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에서 깨달음을 얻은 절

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36)-보개산 각연사

등록 2004.01.27 10:19수정 2004.01.2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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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잘 정리된 겨울 밭에서 어릴 때 보았던, 방치되듯 눈 덮인 밭은 그저 기억일 뿐이었다. 같은 밭고랑에서도 양달과 응달이 확연히 구분된다.

잘 정리된 겨울 밭에서 어릴 때 보았던, 방치되듯 눈 덮인 밭은 그저 기억일 뿐이었다. 같은 밭고랑에서도 양달과 응달이 확연히 구분된다. ⓒ 임윤수

어릴 적 산골짜기 고향마을에 밤새 눈이라도 내려 수북이 쌓인 하얀 아침이면 덜 깬 잠에서도 어린 마음은 들뜨고 손길이 분주해졌다. 솔직히 지금도 그 짓을 재미로 했는지 아니면 정말 먹을 것을 구하느라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겨울이 다가오면 쪽 곧은 대나무나 싸리나무를 꽤나 많이 마련한다. 이렇게 준비된 나무들과 짚 그리고 촘촘하게 꼬아진 새끼와 노끈을 이용해 덮치기와 새 차꼬(족쇄)를 만들었다.


새 차꼬는 나무를 활처럼 휘어 탄성이 생기게 해 A자 형태로 만들어진 받침대에 활을 고정시킨다. 가름 막대와 당겨진 활줄 틈새에 먹이를 달아 참새나 멥새가 먹이를 먹으려 머리를 넣었으면 고였던 바늘이 빠지면서 활줄이 퉁겨 새의 목이 걸리게 만든 것으로 아주 간단한 형태로 되어있다.

사방이 온통 눈으로 덮여 있는 논둑을 삼태기 크기만큼 깨끗하게 쓸고 주변에 왕겨를 뿌려 놓으면 덮인 눈 때문에 먹을 것이 없어 벌판을 헤매던 새들은 금세 눈이 없는 곳으로 모여든다.

처음엔 조금 경계하는 듯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새 차꼬에 먹이로 달린 수수를 먹으려고 활줄 사이로 머리를 넣다가 목이 걸려 잡힌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한꺼번에 두 마리가 동시에 잡히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

a 그래 바로 이 모습이다. 소먹이로 쓰일 볏단이 그대로 남아있는 논에서 옛날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래 바로 이 모습이다. 소먹이로 쓰일 볏단이 그대로 남아있는 논에서 옛날 모습을 볼 수 있다. ⓒ 임윤수

팅∼하고 활줄 퉁기는 소리가 나면 거의 새 한 마리씩은 잡히니, 그 팅∼하는 소리에 놀라서 후루룩 날아가는 새들을 보고 잡힌 것을 알 수 있다.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 쏜살같이 달려가 활줄을 잡아당겨 잡힌 새를 꺼내고 다시 줄을 고여놓을 때쯤이면 또래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어린 마음에 개선장군이라도 된 듯 잡힌 새를 한껏 크다고 자랑하며 있지도 않은 자신만의 노하우를 그럴싸하게 떠벌려 대곤 했었다.


새 차꼬는 조금 간단한 반면 덮치기는 꽤나 복잡하고 덩치도 크다. 우선 영을 엮듯 볏짚을 이용하여 바닥을 만들고 굵직한 나무를 이용하여 커다란 활을 만든다. 활줄을 꼬아 탄성이 생기면 미리 만들어 놓은, 부채형태의 테두리에 거미줄처럼 엮어 만든 덫을 끼운다.

새 차꼬는 논둑의 눈을 쓸고 비스듬하게 꽂아야 했지만 덮치기는 눈 위에 그냥 놓기만 하면 된다. 가능하면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에 자리를 잡는데 이왕이면 춥지 않은 곳에서 지켜볼 수 있는 집 앞 텃밭이 좋았다.


덮치기 역시 배고픈 새들이 먹이를 구하려고 볏짚으로 된 바닥에 앉았다 덫 안으로 들어가 먹이를 주둥이로 쪼는 순간 살만 남은 부채 같은 덫이 덮쳐짐으로 새를 잡는 그런 도구다. 새 차꼬에서 잡히는 새는 목이 졸리기 때문에 죽기 십상이지만 덮치기에 잡히는 새는 산채로 잡히는 경우가 많았다.

a 새를 잡을 때 사용하던 덮치기다. 사진 속의 덮치기는 송판으로 되어있으나 짚으로 영을 엮듯 만들어 바닥을 만들었었다.

새를 잡을 때 사용하던 덮치기다. 사진 속의 덮치기는 송판으로 되어있으나 짚으로 영을 엮듯 만들어 바닥을 만들었었다. ⓒ 임윤수

경험이 없거나 손이 너무 얼었을 때는 덫을 열고 새를 꺼내는 순간 '포르르' 하고 새가 날아가 버리는 황당한 일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품안의 새도 놓쳐버리는 일'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하면 그것도 밀렵도구가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아주 당연한, 한겨울 산골 꼬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도구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내 것엔 왜 새가 잡히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손끝이 꽤나 야무지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에 엉터리로 만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 며칠 동안 죽어라 정성을 다해 열심히 만들어 친구랑 나란하게 놓으면 새들은 친구의 것에만 몰려들뿐 내것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에 친구에게 사정사정하여 자리를 바꾸어 놓으면 이놈의 새들이 조금 전까진 얼씬도 하지 않던 바로 그 자리, 내 것이 있던 그 자리에 놓여진 친구 것으로 다시 모여드니 정말 속이 상했다.

잘 잡는 친구는 하루에 10여 마리를 잡기도 했으니 먹을 것이 변변치 않던 시골 살림엔 아주 특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지만 먹거리로 사냥을 하였다기보다는 조금 특이한 놀이로 기억하고 싶다.

a 달그락거리며 추를 넘기면 거적(꺼치)이 만들어 졌다. 이렇게 겨우내 만들어진 거적은 농사에 긴요하게 쓰였다.

달그락거리며 추를 넘기면 거적(꺼치)이 만들어 졌다. 이렇게 겨우내 만들어진 거적은 농사에 긴요하게 쓰였다. ⓒ 임윤수

기억에 또렷한 어릴 적 겨울나기를 생각하며 산골길을 따르다 보니 길옆으로 반듯하게 정리된 밭고랑이 다시금 옛 겨울을 떠올리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눈 덮인 들판은 평온 그 자체다.

시설농업이란 게 없었던 그때의 산골 겨울은 한가로울 수밖에 없다. 땅이 꽁꽁 얼었으니 언 땅이 녹을 때만을 기다리는 게 시골농부들의 겨울나기일지도 모른다. 낮에는 땔감을 마련하느라 낫을 갈아 지게에 꽂고 뒷산을 오르는 날도 있지만 매일은 아니다. 동네 사랑방에 모여 멍석을 만들고 거적이나 가마니를 치기도 했지만 가끔은 먹거리를 내기로 화투를 치는 것도 보았다.

요즘은 카지노니 뭐니 하는 휘황찬란한 도박장을 드나드는 사람들, 혹은 점 1000이니 뭐니 하며 고스톱을 치는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지만 담배 가치(개피)내기로 '육백'이나 '뽕'이라고 하는 화투를 쳤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동네 어느 집에서든 밤참을 마련해 준다. 숭숭 썰린 신김치를 넣어 끓인 칼국수일 때도 있고 가을에 주어다 놓은 도토리로 만든 묵일 때도 있었다. 하여튼 산골의 겨울은 눈과 함께 조용하게 깊어가고 소리 없이 봄을 맞는 듯하였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밭은 봄까지 그냥 눈만 쌓인 허허 벌판일 뿐이었다. 인력으로는 어쩔 수 없을 만큼 꽁꽁 얼어버리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시설농업이 아니더라도 트랙터를 이용하여 얼마든지 겨울 밭갈이는 해 놓는 모양이다.

a 설날 각연사는 조용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사진 속 보리수나무를 윙윙거리게 만들고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지만 비로자나불의 서광이 느껴졌다.

설날 각연사는 조용했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사진 속 보리수나무를 윙윙거리게 만들고 몸을 웅크리게 만들었지만 비로자나불의 서광이 느껴졌다. ⓒ 임윤수

태성마을을 지나 계곡을 따라 10리쯤 들어가는 길은 눈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콤바인 궤도바퀴를 이용해 눈을 치울 수 있어 눈이 오면 10리 길눈을 말끔하게 치울 수 있다고 한다.

차 한 대 들어갈 넓이에 포장까지 되어 있지만 산 따라 물 따라 만들어진 각연사 가는 길은 천수답 논두렁만큼이나 구불구불하다. 하늘만 뻐끔할 뿐 사방이 온통 산이다. 봉우리에 그늘진 곳엔 허연 눈들이 음영을 또렷하게 강조하고 있다.

일주문이니 사천왕문이다 해서 거쳐야할 문 하나 없이 곧장 경내까지 들어가니 양지바른 곳에 요사채가 있다. 요사채와 작은 둔덕을 이룬 높이에 대웅전과 비로전이 있고 대웅전 뒤로 삼성각이 있다. 요사채와 대웅전 가장자리엔 범종과 법고 그리고 운판(雲版)과 목어(木魚) 등 사물이 걸려있는 전각이 있다.

삼면이 산이다 보니 어느 전각하나 배경으로 멋진 겨울 산 하나 두르지 않은 게 없다. 이리 봐도 산자락 저리 봐도 산자락이다.

a 대웅전이 한껏 햇살을 받으며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대웅전 좌측으로 보이는 전각은 삼성각이다.

대웅전이 한껏 햇살을 받으며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대웅전 좌측으로 보이는 전각은 삼성각이다. ⓒ 임윤수

설날인데도 첩첩산골 각연사에선 염불하는 소리가 들리고 법당 댓돌 위엔 대여섯 켤레의 신발들이 나란히 놓여져 있다. 차례를 지내고 정월 초하루를 넘기지 않고 절을 찾은 불자들의 지극함이 느껴진다.

햇볕이 잘 드는 양달쪽은 눈이 녹았으나 그렇지 않은 응달엔 눈이 그대로 있다. 간간이 불어오는 골짜기 바람이 윙윙거리며 비로전 앞 커다란 보리수 나무 가지를 흔들고 몸을 웅크리게 한다.

각연사는 괴산팔경의 하나로 지방유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어 100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고찰이다.

충북 북부지역인 괴산군 칠성면 소재 보개산과 칠보산 그리고 덕가산으로 둘러싸인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는 각연사는 군내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어 국사책에도 나오던 명찰이다.

법흥왕이 호국불교를 강조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있던 신라시대에 유일대사라는 분이 절을 지어 부처님을 모시려고 현재 각연사 산너머인 쌍곡리 사동에 터를 잡고 목수들을 모아 불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a 산짐승(개 발자국인지도 모르지만)들도 새벽 도량석을 돌았는지 절 뒤 채마전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산짐승(개 발자국인지도 모르지만)들도 새벽 도량석을 돌았는지 절 뒤 채마전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 임윤수

목수들은 부처님을 모시고자 하는 대사의 불심에 감화되어 정성껏 아름드리 재목을 다듬으며 절을 세우기 위한 불사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다음날이면 수북하게 쌓였던, 재목을 다듬느라 생긴 톱밥과 대팻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자 대사는 기이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대사는 밤새 톱밥과 대팻밥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연유를 알아보기 위해 며칠을 새벽 일찍 일어나 작업장 주위를 살펴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디에선가 수백 마리의 까마귀들이 날아와 톱밥과 대팻밥을 입에 물고 사라지는 것을 대사가 보게 되었다.

허겁지겁 까마귀의 뒤를 쫓던 대사는 산 깊은 곳에 이르러 그만 까마귀 떼를 놓치고 말았다. 참으로 괴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리. 다음을 기약하며 대사는 더 이상 쫓기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다 까마귀가 물고 가다 떨어뜨린 톱밥을 발아래서 우연이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사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발길을 돌려 차분한 마음으로 그 흔적을 따라가니 물안개가 몽실몽실 피어나는 잔잔한 연못에선 그 동안 없어졌던 톱밥과 대팻밥이 연꽃처럼 하얗게 떠 있었다.

a 연못에서 건져낸, 보물 433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진 비로전이다. 이른 시간 새벽공기를 가르며 도량석을 돌았을 스님들의 행적이 눈 위에 발자국으로 남아있다.

연못에서 건져낸, 보물 433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진 비로전이다. 이른 시간 새벽공기를 가르며 도량석을 돌았을 스님들의 행적이 눈 위에 발자국으로 남아있다. ⓒ 임윤수

대사가 연못 근처로 다가가자 톱밥이 떠있는 연못에선 한 줄기 서광이 비추기 시작하였다. 연못에서 서광이 비추는 것을 신비롭게 생각한 대사가 조심스레 연못 속을 살피니 연못 안에는 진좌한 석불이 미소를 띠고 있는 게 아닌가?

합장 삼배 후 정신을 가다듬은 대사는, 이곳에 절터를 잡으라는 부처님의 계시라고 생각하고 사동에 짓던 불사를 중단하고 사람들을 이곳으로 데려와 연못 속에 진좌하고 있던 비로자나불을 조심스럽게 건져내고 연못을 메워 창건한 절이 지금의 각연사라고 한다.

그리고 '연못에서 깨달음을 얻은 절'이라는 뜻의 각연사(覺淵寺)를 절 이름으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비로전 터가 메워진 연못으로, 절을 짓느라 메웠기에 볼 수는 없으나 커다란 연못이 있었음을 반증이라도 하듯 각연사에는 사시사철 물이 아주 풍부하다고 한다.

a 지권인을 하고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이 보인다. 비로전 내에 걸려있는 연등은 요즘 보기 드문 한지로 만들어져 있어 마음을 정갈하게 해 주었다.

지권인을 하고 있는 석조 비로자나불이 보인다. 비로전 내에 걸려있는 연등은 요즘 보기 드문 한지로 만들어져 있어 마음을 정갈하게 해 주었다. ⓒ 임윤수

보물 433호로 지정된 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은 각연사를 찾는 이에게 자비로운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비로자나불을 의미하는 지권인, 양손을 가슴 앞에 올려 집게손가락만 똑바로 세운 왼손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오른손 엄지가 왼손 집게손가락 끝에 맞닿도록 한 모양으로,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는 하나임을 의미한다는 수인(手印)으로 찾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묵언의 설법을 하고 있다.

설날 각연사를 참배하고 계곡을 내려오다 보니 다시금 옛 생각이 떠오른다. 해가 바뀌었으니 작년이 된 2003년 '법연'이란 법명과 함께 수계를 받았다. 불자로 입문하니 최소한 5가지를 지키겠다는 오계 서약식을 하는데, 그 첫 번째가 '생명을 존중하고 억압하거나 손상하지 않으며 죽이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두 번째는 아낌없이 베풀며 결코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지 말라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결코 사음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네 번째는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하며, 다섯 번째는 술에 취해 마음을 어지럽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a 아침저녁으로 골짜기를 벗어나 법계(法界) 중생을 위해 울려 퍼질 범종과 법고 그리고 운판과 목어 등 사물이 보인다.

아침저녁으로 골짜기를 벗어나 법계(法界) 중생을 위해 울려 퍼질 범종과 법고 그리고 운판과 목어 등 사물이 보인다. ⓒ 임윤수

솔직히 이 다섯 가지를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지킬 자신은 없다. 그러나 가끔 되뇌며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덜 사악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듯하니 수계를 받은 게 헛된 일만은 아닌 듯하다.

비록 그것이 시대의 배경이었든, 기억에 희미한 지나간 추억이든 배고픔을 달래고자, 어떻게든 엄동설한 추위에서 살아나고자 먹이를 찾는 새들의 산목숨을 앗으려고 안달이었던 꼬마시절이 발아래 아삭이는 눈처럼 마음에 밟힌다.

덧붙이는 글 | 각연사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 - 증평IC - 36번 국도 - 도안 삼거리에서 우회전 - 34번 국도 -괴산 - 쌍곡 계곡 입구에서 직진 - 태성마을 삼거리 - 우회전 - 농로 4.7km -각연사

덧붙이는 글 각연사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 - 증평IC - 36번 국도 - 도안 삼거리에서 우회전 - 34번 국도 -괴산 - 쌍곡 계곡 입구에서 직진 - 태성마을 삼거리 - 우회전 - 농로 4.7km -각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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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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