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화장지엔 과세, 무가지엔 비과세
아예 '신문사는 납세의무 없다'고 하라

국세심판원, 무가지 과세 688억원 '환급' 결정 내려

등록 2002.06.17 09:53수정 2002.06.1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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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화장지를 만드는 한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견본품 화장지를 대량으로 생산해 대리점에 공짜로 나누어 준 후, 이에 들어간 비용을 '견본비'란 이름의 제조원가로 회계처리하였다.

그러나 국세청은 견본품을 업무와 관련된 접대비로 보아 수 십억원의 세금을 추징하였다. 이에 화장지 제조회사는 억울하다며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한 국세심판원의 결정문을 보자.

대리점 등이 쟁점물품을 불특정다수인에게 다시 무상으로 배포한 사실이 없는 점으로 볼 때, 쟁점물품의 경우 광고선전용의 견본품으로 보기는 어렵고 지원품 성격의 공급으로 보인다.

위와 같이 청구법인이 대리점 등에 무상으로 공급한 쟁점물품은 판매가능한 정품으로서 거래처의 판매실적 등을 고려하여 지급하는 장려금품 성격과 이익보장을 위한 지원금품 성격의 것으로서 이를 광고선전목적 또는 주된 재화의 공급에 포함되어 공급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므로 쟁점 견본비를 청구법인의 업무와 관련하여 특정인에게 지출한 접대비로 보아 이 건 법인세를 과세한 당초처분은 잘못이 없다고 판단된다.' [심판청구번호 국심2000서 0824(2000.10. 4), 심판청구번호 국심2000서 1955(2001. 1.31)]


국세심판원의 심판 결정으로 신문사들에 대한 무가지 관련 과세를 철회한 국세청.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이번에는 화장품 회사다. 이 회사 역시 다량의 견본품을 생산하여 계열회사를 통하여 영업소 등에 공짜로 나누어 주었고, 이를 정상적인 비용으로 회계처리하였다.

이에 대하여도 국세청은 견본품 생산에 들어간 비용을 접대비로 보아 세금을 추징하였고, 화장품 회사는 국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하였다. 그 결과 국세심판원은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청구법인의 주장처럼 광고선전비로 볼 수 있는 경우는 사업자가 자기의 사업과 관련하여 생산하거나 취득한 재화를 자기사업의 광고선전 목적으로 불특정다수인에게 무상으로 배포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인 바, 청구법인이 관련법인에게 쟁점견본품등을 무상으로 불출한 것은 청구법인의 장부에 의하여 확인되나 불특정다수인인 소비자에게 영업소를 통하여 무상으로 배포된 것은 확인되지 않아 그 용도가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청구법인 또한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관련 증빙서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청구법인은 관련법인에게 정품과 다름없는 쟁점견본품등을 무상으로 지급하였으므로 부가가치세법상 사업상 증여에 해당되어 재화의 공급에 해당되고, 업무와 관련하여 관련법인에게 무상으로 지급한 것은 접대비 성질의 지출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이 부분 청구주장은 이유없다고 판단된다.[심판청구번호 국심1995경 1392(1996. 5. 6)]



위에서 본 국세심판원 결정문들의 공통점을 보면, ① 견본품이 정품과 다름없이 판매가능하다는 점 ② 견본품이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포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어 견본품은 광고선전 목적으로 제공된 것이 아니라, 대리점 등 거래처에 대한 지원품의 성격으로서 접대비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럼 신문사들은 어떠한가?


국내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다량의 무가지를 보급소(대리점) 등에 제공한다. 이 무가지의 일부는 운송중에 파손된 신문을 보충하는데 쓰이기도 하지만(유가지의 3% 정도가 파손에 대한 보충지로 쓰이는 것으로 추산됨), 대부분은 "몇 달 공짜로 본 후 그 다음부터 신문대금을 받겠다"는 방식의 영업전략에 쓰이거나 아니면 그냥 보급소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지원품이다.

즉 "몇 달 공짜로 본 후 그 다음부터 신문대금을 받겠다"는 방식으로 배포되는 것은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포되는 것이 아니다.

불특정 다수인에게 배포된다는 것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냥 나누어 주거나, 00아파트에 사는 사람 모두에게 그냥 나누어 주는 것 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단지, 광고선전의 목적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몇 달 공짜로 본 후 그 다음부터 신문대금을 받겠다"는 방식의 배포는 잠재적 고객으로 판단되는 특정인에게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하여 나누어 주는 것이지, 광고선전을 목적으로 한 불특정다수인에 대한 배포는 분명 아니다.

아무튼 신문시장의 이러한 독특한 영업전략 때문에 "몇 달 공짜로 보게 할" 만큼의 무가지를 생산할 능력이 없는 신문사들은 영원히 조·중·동의 밑에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무가지와 접대비로 판정된 위의 견본품을 비교해 보자. 첫째, 무가지는 '광고용'이라고 찍혀 있지 않다. 즉, 정상적으로 판매되는 정품과 똑같다. 둘째, 대부분의 무가지는 불특정다수인에게 배포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세심판원에서 접대비라고 판단한 위의 견본품들과 무가지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운송 중에 파손되거나 독자가 그냥 이사를 가는 바람에 손해보는 경우가 많은 신문시장의 특수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한 특수성을 다 인정한다. 그래서 20% 이내의 무가지는 정상적인 비용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는 신문사들의 자율규약에 의해 신문사 스스로 정하고 인정한 기준이 아닌가?

화장지 회사 및 화장품 회사에 대한 위의 결정들과 신문사에 대한 이번 결정의 차이에 대하여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면, 아예 솔직하게 '신문사들은 납세의무가 없다'는 조항을 세법에 신설하라. 더 이상 헷갈리지 않게.

사람들은 단지 가난하다는 사실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제도적 모순 때문에 남 보다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사실에 화가 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단지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이유없이 세금을 안내는 사람들 때문에 이유없이 내가 더 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화가 나는 사람들은 세금을 제대로 내고 싶어하지 않는다. 탈세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세제 세정이 문란해지고 결국은 망한다. 조선말기의 삼정문란을 보라.

신문사에 대한 이번 국세심판원의 결정은 세금을 제대로 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 탈세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더 늘어나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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