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지를 살피는 사람들

등록 2002.01.27 20:05수정 2002.01.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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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월의 마지막 주일은 천주교회에서 '사회복지주일'로 지내는 날이다. 사회복지주일은 '구라(救癩)주일'로부터 유래한다. 한국천주교는 세계교회의 '구라사업'에 발맞추어 1952년 서울교구에서 이경재 신부를 구라사업 전임자로 임명하고 <성 나자로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케 한 것을 계기로 전국 각 교구와 수도회에서 본격적으로 나병 퇴치사업과 나환자들의 생활을 돕는 일을 전개해 왔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나라의 가톨릭 구라사업은 <한국가톨릭나사업가연합회>를 구심점으로 회원 기관 12개소, 봉사수도회 12개소, 나병불구자보호시설 2개소, 외래진료소 및 요양원 7개소를 운영하고, 이동진료반 5개 팀이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 38개 나환자 정착마을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천주교회는 1961년 주교회의의 결정에 따라 매년 1월 마지막 주일에 나환자들을 돕기 위한 '2차 헌금'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다. 또한 주교단은 1968년 1월 '세계 나병의 날'을 맞아 매년 1월 마지막 주일을 한국의 구라주일로 정하였다.

그 구라주일이 사회복지주일로 바뀐 때는 1991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구라주일이 사회복지주일로 바뀐 것은 구라사업의 안정적인 상황과 함께 한국천주교회의 사회 구호 및 복지사업의 확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사회복지주일의 출범과 함께 교구에 따라서는 교구청에 사회복지국이 설치되기도 하고, '사회복지회비(기금)' 모금 사업이 전개되기도 했다.

전국의 모든 교회에서 해마다 1월 마지막 주일에 사회복지주일 2차 헌금을 하는 것 외에도 교구별로, 또는 교회별로 별도의 사회복지회비를 모금하는 것은 교회 발전의 좀더 확실한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가 다니는 태안교회가 속한 대전교구의 경우 양로원 6개소, 아동보호시설 5개소, 장애인보호시설 5개소, 무료급식소 2개소, 교도소 재소자들과 미혼모들을 돌보는 시설 2개소와 상담소 2개를 교구청의 '사회복지회'에서 관장 운영하고 있으며, 관련 산하단체인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 <한사랑 나눔회>, <사랑의 봉사회>가 적극적으로 봉사 활동을 펴고 있다.


그리고 태안교회의 경우 11대 주임 사제인 현 김종기(세자 요한) 신부가 부임한 1999년 초에 구호 봉사단체인 빈첸시오회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태안교회 빈첸시오회는 현재 9명의 활동회원과 매월 일정 금액의 회비를 내는 90여 명의 명예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한번의 사회복지주일인 오늘 태안교회에서는 빈첸시오회의 명승식(바오로) 회장이 아침미사와 본미사와 저녁미사에 모두 참례하면서 세 번이나 강론을 했다. 천주교회에서 평신도가 미사 시간에 강론을 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매년 11월 셋째 주일인 '평신도주일'에 사목회장 등이 강론을 하는 것은 거의 일반화된 것이고, 7월 셋째주일인 '농민주일'에 농민들이 도시 성당들의 초청 형식으로 가서 강론을 하는 예와 비정례적인 경우가 극소수 있기는 하다. 그런데 사회복지주일에 관련 봉사 단체의 회장이 사제 대신 강론을 한다는 것은, 교회 주임신부의 사회 봉사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느끼게 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태안천주교회의 빈첸시오회 회장 명승식 씨는 34살 먹은 노총각이다. 안흥을 끼고 있는 근흥면사무소에 근무하고 있는 지방행정공무원이다. 그는 빈첸시오회가 생기기 전인 청년회장 시절부터 사회 구호 봉사 활동에 남다른 열의를 보였다. 교회에 다니는 목적이 효율적으로 사회 구호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내리 3년 동안 빈첸시오 회장이라는 큰 짐을 지고 있는 그는 강론에서 우선 지난 한 해 동안의 빈첸시오회 활동 사항들을 대략적으로 보고했다.

"저희 빈첸시오회는 15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개별적으로 돕고 있으며, 고아의 집인 <덕산 신생원>, 노인복지시설인 전의면의 <요셉의 집>과 <샌뽈양로원> 등 3곳의 복지 시설에 대하여 물질 지원과 봉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관내 할아버지 할머니들께는 매주 방문을 하면서 김치 등 부식을 전달해 드리고, 집안 청소, 옷가지와 이불 세탁, 말벗 되어드리기, 손톱 발톱 깎아드리기, 안마해 드리기 등을 하고 있습니다. 친할머니 친할아버지처럼 대해 드리면서 불편하신 사항들을 찾아서 해결해드리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노력 봉사들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먼 거리의 시설들에 대해서는 주기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려워 매달 일정 금액을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2000년도에 쓰고 남은 금액 169만원, 90여 명의 명예회원이 내준 543만원, 비밀헌금 92만원, 본당 지원금 450만원, 합 1254만원을 가지고 일 년 동안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형제 자매님들께서 '이웃 사랑'의 이름으로 내주신 금액과 본당 지원금으로 저희는 매주 또는 매월, 그리고 명절 등에 총 대상자 19명과 4개 시설에 대하여 총 600차례 이상을 방문하면서 시설 지원금 234만원, 물품 구입 지원 160만원, 부식 구입 지원 461만원, 생활비 보조 170만원을 지출하였으며…"

그러면서 그는 참으로 소중한 돈이기에 한푼도 헛되이 쓰지 않으려고 애썼으며, 가난한 사람들과 꼭 필요한 곳을 위해, 주님의 사랑을 베푸는 일에 물질과 시간을 쓰고 땀을 흘렸음을 감히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1700여 명의 신자들을 가진 우리 교회에서 빈첸시오회의 활동회원이 고작 9명에 불과하고, 일정 금액의 회비를 내는 명예회원이 100명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참으로 우리가 반성해야 할 사항이라고 말해 많은 신자들에게 숙연한 기분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자신이 만나고 도운) 여러 가지 형태의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겪은 고초와 안타까움들을 세세히 설명했다. 신자들 중에는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많았다.

글의 분량 때문에 명승식 씨의 강론 내용을 좀더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그는 공무원으로서의 직장 근무 시간 외에는 밥 먹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일정치 않다. 어쩌다 친구들과 술자리에 어울릴 때도 언제 차를 몰고 출동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술도 마음놓고 마시지 못한다. 언젠가 한번은 그가 잠자다 말고 오밤중에 10리 밖에서 살고 있는 독거 노인이 아프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출동하는 것을 보았다.

서른네 살 노총각인 그에게는 애인도 없는 것 같다. 봉사 활동 때문에 연애할 시간도 없어서인지, 젊은 나이에 인생의 기반을 닦는 일에 주력하기보다는, 그리고 인생을 즐기기보다는 늙고 가난하고 몸 불편한 사람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일에 불철주야 헌신하는 그를 보고 기가 질려서인지…. 아무래도 애인이 쉽게 생길 것 같지 않다.

태안천주교회 빈첸시오회의 명승식 씨를 비롯한 여덟 명의 활동회원들―그들은 이 사회의 빛임이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로써가 아니라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있으므로 우리 사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희망의 불빛이 지속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기자가 이 글을 쓸 의향을 비쳤을 때 명승식 씨와 태안천주교회 빈첸시오회원들은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다. 혹여 자신들의 구호 봉사 활동이, 그리고 기자의 글이 교회를 홍보하기 위한 행위로 오해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자신들의 활동이 쉽게 노출되는 것이긴 해도 스스로 홍보하지 않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그 금언(金言)에 조금이라도 부합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므로 이 글을 쓰는 기자로서는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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