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체스코 숨결속에 빨려들다 (2)

<세계문화유산답사> 이탈리아 아시시

등록 2003.01.11 20:46수정 2003.01.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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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6년부터 1304년까지 성 프란체스코의 생애를 28장면으로 나타낸 지오또의 프레스코화는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도 시선을 떼지 못하게끔 만든다. 르네상스의 여명기에 떠오른 샛별과도 같은 지오또의 프레스코화는 성프란체스코의 삶을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a 새에게 설교하는 성프란체스코

새에게 설교하는 성프란체스코

'작은 새에게 설교하는 성프란체스코'라는 그림에선 맑고 투명했던 그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작은 나무 아래의 성자 주변으로 한 무리의 비둘기들이 몰려든다. 얼핏 던져주는 모이를 먹기 위해 다가가는 듯 하나 사실은 성자의 설교를 듣기 위함이다. 세속적인 재산을 깨끗이 버리고 오로지 겉옷 튜닉과 세 겹으로 매듭지어진 밧줄을 허리에 맨 채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 사랑을 실천했던 청빈한 성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가진 것이 없었기에 오히려 줄 것이 많았던 성 프란체스코. 그의 맑은 영혼과 진실한 믿음은 새들에게 전해지고 심지어 나무마저 그의 설교를 들으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다.


'성흔을 받는 프란체스코'라는 그림은 진실한 기도를 통한 예수와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다. 만년인 1224년 해발 1300m의 베르나산에서 40일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있던 그에게 새벽이 밝아올 무렵 천사가 나타났다. 하지만 양팔을 옆으로 벌린 채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는 천사는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와 마주친 순간 그의 손과 발목, 옆구리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밀려오고 그 고통의 절정에서 예수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 흔적은 성흔이 되었다. 하지만 그림 속 그의 표정에선 그 어떤 고통의 흔적을 엿볼 수 없다. 오직 불꽃같은 십자가모양을 한 예수와의 만남에 경건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평온한 모습뿐이다.

그림 속 프란체스코의 풀려진 허리끈은 세 마디로 매듭이 져있는데 이는 프란체스코회의 정신인 청빈, 복종, 순결의 덕목을 나타낸다고 한다. 프란체스코의 뒤편으로 예배소와 제단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수사 레오가 자리잡고 있다. 레오는 이 기적의 사건을 증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성당의 지하에는 성 프란체스코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사방을 어둠으로 가득 칠한 그곳엔 이글거리는 촛불만이 성자의 묘를 밝히고 있었다. 신성한 묘소 주변에는 많은 신자들이 촛불을 밝힌 채 기도를 하고 있다. 저마다의 얼굴엔 평온함이 가득하다. 아름다웠던 성자의 삶을 떠올리기라도 하듯이 그들의 표정에선 그 어떤 근심과 걱정도 나타나지 않는다. 살짝 감은 두 눈 속에서 프란체스코가 그러했듯이 주님을 만나고 있었다.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였기에 맑은 영혼의 눈으로 보기 위함이리라.

자애로운 인품과 탁발을 통한 수많은 기적으로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와 함께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 된 성 프란체스코. 그의 삶의 흔적은 그렇게 지하묘소를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겸손, 단순함, 청빈, 기도를 삶의 기초로 하여 오직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며 살아왔던 성자의 흔적은 첫 대면임에도 불구하고 내 가슴 속에 진한 여운을 남기었다.

그렇게 성자의 흔적을 가슴 속에 담고서 아시시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로카 마죠레로 향했다. 이곳은 중세에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해 세워진 요새로서 움브리아 평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굳이 높은 성채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었다. 경사진 비탈길을 오르는 순간 살랑이는 바람에 잠시 뒤를 돌아보니 움브리아의 전원풍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졌기 때문이다. 평화롭고 아름답다는 표현밖에 달리 묘사할 방법이 없는 그런 풍경이었다.


저 아래로 아이보리색 성당의 전체적인 모습이 보인다. 화려한 이탈리아의 다른 성당과는 달리 밖으로 나있는 장식다운 장식이 하나도 없는 것이 특이했다. 아마도 청빈을 최고로 여긴 프란체스코의 행적을 좇기 위함이니라.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성프란체스코 성당은 프란체스코 성자와 너무도 닮아있었다. 그곳엔 그 어떤 화려함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꽃무늬 문양의 장식만이 성당을 꾸미고 있을 뿐이다. 그 속엔 한평생 꽃처럼 아름답게 살다간 성자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성당 앞으로 펼쳐진 정원에는 움브리아 평원의 평화스런 모습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평화를 뜻하는 'PAX'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파란 하늘과 성당의 아이보리 빛과 푸른 평원사이로 솟아있는 올리브와 삼나무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떠올리게 한다.


꽃으로 장식한 발코니를 배경으로 이어지는 중세의 좁다란 골목들이 인상적인 아시시. 이곳에서 태어나 신앙의 길로 들어선 후 새들과 노래하며 들짐승들과 이야기하던 성자의 모습은 흡사 어린왕자와도 같다. 하지만 이탈리아 중북부 움브리아 구릉지대의 작은 도시 아시시에서 만난 어린왕자는 어느새 성인(聖人)이 되어있었다.

청빈, 복종, 순결의 덕목으로 오직 한사람을 향한 믿음과 그 믿음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기만 했던 성자의 거룩한 삶은 오늘도 전세계 신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성자의 향기는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향기는 하나의 노래가 되어 널리 모든 사람들에게 불려진다. 그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세상 모든 만물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듯이.

태양의 찬가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여!
찬미와 영광과 칭송과 온갖 좋은 곳이 당신의 것이 옵고,

홀로 당신께만 드려져야 마땅하오니 지존이시여!
사람은 누구도 당신 이름을 부르기조차 부당하여이다.

내 주여!
당신의 모든 피조물 그 중에도,
언니 해님에게서 찬미를 받으사이다.
그로 인해 낮이 되고 그로써 당신이 우리를 비추시는,

그 아름다운 몸 장엄한 광채에 번쩍거리며,
당신의 보람을 지니나이다. 지존이시여!

누나 달이며 별들의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빛 맑고 절묘하고 어여쁜 저들을 하늘에 마련하셨음이니이다.

언니 바람과 공기와 구름과 개인 날씨,
그리고 사시사철 찬미를 내 주여 받으소서
당신이 만드신 모든 것을 저들로써 기르심이니이다.

쓰임 많고 겸손하고 값지고도 조촐한 누나 물에게서
내 주여 찬미를 받으시옵소서.

아리고 재롱되고 힘세고 용감한
언니 불의 찬미함을 내 주여 받으옵소서.
그로써 당신은 밤을 밝혀 주시나이다.

내 주여!
누나요 우리 어미인 땅의 찬미를 받으소서.
그는 우리를 싣고 다스리며 울긋불긋
꽃들과 풀들과 모든 가지 과일을 낳아 줍니다.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을 받으사이다.

평화로이 참는 자들이 복되오리니, 지존이시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소이다.

내 주여!
목숨 있는 어느 사람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체의 죽음, 그 누나의 찬미 받으소서.

죽을 죄 짓고 죽는 저들에게 앙화인지고,
복되다, 당신의 짝없이 거룩한 뜻 좆아 죽는 자들이여!
두 번째 죽음이 저들을 해치지 못하리로소이다.

내 주를 기려 높이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드릴지어다.
한껏 겸손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어다.

성 프란체스코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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