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려문 앞에서 강의를 하다 ②

등록 2003.10.15 07:48수정 2003.10.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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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수요일(8일)에도 그런 기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태안군 이원면 이원초등학교(교장 조한선)의 3학년과 4학년 어린이 30여명이 근흥면 두야리의 정려문으로 현장학습을 왔고, 이미 며칠 전에 강의 요청을 받고 약속을 했던 나는 오전 10시 30분 그곳으로 가서 1시간 동안 효행 강의를 했습니다.


먼저 정려문의 일반적인 의미, 근흥면 두야리 정려문의 특징과 최초 건립 시기 등을 설명한 다음 정려문이 세워지게 된 사연, 즉 효자 지시정님과 열부 소주가씨의 효열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효열정문의 주인공이신 지시정님과 부인 소주가씨의 금실은 매우 좋았던 것 같습니다. 금실 좋은 부부가 진심으로 효도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그들이 태안군 근흥면 두야리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살게 된 것은 선대이신 만주(萬柱)님의 이주로부터 연유합니다. '대동보'를 참조하면 만주님의 아버님과 형제분들의 터전이 천안과 공주 등지인 것으로 보아 만주 님도 천안이나 공주에서 태안의 근흥으로 이주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만주님은 늦게서야 겨우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그 아들이 바로 시정님이지요. 시정님의 아내인 소주가씨는 태안 토박이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소주가씨가 전국적으로는 매우 희성이지만, 특히 태안 땅에 많이 몰려 사는 성씨이기 때문이지요.

시정님은 1742(임술)년에 태어나서 1787(병오)년에 삶을 마치셨습니다. 그러니까 45년의 생애를 사신 셈이지요. 소주가씨의 탄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전해 내려오는 얘기로 보아 남편과 같은 시기에 '자진(自盡))'으로 삶을 마치신 것 같습니다.


그들이 평소 부모에 대해 어떤 자세로 살아왔는지, 그 효성의 속내는 짐작이 어렵지 않습니다. 1986년에 작고하신 저의 선친께서 지어 남겨놓으신 장시(長詩) <어느 정려문의 유래>속에 옛날 그 당시의 사정이며 실체적 상황이 상세하고 재미있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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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선친께서 시작품 속에 묘사하고 있는 이야기는 매우 서사적이고 소설적이리만큼 내용이 풍부하답니다. 물론 그 이야기는 집안 대대로 물려져 내려온 것일 테지만, 그것은 집안의 울타리를 넘어서 근흥면 두야리 온 마을에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였을 법도 합니다.


저의 선친은 조실부모한 탓에 집안의 정려문, 즉 당신 조상님들의 효열에 관한 이야기를 집안 어른들에게서보다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더 많이 그리고 상세히 들었음을 술회하신 적이 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는 매우 인간적인 체취가 느껴지는 따사롭고도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가 등장합니다. 선친 장시의 결말쯤에 등장하는 '단지(斷指) 수혈(輸血)'과 '자진(自盡)'에 관한 이야기보다도 시의 앞부분을 차지하는 그 에피소드에 나는 더 가치 비중을 둡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도 그 부분을 더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아이들에게 감동을 줄지 고심을 하기도 하면서, 어른들의 '운우지락(雲雨之樂)'과 관련하여 최대한 적절한 표현 방법과 용어를 찾아서 설명을 해주지요.

그 에피소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밭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던 아낙이 점심때가 되어 밥을 가지러 집으로 갑니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록 아낙이 돌아오지 않으니 남편은 허기진 배를 쥐고 연신 등성이 길을 보곤 합니다. 이윽고 함지박을 이고 나타난 아내가 가까이 오기 무섭게 남편은 불같이 화를 내며 아내의 머리에서 함지박을 받아 내리기는커녕 쇠스랑 자루로 종아리를 때리려고 합니다.

뒷걸음을 치는 아내의 호소에 동작을 멈춘 남편은 함지박을 받아 내려놓고 앉아서 아내로부터 점심 고리를 늦게 가지고 온 연유를 듣습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더니 아내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여러 번 큰절을 합니다.

아내가 남편의 점심 고리를 늦게 가지고 온 연유 부분을 내 선친은 장시 <어느 정려문의 유래>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근 농가 부식물의 대종을 이루는 산나물
그걸 캐 가지고 돌아온 아내
들일하는 남편의 점심 챙겨 가려고 서둘러 돌아왔건만
행여 노(老) 시부모님의 낮 주무심이라도 깨실까봐
살금살금 부엌으로 들어가는 착한 며느리
문득 솔깃 들리는 안방 안의 이상한 소리
무심히 듣던 며느리의 귓가가 금방 빨개진다
볼가에 부끄러운 웃음이 살짝 스친다
방안에서는 지금 노부부가 한창 즐겁게
유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 둘이서 즐겁게 누리던 雲雨之樂(운우지락)
그걸 지금 다시 불러 재연해 보는 것이다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한가로운 낮 시간에

상기되어 뛰쳐나오는 며느리
허둥지둥 물동이 이고 달린다
달리며 생각한다
오죽이나 진력이 드셨을까?
오죽이나 진력 드신 뒤 허탈도 하실까?
어서 소복해 드려야지!
얼른 옹달샘에 가 정(淨)한 물 한 동이 떠 이고 돌아오면서도
같은 생각뿐이다
어서 진력을 회복해 드려야지!
노인들만을 위해 아끼던 웁쌀 한 되
떠내다 밥 짓고
단 한 마리 남아 있는 씨암탉 잡아
국을 끓이노라니
저절로 시간이 아니 갈 수 있으랴

시부모님 그리 봉양하고
점심 챙겨 부랴부랴 달려왔건만
기다리는 건 남편의 노여움
휘두르는 건 쇠스랑 자루

허나 그 며느리에 그 남편
내 부모님을 至孝(지효)로 받드는 아내에게
백 번을 절한들 어떻고 천 번을 또 한들 어떠랴


그런데 두 사람의 그런 기이한 모습을 좀 떨어진 밭둑 너머에서 지켜본 사람이 있었지요. 그는 그 부부의 행동이 하도 이상하여 호기심에 이끌려 그들에게로 가서 그 연유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이야기를 낭첩에다 기록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효자 지시정 님과 열부 소주가씨 사후 극진한 효행(노부모 임종시의 단지 수혈, 노부모 임종 후 연이은 자진)이 세상에 알려질 즈음 고을에 새로 부임해 온 관장은 과거 밭둑 너머에서 그들 농민 부부의 기이한 행동을 보고 연유를 캐물어 낭첩에다 기록했던 그 나그네였다고 합니다.

그는 낭첩에 기록해 두었던 과거의 그 아름다운 일을 아직 보류해 두고 있었는데, 어느덧 세상을 떠난 농민 부부의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그 극에 달한 효행을 듣자 무릎을 치며 옛날의 일을 함께 기록하여 장궤를 올렸답니다.

저의 선친은 장시 <어느 정려문의 유래> 마지막 부분을 이렇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인하여 감영을 통해 장계가 올라가니 임금님은 嘉賞(가상)하시고 그 孝行(효행)을 (포)하시되 孝子(효자)와 烈婦(열부)로 旌(정)을 命(명)하시고 追贈加資(추증가자) 내리시니

嘉善大夫 兼 同知義禁府事(가선대부 겸 동지의금부사)
그 夫人(부인)에게 貞夫人(정부인)

功(공)은 세운 자에게 돌아가고
誠(성)은 萬世(만세)에 不滅(불멸)하더라


'영묘(英廟) 기유(己酉) 7월 일 명정(命旌)'이라는 말이 현판에 기록되어 있는 이 정려문의 두 분 주인공들 중에서도 나는 소주가씨 할머님에 대해서 더욱 주목을 합니다. 그 분에 대한 '열부'라는 지칭에는 두 가지 뜻이 결부되어 있지요. 지아비에 대하여 열녀(烈女), 시부모에 대하여 효부(孝婦), 합하여 열부라 칭하는 것인데, 그분이 점심밥을 가지러 집에 갔을 때의 일들이 내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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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시부모님의 낮잠을 방해라도 할까봐 부엌에서 조용히 밥을 지으러 할 때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 노인들이 옛날 젊은 시절의 운우지락을 재현이라도 하는 듯한 소리를 접했을 때 그분은 한 순간의 당혹감을 극복하고 노인들의 그 유희를 반겨합니다. 그리고 노인들의 회춘(回春)을 기대하고 갈망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만약 오늘날의 며느리들이 그와 똑같은 상황을 접한다면 어떤 마음을 갖게 될지, 나는 괜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개는 그것을 망측한 일로 보고 남편에게 가서 노인들이 주책을 부리거나 망령을 떤다고 하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소주가씨의 그 일은 별것도 아닌 아주 평범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없는, 참으로 예사롭지 않은 일일 것 같습니다.

나는 이 대목의 설명을 어린이들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충실히 들려줌으로써 어떤 감동을 안겨주고 싶은 열의를 매번 가지는데, 생각처럼 그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좀더 기술적인 표현이 필요할 것도 같고….

하여간 나는 최근에 또 한번 그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30여명 어린이들과 좋은 시간을 갖도록 기회를 베풀어주신 이원초등학교에 감사하는 마음 큽니다. 어린 나이에도 내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준 이원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좋은 기억거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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