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지 비과세' 결정 대다수 언론 '침묵'
정부-언론, '침묵의 카르텔' 형성되나

한 국세청 출입기자 "이심전심으로 기사화 안한 것"

등록 2002.06.20 17:47수정 2002.06.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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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세심판원의 심판 결정으로 신문사들에 대한 무가지 관련 과세를 철회한 국세청.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국세심판원이 최근 "무가지를 접대비가 아닌 광고선전비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정, 지난해 세무조사를 통해 부과된 신문사들의 세금 부담을 크게 덜어준 가운데 최대 수혜자인 조중동은 물론, 방송-신문사들이 이례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겨레와 대한매일이 각각 자사에 부과된 법인세 추정액중 무가지 부분에 대해 이의 제기를 하자 국세심판원은 지난달 28일 "신문사가 판매촉진을 위해 돈을 받지 않고 배포하는 무가지는 '접대비'가 아닌 '필요경비'이므로 과세대상이 아니다"고 판정했다.

국세청이 작년 신문사들에 부과한 무가지 추징세액은 688억원에 이르나 국세심판원의 결정으로 중앙일보와 조선일보가 각각 280억원, 194억원의 세금을 환급받는 등 거대 신문사들이 부담을 크게 덜게 됐다. 그럼에도 대한매일(5월31일자 보도)을 제외한 모든 신문사들은 근 2주 동안 이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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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침묵의 카르텔'을 깬 <대한매일> 기자의 전언을 통해 다른 신문사들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한매일 기자는 2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사를 쓴 사람으로서 답변하기 곤란한 위치에 있다. 당시 기사에 대한 얘기는 (회사에서) 대외비로 하기로 했다. 유일하게 확인해줄 수 있는 것은, 국세청과 대한매일 경영진, 취재기자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그 기사가 나가게 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한매일의 유가부수가 많지 않고 그나마 대한매일이 지난 1일부터 인터넷 뉴스서비스를 중단함에 따라 '무가지 비과세' 결정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묻힐 뻔했다. '무가지 비과세' 결정 파문은 미디어오늘과 오마이뉴스(13일)의 보도를 통해 공론화됐고, 일부 신문들도 그제서야 보도에 들어갔다.

국민일보가 15일자에 '신문 법인세 추징액 무가지 부분은 탕감/국세심판원 “과세대상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고, 조선일보는 20일에 와서야 '국세청의 무리한 과세 관행'을 비판한 기사에서 "국세심판원은 최근 '신문사가 판매지국에 발송하는 무가지(無價紙)를 접대비로 간주해 법인세를 추징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 내용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법원과 국세심판원이 연이어 같은 내용의 판결을 내놓음으로써, 무가지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관행은 무리한 것으로 결론났다"고 짤막하게 이 사실을 언급했다.


그러나 국세청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며 맹렬하게 정부를 비판해온 조선일보의 태도를 감안하면, 이같은 소극적인 보도는 마치 마지못해 하는 게 아니냐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최대 수혜자인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를 비롯, 대다수의 신문사들은 여전히 이를 보도하지 않아 세무조사로 난타전을 벌인 김대중 정부와 언론들간에 '강고한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된 모습이다.

국세청과 재경원 출입기자들은 '비보도 경위'에 대해 하나같이 "국세청(국세심판원) 기자에게 물어봐라", "말하기 곤란하다"며 입을 다물고 있다. 어렵게 말문을 연 국세청의 한 출입기자는 "기자실에서는 회사간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서로 얘기 안하는 게 관례"라며 "조중동으로서야 부담을 크게 덜게 돼 속으로 웃겠지만,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할 경우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어 이심전심 기사화를 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세청 출입기자도 "민감한 사안인데, 나중에라도 쓸까 하다가 데스크와 논의한 결과 쓰지 않기로 했다"며 "국세심판원 결정으로 언론사 세무조사가 '실패한 언론 길들이기'가 됐다는 여론의 질책에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오히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방송사들이다. 무가지 판정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고, 작년에 그토록 강도 높게 신문사들을 비판했던 방송사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국세청의 관계자는 '무가지 비과세'를 둘러싼 '침묵의 카르텔'에 대해 "조선일보에서 기사 쓰지 않았나? 국세청에서 무슨 기사 나올 게 있나? 기사 쓰는 것은 각 사가 알아서 할 일이다"며 말끝을 흐렸다.

'부자 몸조심'해야 하는 조중동도 조중동이지만,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동안 언론개혁의 선봉에서 조중동을 비판해온 한겨레가 이를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작 2억 원'의 세금을 덜기 위해 국세심판원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언론개혁의 상대인 조중동의 부담을 덜어준 한겨레의 처신은 크나큰 '자충수'로 비치고 있다.

재정경제부에 출입하는 한겨레 기자는 "무가지로 인한 폐해는 전적으로 조중동이 책임져야 할 문제인데, 한겨레의 이의 제기로 비과세 결정이 내려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한겨레가 오해받을 수 있어 기사화하지 않았다"고 궁색한 해명을 했다. 그러나 이 기자는 "그럴수록 한겨레는 더욱 적극적으로 보도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오마이뉴스의 질문에는 답변하지 못했다.

연합뉴스의 이희용 기자는 18일 '한국언론재단'의 연재코너(<이 기자의 고주리> '무가지 법인세 환급 결정' 보도 않는 속사정)에 올린 글에서 "한겨레와 대한매일의 입장이 우습게 됐다. 조중동의 무가지 살포가 시장질서를 교란시킨다고 소리높여 외치면서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국세심판원에 이의를 청구한 사실도 그러려니와, 막상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다보니 조중동이 훨씬 큰 이익을 보게 된 것은 물론 앞으로 무가지 살포를 제한하자는 주장을 내세우기가 어렵게 됐다. 만약 한겨레와 대한매일이 무가지 과세에 해당되지 않고 조중동만 큰 혜택을 얻게 됐다면 국세심판원의 결정을 강도높게 비난했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개탄했다.

<클릭! [이 기자의 고주리 58] '무가지 법인세 환급 결정' 보도않는 속사정>

이에 대해 광운대 주동황 교수(신문방송학과)는 "보도를 할 경우 논란이 재연되고 여러가지 비난과 오해가 생길 것을 우려해 언론사들이 사안을 축소, 은폐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국세청은 국세청대로 국세심판원 결정에 대한 입장과 언론사 세금 추징 계획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언론개혁에 앞장서온 신문사들도 현 사태를 방관말고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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