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사람의 덕성

방민호의 <문화칼럼>

등록 2001.09.04 02:06수정 2001.09.04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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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지역차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10년 전쯤 일이다. 지역 감정의 시발점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했다. 누군가는 이승만 때부터라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박정희 때부터라고 했다. 이처럼 지역 차별이나 감정의 원인을 동시대로 돌리는 논자가 있었는가 하면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 이도 있었다. 나 자신 심히 궁금했다.


1년 전쯤이던가. 차령 이남 사람을 등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왕건의 '훈요십조'가 그 스스로 남긴 것이 아니며 그보다 훨씬 후대에 고려 정치권력의 재편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변질된 것임을 밝히는, 유인촌 나오는 텔레비전 방송 '역사스페셜'을 흥미롭게 시청한 적이 있다.

내가 이중환의 '택리지'를 살펴본 것은 그보다 몇 년 전 일이다. 우울한 기억이다.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호남 사람 심성을 비판적으로 보는 내용이 있다는 말을 듣고 구해 보았다. 과연 그러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지역 차별은 죄악이라는 내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이중환은 소위 말하는 지식인이고 넓게 보면 실학파에 속한다는 사람 아닌가. 그런데 그 시대에 통용되던 관념을 그대로 인용해 놓으면 그만이라는 말인가. 지식인은 때로 대중의 통념에 반함으로써 자신을 고립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현상을 현상대로 소개함이 실제적인 학문을 위한 진일보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현상의 배후에 놓인 원인을 밝혀 그 허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학문하는 사람의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다.

충청도 사람은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고 한다. 글쎄 그럴까. 나는 충청도 사람이다. 친가·외가 가릴 것 없다. 말 느리고 행동에 조심하는 빛이 있고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음은 충청도 사람의 특징이라고 한다. 그러나 충청도 사람은 의뭉스러워 믿을 수 없고 외관과는 달리 성미 급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문학인들 모일 때 더러 농담으로 "어이, 자민련들 나와 사진이나 찍세" 하는 말이 나온다. 이문구니 신경림이니 하는 분들이 모두 그 예의 '자민련'이다. 나도 '자민련'이다. 그렇게 영남·호남·충청으로 갈린 오늘의 한국정치를 짐짓 풍자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뒷맛은 씁쓸하기만 하다. 가끔 경상도 출신 문인들 모이는 모임 있다는데 충청도 사람도 모이자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가 웃을 일이다. 문학도 정치를 해야 하는가? 문학인도 정치권 닮아야 하는가?


설왕설래해도 충청도 사람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나쁘지만은 않다. 나는 그것이 불만스럽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대개 갖고 있기 마련인 온갖 심성 다 갖고 있으면서 꼭 점잖은 척 선한 척 한다. 그러다 보니 인구는 많지 않아도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꼭 한몫씩 해내곤 한다.

더 생각해 보면 충청도 사람 탓할 일만도 아니다. 오늘날의 지역 패권 정치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끈끈이주걱에 달라붙어 허우적거리는 파리·모기들이고 통발에 빠져 아무리 발버둥쳐도 익사를 면할 길 없는 개미 같은 존재에 불외하다.


지역으로 나뉘어 반목하면서 사람수로 패권을 판가름하는 이 추잡한 정치 현실은 언제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그때까지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민주적 덕성을 얼마든지 불신해도 될 것이다. 자기에게 과도하게 경사된 인식이란 언제나 자기에게 속하지 않은 이를 억압하게 마련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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