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명암 관음보살님은 부안 해법을 아실까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29)-능가산 월명암

등록 2003.12.05 08:11수정 2003.12.0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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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덜었을 옹달샘은 정갈하다는 표현이 딱 좋을 만큼 깨끗하다. 덮여진 나무뚜껑을 여니 한 말(20리터)쯤의 물이 들어갈 정도의 동그란 항아리가 묻혀있다.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덜었을 옹달샘은 정갈하다는 표현이 딱 좋을 만큼 깨끗하다. 덮여진 나무뚜껑을 여니 한 말(20리터)쯤의 물이 들어갈 정도의 동그란 항아리가 묻혀있다. ⓒ 임윤수


어느 곳에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헬리콥터의 '타타타' 거리는 엔진 소리가 왠지 불안하게 들린다.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를 들어서니 전경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있고 하늘에선 한 대의 헬기가 지나가고 있다.

아주 우연히 그 시간에 헬기가 날아갈 수도 있으련만 왠지 공중을 선회하는 듯한 착각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부안 땅엘 들어서니 뉴스에서 접하였던 시위와 진압에 따른 격렬한 모습이 연상된 탓에 이유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몇 차례 부안을 다녀온 적이 있다. 내소사와 개암사를 찾아 들렸던 적도 있고 채석강을 찾느라 들렸던 적도 있었다. 올 봄, 새만금사업과 관련된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로 또 다른 시선 집중을 받고 있을 때도 들렸고 부안해변 마라톤대회에 참석하느라 들른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이렇게 불안감이 들지 않았다.

불안한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더 불안하니 이것이야말로 불안 중의 불안이 아닌가 모르겠다. 월명암을 들렸다 돌아가는 길에 매표소를 지나니 외딴집처럼 뚝 떨어진 음식점 주차장에도 전경버스가 진을 치고 있다. 한적한 곳, 가끔 지나는 차들이 고작일 반도의 구석까지 전경들이 들어와 있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고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니 차들이 읍내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a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월명암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이니 월명암이 보이나 봄부터 가을까지는 잎새에 가려 보이지 않을 게 뻔하다.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월명암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이니 월명암이 보이나 봄부터 가을까지는 잎새에 가려 보이지 않을 게 뻔하다. ⓒ 임윤수


작은 시골 읍내라 마땅히 대기할 장소가 없는 전경들은 구석진 외곽에 대기하다가 연락을 받으면 읍내로 출동을 하는 모양이다. 죄 없는 젊은이들이 다시금 상잔의 현장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해 진다.

왜 그렇게 한적한 곳에조차 그들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기에, 그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전이되어 그렇게 불안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안 IC를 나와 읍내를 지나는 30번 국도를 따라 31Km, 40여 분 달리니 월명암으로 오르는 남여치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를 지나 얼마가지 않아 가파른 비탈길이 시작된다.


유료 입장을 하는 곳이기에 길은 잘 관리되고 있는 듯하나 정말 만만치 않은 길이다. 가파른 경사도 경사지만 바닥에 깔려 있는 파석들이 자칫 발을 미끄러지게 하기 십상이다.

a 마당 앞 우뚝한 감나무엔 빨간 홍시가 그대로 달려있다. 일손이 없어 아직 거둬들이지 못한 것인지 산짐승의 먹거리로 남겨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빨간 홍시가 수묵화에 찍힌 채색처럼 산뜻함을 준다.

마당 앞 우뚝한 감나무엔 빨간 홍시가 그대로 달려있다. 일손이 없어 아직 거둬들이지 못한 것인지 산짐승의 먹거리로 남겨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빨간 홍시가 수묵화에 찍힌 채색처럼 산뜻함을 준다. ⓒ 임윤수


서두를 것 없이 나무 아래 융단처럼 넓게 펼쳐진 산죽 사이로 또렷한 산길을 따라 한 발 한 발 걷는다. 그렇게 걷다 갈증이 생길 무렵엔 옹달샘이 보인다. 이제 나무들은 완전히 겨울 채비를 한 듯하다. 계절에 따라 나무 껍질은 색을 달리한다. 관심 없이 보면 그게 그것인 듯 하지만 가을색 다르고 겨울색 다르다.


잎새를 다 떨군 나무들과 사철 푸른 소나무가 구릉 따라 곡선을 만들고 완만한 음영을 그려내니 조화로운 산색이 만들어진다. 흐르는 땀도 닦을 겸 멈추어 서서 내려다 본 산 아래 골짜기들이 입체적인 그림을 만들고 있다. 알록달록 화려하지 않지만 수묵화처럼 깊은 맛을 느끼게 하는 것이 겨울 산색이다.

그런 산길을 따르다 무심결에 도착한 옹달샘이 반갑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야 무심결이 될 수 있다. 조금이라도 서두르면 나무가 보여주는 겨울색도 볼 수 없고 헉헉거리느라 산사 찾는 재미가 반감될게 뻔하다.

많은 사람들이 갈증을 덜었을 옹달샘은 정갈하다는 표현이 딱 좋을 만큼 깨끗하다. 덮여진 나무 뚜껑을 여니 한 말(20리터)쯤의 물이 들어갈 정도의 동그란 항아리가 묻혀 있다.

a 부설거사의 딸인 월명의 이름을 따 월명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부설거사의 딸인 월명의 이름을 따 월명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임윤수


반쯤은 돌로 채워진 항아리엔 정화수(井華水)처럼 맑은 물이 조금씩 넘쳐 흐르고 있다. 바로 이 물 맛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라도 월명암을 오르는 길은 서두를 길이 아닌 듯싶다.

발걸음 재촉하다 보면 주변의 산세와 나무들이 들려 주고 보여 주는 많고 많은 법문과 감미로운 속삭임을 놓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음미하듯 맛보아야 느낄 수 있고 영혼까지 맑게 해 줄 물맛은 조급함에서 오는 갈증을 덮어버릴지 모른다.

지그시 눈감고 가슴 가득 물맛 담으며 가던 길 조금만 더 걸으면 능선에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면 갈림길을 만나게 되나 한 쪽에 출입금지표시가 되어 있어 길 헤맬 이유는 없다.

내리막길로 들어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월명암이 한눈에 들어온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이니 월명암이 보이지 봄부터 가을까지는 잎새에 가려 보이지 않을 게 뻔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월명암도 그저 그렇고 그런 산사 중의 하나에 불과한데 왜 "월명암, 월명암"하는지 알 수가 없다.

몇 걸음 더 걸어 월명암에 들어서게 되면 "와!"하는 감탄을 토하게 된다. 어디에 숨어 있다 어떻게 터진 것인지, 오밀조밀한 산길에 광명 쏟아지듯 갑작스레 전망이 탁 트인다. 멀리 보이는 산세가 몽실몽실하다.

a 흔치않게 재가불자 한가족 4명이 득도한 성지이기에 <사성선원>이라 한다. 이 사성선원은 득도한 일가족 4명의 불심을 기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인간의 근본이라 할 애틋한 사랑이 녹아있는 선원이다.

흔치않게 재가불자 한가족 4명이 득도한 성지이기에 <사성선원>이라 한다. 이 사성선원은 득도한 일가족 4명의 불심을 기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인간의 근본이라 할 애틋한 사랑이 녹아있는 선원이다. ⓒ 임윤수


밋밋하게 몽실 몽실한 게 아니고 동글 동글한 형태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바위가 동글동글한 게 아니고 산세가 동글동글하다. 변산반도의 군봉들이 한지에 그려진 산수화 같이 그렇게 월명암 앞에 몽실 몽실 솟아 있다.

마당 앞 우뚝한 감나무엔 빨간 홍시가 그대로 달려 있다. 일손이 없어 아직 거둬들이지 못한 것인지 산짐승의 먹거리로 남겨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빨간 홍시가 수묵화에 찍힌 채색처럼 산뜻함을 준다.

월명암 앞으로 나 있는 산길을 따라 계속 걷게되면 직소폭포를 지나 내소사에 들를 수 있다.

월명암은 대둔산의 태고사와 백암산의 운문암과 함께 호남의 3대 성지로 꼽히고 있다. 월명암은 여느 사찰들과는 달리 스님이 아닌 재가불자(在家佛子)인 부설거사에 의해 1300여 년 전인 신라시대에 창건된 절로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월명암의 창건에 얽힌 설화를 보면 너무 인간적이며 가족적이다. 많은 명찰들이 고승들의 깊고 큰 원력이 창건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면 월명암은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가족간의 진하고 따뜻한 혈육에 바탕을 두고 있다.

a 별다른 장비를 사용 할 수 없는 이곳에선 지게가 유일한 운반수단인 듯하다. 지게는 스님의 손때가 묻어 길이 잘 나있었다.

별다른 장비를 사용 할 수 없는 이곳에선 지게가 유일한 운반수단인 듯하다. 지게는 스님의 손때가 묻어 길이 잘 나있었다. ⓒ 임윤수


월명암을 창건한 부설(浮雪) 거사는 신라 때 사람으로 서라벌 남쪽에서 태어나 불국사로 출가해 원정선사를 섬기다 도반(친구)인 영조, 영희와 더불어 '법(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나게 된다.

법을 찾는 구도의 길에 오대산으로 가게 된 그들은 지금의 만경에 이르러 '구무원'이란 청신도의 집에 묵게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묵었던 구무원의 집 앞에는 하얀 연꽃이 피는 백련지(白蓮池)가 있었다.

구무원에게는 묘화라고 하는 딸이 한 명 있었는데, 묘화는 자신의 집에 머물며 이야기하듯 들려 주는 부설 거사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애달프게 울더니 부설과 결혼하기를 갈망하게 된다. 어찌된 일인지 묘화 아가씨는 부설과 부부가 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어 버리겠다고 막무가내로 부설에게 매달린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 구도의 길에 나섰던 부설로서는 보통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묘화의 간청이 너무도 진지하고 애절하여 쉽사리 떨칠 수도 없게 되었다. 부설 거사는 장고 끝에 도반인 영조와 영희를 먼저 떠나보내고 마음을 결정하기로 한다.

a 한 겨울 산사의 반찬이 될 무말랭이가 햇살에 말려지고 있다. 꾸둑꾸둑 마른 무말랭이가 별맛을 준다.

한 겨울 산사의 반찬이 될 무말랭이가 햇살에 말려지고 있다. 꾸둑꾸둑 마른 무말랭이가 별맛을 준다. ⓒ 임윤수


구무원의 집에 머물며 고심하던 부설 거사는 백련지에 만개한 연꽃들이 물위에 담담히 떠 있음에서 뭔가, 물에 잠겨 있으나 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을 보고 결혼을 하더라도 속세에 물들지 않으면 될 것이라는 점을 깨우치고 마침내 묘화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결정한다.

남녀가 결혼하니 자연스레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니 그들이 바로 아들 등운과 딸 월명(月明)이다. 가정을 꾸려 2명의 자식을 둔 뒤 부설 거사는 다시 수도에 전념하다 결국 일생을 마치게 된다.

평생을 구도의 길만 찾아다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탓에 부설 거사가 입적한 후 자식인 등운과 월명도 동시에 머리를 깎고 불자의 길을 따른다.

부설의 설법에 감동 받아 죽음조차 각오하며 결혼하기를 원했고, 결혼 후 남편이 다시 구도의 길을 가도록 기꺼이 마음을 열어 주었던 묘화 부인은 백십 세의 장수를 누렸다고 한다. 임종이 다가온 묘화 부인은 소유의 전재산을 내어 사원을 세우고 사원의 이름을 '부설원'이라 하니 월명암의 사기(史記)가 시작된다.

훗날 산문의 큰스님들이 암자를 짓고 여기에 부설 거사의 혈육인 두 자녀의 이름을 붙이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등운암과 월명암이다. 그러니 월명암은 일가족이 득도를 한 불교의 성지이자 징표인 셈이다.

a 마당 앞 커다란 나무에 엉클한 까치집이 서글퍼 보이지만 거기엔 까치들만의 사랑과 다정함이 있었다.

마당 앞 커다란 나무에 엉클한 까치집이 서글퍼 보이지만 거기엔 까치들만의 사랑과 다정함이 있었다. ⓒ 임윤수


월명암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만선각, 월상원과 묘적암 등 많은 전각이 있지만 제일 위쪽엔 사성선원(四聖禪院)이 자리잡고 있다. 이 사성선원은 득도한 일가족 4명의 불심을 기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인간의 근본이라 할 애틋한 사랑이 녹아있는 선원으로 생각된다.

월명암의 원래 법당 위치는 현재 불사중인 대웅전 자리였다고 한다. 월명암도 다른 절처럼 전소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조선시대에 와서 진묵대사가 중창하고, 철종 때 다시 크게 중창한다. 계속하여 우리 나라를 침탈하려는 일본군과 맞서기 위해 의병이 봉기하면서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일본군과 접전을 벌이는 도중에 소실되고 복구되는 역사를 밟게 된다.

<月明庵>이란 편액이 달려있는 관음전 뒤쪽에 불사중인 대웅전은 4년 전부터 주지로 주석하고 있는 천곡 스님이 원력을 세워 원래의 월명암 터에 법당을 불사중이니 머지않아 월명암은 원래의 터에 다시 서게되는 것이다.

'월명암'하면 낙조를 꼽는다. 그런데 월명암 낙조는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계절에 따라 석양길이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다. 하지를 전후한 여름에는 서해 바다로 일몰이 되어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지만 요즘 같은 겨울엔 석양길이 산중이니 마음에 그리던 낙조는 기대할 수 없다.

a 쌍선봉엔 두 개의 바위가 마치 신선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새만금도 위도도 한눈에 보인다.

쌍선봉엔 두 개의 바위가 마치 신선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새만금도 위도도 한눈에 보인다. ⓒ 임윤수


일몰의 장관인 낙조를 볼 수 있는 낙조대가 월명암의 뒤쪽이라면 그 우측엔 쌍선봉(雙仙峰:498m)이 있다. 두 개의 커다란 바위가 신선처럼 자리잡고 변산반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듯하다.

스님이 일러주는 대로 길을 찾아 쌍선봉에 오르니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다. 두 손을 뻗으면 하늘로 솟을 듯하고 두 발을 뻗으면 발 아래 군봉들이 예를 갖출 듯하다.

흐릿한 날씨 탓에 또렷하게는 볼 수 없으나 멀리 위도가 보인다. 시위에 참가한 부모와 진압에 투입된 자식이 상잔 아닌 상잔을 치르고 있는, 부안의 중심에 선 아픔의 섬 위도! 그 위도가 한 눈에 다가온다.

쌍선봉에서 바라본 위도와 새만금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자연과 세월에 순응하며 있던 그 자리에 아주 평화로운 모습으로 있다. 위도의 작은 모래알보다 더 짧은 삶을 살아갈 간사한 인간들이 잔꾀로 서로를 속박시키고 공멸(公滅)의 구렁으로는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a 흐린 날씨 탓에 또렷하게는 보이지 않으나 위도는 평화롭게, 그냥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흐린 날씨 탓에 또렷하게는 보이지 않으나 위도는 평화롭게, 그냥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임윤수


쌍선봉을 내려오다 다시 옹달샘가에 앉았다. 물맛 속에 부설 거사와 묘화 부인의 애틋하고 순결한 사랑이 녹아난다. 그리고 등운과 월명과 함께 하던 한 가족의 혈육애가 가슴에 담아진다.

평화롭게만 보이는 위도를 가운데 놓고 상잔(相殘) 아닌 상잔으로 많은 사람들의 살 맛을 강탈하고 국력 소모에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이 한 번쯤 쌍선봉에 올라 위도를 바라보면 문제 해결을 위한 지혜와 여유를 얻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냉수 먹고 정신차려"란 말이 있듯 월명암 오르는 산길에 있는 옹달샘 물은 시기심과 공명심에 들뜬 마음들을 씻어줄 듯하다. 산사 찾아가는 길에 자연이 들려주는 커다란 법문에 귀 한번 기울이면 화해와 화합의 실마리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월명암! 거기엔 부설 거사와 묘화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과 혈육의 끈끈함이 짙게 배어 있다. 변산반도가 한눈에 다 보이고, 모든 소리 다 들을 수 있다는 월명암의 관음보살님은 요즘의 부안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여쭈고 싶으나 여쭐 수 없음이 안타깝다. 진실을 알고 계실 관음보살님의 마음을 들을 수 있는 혜안이 없음을 한탄하며 능가산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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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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