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있는데, 돈이 없어 죽습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의 희망찾기

등록 2001.06.28 18:21수정 2001.06.29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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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벡 신드롬 "모든 환자들이 글리벡(Glivec)을 원해요"

6월 28일, 마포구 도화동에 위치한 백혈병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모임인 '새빛누리회' 사무실에서는 오전부터 전화벨이 쉴 새없이 울렸다.

전화의 대부분은 신약 글리벡에 대해서 묻는 전화였다.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은 백혈병은 물론, 각종 암과 질병에 혹시나 글리벡이 치료효과를 보이지는 않을까 궁금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수화기를 든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글리벡이 어떤 약일까?

글리벡은 스위스의 제약회사 노바티스가 1999년에 개발한 새로운 종류의 먹는 항암제이다. 기존 항암제가 암세포는 물론 정상세포까지 공격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던 반면, 글리벡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원인인 비정상 단백질 'Bcr-Abl'만 선택적으로 억제, 암세포 성장의 신호전달체계를 차단하는 작용을 하는 약이다.

글리벡의 1차 임상실험 결과, 인터페론 주사 치료에 반응하지 않은 환자의 98%에서 백혈병 세포가 완전 또는 부분적으로 제거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전립선암과 소세포성 폐암 등에도 효과가 입증돼 임상실험이 진행 중이다.

글리벡은 부작용에 있어서도 내약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드러났는데, 구토, 근육통, 부종, 발진, 설사, 두통 등의 가벼운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며, 간질환, 출혈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은 3% 미만이다.

글리벡은 현재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어 27일부터 전국의 종합병원에서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에게만 원내투약 치료제로 공급되고 있다.

식약청은 6월 20일 글리벡의 국내 시판을 허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7월 중순쯤에는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시중 약국에서 글리벡을 구입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러나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글리벡의 시판을 앞두고 웃기는커녕 울고 싶은 심정이다.


한 캡슐 2만 5천원, 하루 10만원, 한달 3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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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빛누리회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모임' 강주성 씨
ⓒ 배을선
한국 노바티스사는 국내에서 시판할 글리벡의 가격을 전세계적으로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스위스 본사의 방침에 따라 미국 출시가를 기준으로 책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국내 글리벡 가격은 1캡슐당 약 2만 5천원 정도에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백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하루에 4캡슐의 글리벡을 복용해야 하니, 하루에 10만원, 한 달 약값으로 30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약값만 한 달에 300만원.
백혈병 환자들은 개인의 약값으로 지불하는 300만원은 물론, 병원에서 받는 외래 진료 및 기타 비용 등을 합쳐 보통 월급쟁이 회사원의 2~3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감수해야 한다. 너무 비싸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소득수준이 낮은 환자와 가족들은 아예 '약을 팔지 말라'고 말하는 실정이다.

일부 환자들은 각 국가의 경제 사정이 다른 만큼 약의 가격도 국가마다 다르게 책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으나, 이는 환차익을 노린 국제적 글리벡 사재기 행각을 일으킬 수 있어 타당성을 잃었다.

글리벡은 완치효과가 있는 약이 아닌 이상 장기복용해야 하며, 한 달, 일 년, 아니 평생을 먹어야 할지 모르는 약값에 환자들은 오히려 희망을 잃고 있다. 글리벡이 나오기 전에는 '약이 개발될지도 모를 희망'을 안고 살았지만 지금은 약이 있어도 비싸서 먹지 못하는 실정이 되었다.

'새빛누리회 만성공수성백혈병 환자모임'의 강주성 대표는 "소득수준이 낮은 집안의 가장이 백혈병에 걸리면, 아내는 간병을 하고 할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는 상황"이라며,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된 약값 때문에 일부 환자들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파산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환자들이 글리벡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이유는 보험. 환자들은 글리벡을 하루빨리 의료보험 적용대상 의약품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험 적용으로 글리벡을 구입할 경우 성인 환자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150만원 선이며, 18세 미만의 미성년 환자들의 경우 60~70만원 수준이다.

한국 노바티스사는 환자들의 약값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글리벡에 대한 건강보험등재신청을 29일 안으로 보건복지부에 제출, 빠른 시일 안에 보험적용을 받게 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악화로 당분간 새로운 의약품에 대해 가능한한 보험 적용을 미룰 방침이며, 글리벡이 보험적용대상 의약품이 될지는 8월에서야 고시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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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열 씨
ⓒ 배을선
지난해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 진단을 받은 이승열(22) 씨는 현재 인터페론 주사로 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독성과 부작용이 굉장히 심하다.

인터페론 주사가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몰라요." 인터페론 주사로 치료를 받으면서 견뎌내기 어려운 고통을 이겨내는 것에 비하면 먹는 약 글리벡은 환자들에게 절대적인 희망이다. 백혈병 환자들은 그들의 희망을 정부가 저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강주성 대표는 "1000명 이하의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에게 보험을 전면 적용하는 것은 감기 등의 증상으로 보험적용을 받는 환자들보다 더 미미한 수치가 될 것"이라며, "재정악화라는 이유로 글리벡을 보험적용대상에 넣지 않는 것은 백혈병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거리로 내몰고 희망을 잃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보험적용 안에서 안정적으로 치유될 수 있도록 법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란 골수에서 초기 미분화한 조혈모(造血母)세포(피를 만드는 원시세포) 등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악성 종양으로 백혈병에 걸린 사람들에게서는 보통 사람들의 몇 십, 몇 백 배의 백혈구가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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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수이식 포스터
ⓒ 새빛누리회
백혈병에 걸린 환자들은 초기 발병 시기와 원인을 알지 못한 채, '만성기 → 가속기 → 급성기'의 세 시기를 지나는데, 급성기 환자의 대부분은 3~6개월 내에 사망한다. 환자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의 순간을 늦추기 위해 골수이식수술과 인터페론 주사라는 치료방법에 의지해왔다.

자기 자신의 조직과 맞는 골수를 찾는 일은 매우 힘들다. 가족, 특히 형제 자매간 같은 골수를 가지고 있을 확률은 보통 4분의 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찾아질 확률은 2만분의 일 이상에 해당한다.

그러나 완치가 가능한 유일한 치료법으로 보이는 골수이식수술은 백혈병 환자의 15~20%의 환자에게만 적용되며 20% 정도의 높은 치사율을 기록하고 있다.

또한 수술비용도 몇 천만원부터 1억원 대를 호가하며 수술 후 재발률도 30% 선으로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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