는 기분이다. 뭐라고 할까? 오열 같기도 하고 서러움 같기도 하고 희열 같기도 한 그런 뭔가가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a 피안교 아래로 흐르는 계곡의 물결소리가 숲 터널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이 속세의 근심을 덜어줄 듯 하다.

피안교 아래로 흐르는 계곡의 물결소리가 숲 터널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이 속세의 근심을 덜어줄 듯 하다. ⓒ 임윤수

이슬인지 가랑비인지 알지 못할 뭔가가 자꾸 내린다. 법당에서, 추녀 밑에서 서성이듯 걸음을 옮기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주변이 밝아 온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선명한 빛을 맞이하는 그런 환희심이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세상에서 버려진 듯 그렇게 보낸 3시간이 마음에 넉넉한 여유를 가져다 준 듯하기도 하다.


아! 새벽산사여….
5시 50분이 지나니 대중들에게 아침공양을 알리는 타종이 시작된다. 뎅 뎅∼ 목탁소리가 맑고 경쾌한 음파로 귓전을 울리며 머리로 다가왔다면 종소리는 은은함과 푸근함으로 가슴에 다가온다.

주변은 이미 훤해지고…, 아직도 사람 하나 눈에 띄지 않는 산사를 뒤로하며 아래로 아래로 발길을 옮긴다.

a 두 번째 일주문 안쪽으로 부도군이 보인다. 첫 번째 일주문과는 건축형태도 다르고 단청도 곱게 되어있다.

두 번째 일주문 안쪽으로 부도군이 보인다. 첫 번째 일주문과는 건축형태도 다르고 단청도 곱게 되어있다. ⓒ 임윤수

대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로 13대 종사와 13대 강사를 배출한 명사찰이다. 경내에는 추사 김정희의 필치로 새겨진 현판, 서산대사의 위국충청을 기리는 표충사, 다성(茶聖)이라 일컫는 초의선사 동상, 성보박물관 등 사찰의 내력을 알려주는 유적들이 즐비하다.

대흥사는 주변의 풍광과 산세도 좋지만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켰던 서산대사와 다도문화를 부흥시켜 차 문화의 성인이라 일컫는 다성 초의선사 자취가 어린 곳으로 유명하다.

대흥사에 있는 표충사는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고 그의 선풍이 대흥사에 뿌리내리게 한 은덕을 추모하여 제자들이 1669년에 건립한 사당이라고 한다. 이조 22대, 집권 12년에 정조왕이 표충사라 사액 하였으며, 나라에서는 매년 예관과 헌관을 보내 관급으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고 한다.

a 수십 기의 부도가 운집해 부도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 부도군 속에 서산대사의 구국혼을 담고 있을 부도도 함께 있다.

수십 기의 부도가 운집해 부도마을을 이루고 있다. 이 부도군 속에 서산대사의 구국혼을 담고 있을 부도도 함께 있다. ⓒ 임윤수

해탈문을 들어서 오른쪽 정면에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연꽃 가득한 무염지와 초의선사 다도를 생각하게 하는 동다실이 있다. 이 앞을 지나 성보박물관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그곳에 표충사가 있다. 돌담 안쪽 가운데 사당이 있고 조사전과 2기의 표충비각이 세워져 있다.

1기는 <표충사건사적비>고 다른 1기는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로 두기 모두 높이가 3m가 넘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서산대사는 청허대사라고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청허는 서산대사의 호이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때 80노구를 이끌고 구국운동의 선봉에 나서 활약한 승병대장으로 선조가 <국일대선사교도총섭부종수교보제등계존자>란 긴 호를 내렸다고도 한다.

서산대사는 '낮이 되면 차 한 잔, 밥이 오면 한바탕 잠자네. 푸른 산과 흰 구름, 더불어 만사에 생멸(生滅)이 없음을 말하네' '승려의 일생하는 일은 차 달여 조주(趙州)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시로 선과 차를 표현하기도 하였다 한다.

표충사로 들어가기 직전 오른쪽엔 여여한 표정에 단지를 들고 있는 노구의 동상이 하나 있으니 이이가 바로 초의선사다.

a 목탁소리를 따라 금당천을 건너 바로 이 침계루를 통하면 대웅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목탁소리를 따라 금당천을 건너 바로 이 침계루를 통하면 대웅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 임윤수

초의선사란 누구인가? 한마디로 초의선사는 시(詩)와 글(書) 그리고 그림(畵)에 능통한 명인이었으며 다도를 정립한 다도의 성인이라고 한다.

다도(茶道)란 무엇인가? 가끔 잡지나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다도란 것은 까다롭기도 하고 엄청난 정성과 조심스런 몸 동작을 요구한다.

다성이라 일컫는 초의선사가 말씀하신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그 잘 끓인 물과 좋은 차를 적절히 조합하여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이었지 결코 유별나거나 남다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a 새벽산사의 대웅전은 고요함 그 자체이다. 매일 새벽 3시 30분부터 아침 예불을 올리고 있을 스님들의 일상이 불빛에서 느껴진다.

새벽산사의 대웅전은 고요함 그 자체이다. 매일 새벽 3시 30분부터 아침 예불을 올리고 있을 스님들의 일상이 불빛에서 느껴진다. ⓒ 임윤수

초의선사가 말씀하신 다도를 전해 듣고 나니, 일상에 쫓기고 넉넉하지 못한 마음으로는 범접하지 못할 문화중의 하나가 바로 다도라고 생각한 것이 편협한 사고 때문임을 알게 된다.

초의선사는 1786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5세 때 강변에서 놀다 탁류에 떨어져 죽을 고비에 다다랐을 때 부근에 있던 승려가 건져주어 살게 되었으며, 그 인연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 저곳을 다니며 지식을 얻고 선을 행하다 대흥사 동쪽 계곡에 일지암을 짓고 40여년 동안 홀로 생활하면서 다선삼매(茶禪三昧)에 들곤 하였다 한다.

초의선사 사상은 선사상(禪思想)과 다선일미사상(茶禪一味思想)으로 집약된다고 한다. 다선일미사상은 차와 선이 별개의 둘이 아니고, 시와 그림이 둘이 아니며, 시와 선이 둘이 아니라는 제법불이(諸法不二)로 이러한 사상이 바로 초의선사가 강조한 다도의 근본일 듯하다.

a 서산대사의 구국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으로 표충사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다.

서산대사의 구국혼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으로 표충사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다. ⓒ 임윤수

선사는 차에 성품은 사됨이 없어서 어떠한 욕심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보았고, 때묻지 않은 본래의 원천과도 같은 것이라고 하여 무착바라밀(無着波羅蜜)이라고도 하였다 한다.

1866년 세수 80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셨으며 대흥사에서 배출된 걸출한 13대종사 중 13번째 대종사이기도 한 분이 바로 초의선사라고 한다.

초의선사에 다도가 계승되고 있을 대흥사 동다실에서 차 한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굳게 닫힌 문이 열리지 않는다. 마음으로나마 두륜산 줄기를 흘러온 정수로 찻물을 끓이고 좋은 차를 넣어서 한 잔 마시는 것으로 족해야 했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찻물은 없었으나 혀끝엔 차 맛이 맺히고 코끝엔 차 향이 맴도는 듯 하다.

대흥사에는 이 외에도 많은 전각과 유물들이 있다. 가허루를 지나 들어가게 되는 천불전도 있고 대웅전 옆으로 명부전과 응진당 그리고 삼층석탑도 있다. 표충사를 들어가는 길목의 오른쪽에 있는 성보박물관엔 대흥사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고 대종사님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많은 성보들이 있다.

a 여여한 표정에 단지를 짚고 계신 이 분이 바로 다성 초의선사다. 초의선사가 말씀 하신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그 잘 끓인 물과 좋은 차를 적절히 조합하여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이라고 한다.

여여한 표정에 단지를 짚고 계신 이 분이 바로 다성 초의선사다. 초의선사가 말씀 하신 다도는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며, 그 잘 끓인 물과 좋은 차를 적절히 조합하여 마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생활>이라고 한다. ⓒ 임윤수

두륜산과 대흥사엔 사계절 내내 참배객과 탐방객이 줄을 잇는다. 2월이 지나면 겨울의 한기를 머금고 터지기 시작할 동백꽃망울을 보려는 성급한 상춘객들로부터 움트는 산사의 새싹을 보려는 인파까지 길게 이어질 듯하다. 지금처럼 녹음의 계절이 되면 숲 터널과 어우러진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사색의 피서를 맛보기 위해서라도 찾을 법하다. 가을이면 단풍과 어우러질 산세가 좋을 테고 겨울이면 기암에 피어난 설화와 삭풍의 바람이 발길을 당길 듯 하다.

숲 터널이라고 하는 곳은 꽤 여러 곳이 있다. 그러나 이곳, 대흥사 입구를 걸어보지 않고서 숲 터널을 이야기하는 것은 숲의 진모를 보지 못한 허풍이거나 과장일 듯 싶다.

고등학교 때 <솔바람 물결소리>란 책제목을 보고 이런저런 모습을 상상해 본적이 있다. 그런데 바로 대흥사 입구의 분위기가 바로 <솔바람 물결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땅 끝 해남에 자리하고 있는 대흥사는 역시 멀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러나 숲길다운 숲길, 숲 터널다운 숲 터널에서 <솔바람 물결소리>같은 분위기의 명상 시간을 갖고 싶다면 찾아가는 수고쯤 기꺼이 감수하라고 권하고 싶다.

a 차 한잔에 산사의 고요함과 맑은 분위기를 담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초의선사를 마주하듯 차를 마시다 보면 마음이 부자로 될 것 같은 전통찻집 동다실이다.

차 한잔에 산사의 고요함과 맑은 분위기를 담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초의선사를 마주하듯 차를 마시다 보면 마음이 부자로 될 것 같은 전통찻집 동다실이다. ⓒ 임윤수

대흥사에 있는 전통 찻집인 동다실에서 차를 한 잔 마시게 되든, 아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마음 만으로라도 차 한잔을 마시게 되면 찻잔에 띄워지고 여여히 피어날 초의선사 다도와 서산대사의 구국혼이 마음을 넉넉하게 해 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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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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