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언론사 세무조사' 왜 했나

국세심판원 "무가지는 과세 대상 아니다" 결정

등록 2002.06.13 21:46수정 2002.06.14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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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심판원의 심판 결정으로 신문사들에 대한 무가지 관련 과세를 철회한 국세청.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납세자 권리 구제기관인 국세심판원(www.ntt.go.kr, 원장 한정기)이 "신문사 배포 무가지를 과세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작년 국세청의 무가지 과세로 688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한 신문사들은 모두 환급 혜택을 받게 됐다.

국세심판원의 결정으로 중앙일보가 280억원, 조선일보가 194억원을 감면받는 등 무가지 배포를 주도해온 조중동 3개 신문사가 거액의 세금 부담을 덜게 됐고, 국세청의 언론사 세무조사의 취지도 상당부분 퇴색되게 됐다.

학계와 언론단체에서는 "무가지를 남발, 신문시장을 독과점해온 거대 신문사들의 입지를 넓혀주는 결정", "정부 주도 언론개혁의 한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대한매일>은 지난달 31일 "신문사가 판매촉진을 위해 돈을 받지 않고 배포하는 무가지는 '접대비'가 아닌 '필요경비'로 인정돼 과세대상이 아니라는 국세심판원의 결정이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국세청은 국세심판원의 심판 결정(5월28일)에 따라 지난달 30일 <대한매일>에 "작년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부과한 96억원의 세금 중 잘못 부과된 법인세(1997년 귀속분) 7억원을 환급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심판원 "신문사들이 무가지로 이익 보기 어렵다고 판단"

미디어오늘(13일)에 따르면, 국세심판원 제1조사관실 관계자는 "국세청이 조사한 내역에 따라 당초 무가지의 20% 이상을 접대비로 봤으나 실제로 청구인들이 제시한 자료를 토대로 검토해본 결과 무가지는 '배달과정의 파손분' '기관 등에 기증하는 부분' '판촉에 사용되는 부분' 등으로 신문사들이 이를 통해 이익을 얻었다고 보기 어려운 판매과정상 발생하는 비용으로 판단해 이같은 결정을 했다""무가지에 대한 과세액 전원이 이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국세청 관계자도 "추징금 부과는 규정대로 추진했으나 법 해석상의 차이로 이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국세심판원은 상급기관이기 때문에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결과 발표 당시 "무가지에 대한 세금 추징은 무가지를 20% 이내로 제한한다는 신문협회의 자율규약에 따른 것으로, 세금 추징을 계기로 무가지 배포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고 예상한 바 있다.

국세심판원의 결정으로 <대한매일>과 <한겨레>는 각각 7억원과 2억원을 감면받게 됐다. 그러나 이번 결정의 최대 수혜자는 조중동 거대 신문사들이다. 비교적 적은 액수의 감면을 받게 된 두 신문사의 심판 청구로 인해 심판 청구를 하지 않은 다른 신문사들도 '무가지' 법인세를 모두 탕감받게 됐기 때문이다.


국세청이 작년 6월20일 발표한 23개 중앙 언론사에 부과된 3229억원 중 무가지 추징세액은 688억원에 이른다. 무가지 부분 과세액은 언론사 법인들에 대한 추징세액 가운데 21.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는데, 논란의 핵심은 유가신문 발행 부수의 20%를 초과하는 무가지를 접대비(과세 대상)로 보느냐 아니면 판촉 및 광고선전비(비과세 대상)로 계상하느냐 였다.

▲작년 6월20일 오전 11시 국세청 기자실에서 손영래 서울지방국세청장이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국세청이 6개 언론사를 검찰에 고발(작년 6월29일)한 다음날 자사 지면을 통해 무가지 관련 추징액수가 각각 194억원, 280억원이라고 공개한 바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법인에 추징된 세금은 당초 각각 342억원, 704억원이었는데, 국세심판원의 결정으로 상기 액수의 56.7%, 39.8%만큼 세금 부담을 덜게 됐다.

<동아일보>는 추징액수를 공개하지 않았으나 거대 신문사들의 무가지 배포 관행이 큰 차이가 없었음을 감안할 때, 전체 신문사 무가지 추징세액중 조중동 3개 신문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90%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이들 신문들은 "무가지에 대한 세금 부과는 통상적인 의미에서의 '범법행위'와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법적인 논란의 소지가 많은 부분"(조선일보), "94년 언론사 세무조사 당시엔 무가지에 대해 전혀 세금을 부과하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사전경고 한 번 없이 그 뒤 5년치를 한꺼번에 몰아 세금을 추징하는 것은 부당하다"(중앙일보), "무가지 발행을 접대비로 간주한 것은 초법적인 과세로 헌법에 보장된 조세법률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동아일보)며 국세청 결정에 반발해왔는데, 국세심판원은 조중동의 입장을 옹호하고 이들의 세금 부담도 크게 덜어준 것이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학계와 전문가들은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윤종훈 회계사는 "(국세심판원의 결정이) 이해가 안 간다. 접대비라는 것이 꼭 거래처에 술 사주고 밥 사주는 것이 아니라 과도하게 경품을 주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유가부수의 20%를 넘는 무가지=접대비'라고 과세한 국세청의 원래 결정이 타당하다고 봤다"며 "만약 무가지를 한도 끝도 없이 인정하면 자금력이 강한 언론이 약한 언론을 죽일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말했다.

윤 회계사는 "화장품 업계를 예로 들면, 중견회사가 샘플 화장품을 마구 나눠주면 신생회사가 타격을 입게 돼 규제를 할 수밖에 없다. 이번 결정이 타 업종에 적용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죽이기 위한 판촉 경쟁이 가열되는 등 극도의 혼란을 빚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광운대 주동황 교수도 <미디어오늘>에 "이번 결정이 무가지 배포 제한과 관련해 아무런 방향을 제시해주지 못한 데다 사실상 과거의 관행을 인정해준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신문시장에서 무가지가 오히려 남발돼 무질서를 촉발시키고 일부 신문의 시장독과점을 가속화하는 게 아닐지 우려된다. 국세심판원의 결정과는 별도로 무가지 배포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주도의 언론개혁, 기대할 게 못됐다"

이번 결정이 신문개혁에 대한 정부의 의지 부족을 반영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익명의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처음 국세청 발표가 나왔을 때부터 무가지 부분은 논란이 예상됐다. 세무조사에 '정치논리'가 개입돼 무리하게 추징액을 잡은 것이 이런 결과를 빚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정부와 언론간의 신문고시는 제정도 중요하지만, 집행을 제대로 했을 때 의미가 있다. 업계의 과열경쟁을 막기 위해 제정한 신문고시가 오히려 독과점을 조장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며 "처음부터 신문고시를 제대로 시행할 능력이 없었던 정부가 최근 들어 거대신문들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는 등 '정부 주도의 언론개혁'은 처음부터 기대할 게 못됐다"고 말했다.

또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

"거대 언론사를 상대로 한 세무조사 결과가 엄정하게 처리되려면 정권에 지지가 실리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이 '아들 비리'로 지지율이 떨어지고 몰락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언론개혁 운동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언론, 시민단체의 부담이 더욱 무겁게 됐다. 그러나 신문업계의 불공정 거래 관행을 시정하기 위한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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