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근 일병 사망... '자살' 추정"

법의학자들 토론회서 밝혀… 특조단 '자살' 결론 가능성 커져

등록 2002.11.26 02:13수정 2002.11.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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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방부 특조단이 25일 주최한 토론회에서 법의학자들은 허일병의 사망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특조단의 최종결과 발표도 '자살'로 판정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국방부 특조단이 25일 주최한 토론회에서 법의학자들은 허일병의 사망을 '자살'로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특조단의 최종결과 발표도 '자살'로 판정될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지난 84년 부대 내에서 총기로 인해 사망한 허원근 일병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구성된 '국방부 허일병 사망사건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 단장 정수성 중장)' 조사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일부 법의학자들이 "허 일병은 M16 총기를 이용해 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견해를 밝혀 특조단 최종 조사결과가 '자살'로 결론지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허일병 사망사건' 진상 조사를 위해 특조단에 자문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법의학자들은 25일 오후 2시 서울시 용산구 국방회관 1층 태극홀에서 특조단 주최로 열린 '허일병 사망사건 법의학 공개 대토론회'에서 위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법의학자들의 이러한 견해는 애초 허일병 사망원인을 '타살'로 규정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의 결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어서 유족들의 강한 반발과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토론회 참석 법의학자, 6명 중 4명 "자살이라고 본다"

a 토론장에서 총기 시범을 보이는 황적준 교수

토론장에서 총기 시범을 보이는 황적준 교수 ⓒ 오마이뉴스 김영균

이날 특조단 토론회에 참석한 법의학자들은 황적준(고려대 의과대학장), 이한영(국과수 법의과장), 이승덕(서울대 교수), 이상한(경북대 교수), 문국진(고려대 명예교수), 이윤성(서울대 교수)씨 등 모두 6명. 이들 중 이윤성 교수와 문국진 교수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모두 특조단 자문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다. 전임 의문사위 상임위원을 지낸 이 교수와 고려대 문국진 교수는 법의학자 신분으로 토론회에 참석했다.

또 '현장감식 전문가'로 특조단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이삼재 경찰청 연구관이 토론자 자격으로 참석했으며 전체 진행은 오윤성 순천향대 법정학부 교수가 맡았다.

이날 토론자들이 법의학적 견해를 중점적으로 나눈 주제는 ▲과연 M16소총으로 3발을 쏴서 자살할 수 있는가 ▲가슴 2곳, 두부 1곳 등 3군데의 총창 ▲총창 이후 생존이 가능한가 ▲위 내용물 성상 ▲총창을 입고 영하5도 환경에서의 생존시간 ▲왼손 엄지/검지 사이의 상처가 '방어흔'인가 '지지흔'인가 하는 문제 등 6가지였다.


법의학자들은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 가량 이어진 치열한 격론을 펼쳤고, 결론적으로 6명 중 4명이 허일병의 '타살' 가능성을 부인했다. 나머지 2명 중 1명은 판단을 '유보'했으며 이윤성 서울대 교수는 유일하게 "허일병의 사망을 자살로 단정 지을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4시간에 걸친 치열한 토론… '자살', '타살' 합의점 못 찾아


a 서울대 이윤성 교수는 이날 법의학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살 단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허일병과 같은 자살 사례가 있다면 매우 특이하고 드문 일이라고 주장했다.

서울대 이윤성 교수는 이날 법의학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자살 단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허일병과 같은 자살 사례가 있다면 매우 특이하고 드문 일이라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이윤성 교수는 이날 토론회를 통해 "M16으로 각각 치명상이 될 수 있는 총상을 3번이나 입히고 자살하는 사례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뒤 "그러한 사례는 있더라도 굉장히 드문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또 "M16은 총신이 길기 때문에 손을 바꿔가면서 2군데 가슴을 표적으로 자살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며 "자살하려는 사람은 가장 편안한 자세를 원하기 때문에 통상 불편한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상한 경북대 교수는 턱과 머리에 각각 엽총을 쏘아 자살한 외국 사례 등을 들어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을 폈으며, 특조단도 지난 95년 발생한 육군 3군단 위달 소위가 2발을 자신에게 쏜 예를 들어 총기류로 1발 이상 발사해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4시간 동안의 이날 토론에서 가장 쟁점이 됐던 부분은 허일병의 왼손에 나타난 상처와 M16 발사 때 생기는 소염기의 흔적인 '매연'.

이윤성 교수는 왼손 엄지와 검지 사이의 상처와 매연 흔적이 총구를 막기 위해 소염기를 막는 과정에서 생긴 '방어흔'이라 주장했으며, 황적준 교수와 이한영 법의과장은 "허일병이 자살하기 위해 총구를 대는 과정에서 무거운 총기를 지탱하다 생긴 '지지흔'"이라고 주장했다. 이윤성 교수와 황적준 교수, 이한영 과장은 이 문제를 두고 팽팽히 맞섰으나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이 외에도 "허일병의 가슴에 생긴 두 개의 총창 색깔이 차이가 있어 두 상처 사이의 시차가 적어도 1∼2시간은 날 것"이라는 이윤성 교수의 주장과 이를 인정하지 않는 황적준 교수, 이한영 과장의 주장이 대립돼 토론은 내내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

고려대 문국진 교수는 이 자리에서 "통상 자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은 같은 행위를 수없이 반복해서라도 죽으려 한다"며 "어떤 이는 자살을 결심하고 자기 목을 여덟 번이나 긋는 사람도 있었고, 허일병도 이와 같은 사례가 아닌가 한다"는 의견을 피력해 '자살' 주장에 무게를 뒀다.

특조단 중간발표 뒤집을 증거 없어… '자살' 결론 날 듯

a 허일병의 '자살'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한영 국과수 법의과장. 이씨는 두 발의 총상을 입은 허일병의 흉부에 남아 있는 혈액이 비슷한 점을 들어 허일병이 소총 두 발을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맞았다고 주장했다.

허일병의 '자살'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한영 국과수 법의과장. 이씨는 두 발의 총상을 입은 허일병의 흉부에 남아 있는 혈액이 비슷한 점을 들어 허일병이 소총 두 발을 거의 비슷한 시간대에 맞았다고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김영균

한편 이 자리에는 그 동안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사고 당시 허일병의 동료 중대원 5명이 참고인 자격으로 나와 "총기오발 사고는 없었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사고 당사자'로 지목됐던 노모 중사(당시)는 "이 일 때문에 '살인범'으로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노씨는 이 자리에서 "지난 98년 국군 의무사령부에서 원사로 제대하기까지 30여 년을 군에서 보냈다"며 "우리 군대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그 사건으로 '중대장'을 해임하면서 아무 힘도 없는 일개 중사를 원사까지 진급하게 놔뒀겠나"고 반박, 자신의 '살인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아울러 당시 중대 보급계로 일했던 신모씨는 "그 동안 의문사위에도, 국방부에도 말하지 않았던 진실을 이 자리에서 직접 밝히겠다"며 의문사위가 주장한 사고 발생 당일 아침 허일병이 살아있었으며, 허일병과 중대장 사이에 대화가 있었다는 내용을 최초로 증언해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박스기사 참조).

국방부 특조단은 지난 달 29일 "허일병 사건 당시 내무반 총기오발 사고는 없었다"는 중간발표 결과와 이번 토론회 내용을 종합해 몇 일 내로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토론회에서도 특조단의 '중간 발표'를 뒤집을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허일병 사망사건'은 현재로서 '자살'로 결론 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당일 아침 허일병을 봤다, 중대장과 직접 대화"
사고 당시 중대 보급계원 신모씨 등 증언

▲ 25일 열린 토론회장에는 허일병의 사고 당시 동료들이 나와 증언했다.

25일 열린 '허일병 사망사건' 국방부 특조단 토론회에 참석한 신모씨는 "의문사위가 허일병 사망 추정시간으로 제시한 4월 2일 새벽 2∼4시가 지난 아침, 중대장과 함께 순찰을 나가면서 허일병과 중대장의 대화를 직접 목격했다"고 증언해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신씨는 이날 토론장에 나와 "그 동안 의문사위에도, 국방부에도 말하지 않았던 진실을 이 자리에서 직접 밝히겠다"며 이와 같은 내용을 털어놨다.

신씨에 따르면 당시 중대 보급계로 일하던 자신이 중대장과 함께 4월 2일 아침 순찰을 나가면서 허일병과 중대장의 대화를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당시 중대장은 함께 순찰을 나서면서 철모의 턱끈이 낡은 것을 보고 신씨에게 "너는 보급병이 중대장 턱끈이 이게 뭐냐"고 말하며 철모로 신씨를 가볍게 쳤다는 것. 또 중대장은 곧바로 허원근 일병(당시 중대장 전령)에게도 "너는 전령이라는 놈이 그것 밖에 못해"라고 호통쳤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찰을 나선 얼마 뒤, 총소리가 들려 자신과 중대장이 "이상하다"는 대화를 나눴다는게 신씨의 주장이다. 신씨는 "그 일은 내가 직접 당했기 때문에 너무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허일병의 또 다른 동료도 사고가 발생하기 며칠 전, 자신이 직접 허일병과 대화한 내용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허일병이 자살하기 얼마 전 함께 밥을 타러 가면서 '다른 사람 총으로 자살하면 총 주인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고 내가 '영창 간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며 "그게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중대본부로 올라간 것이 84년 3월 4일이니까 사고 전까지 약 20여일 사이 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 김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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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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