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의 일생과 지푸라기 한 올의 혼

내 마음의 농업생활사 박물관 <3> 짚문화

등록 2003.01.29 10:00수정 2003.01.2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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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런 이쁜 집을 지읍시다

이런 이쁜 집을 지읍시다 ⓒ 김규환

논에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짚과 떨어져 살 수 없었습니다. 생활에 필요한 도구도 대부분 짚으로 만들어 썼고 소나 염소에게는 여물을 썰어 죽을 쒀주고 바닥에 짚을 깔아 똥이 뭍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게 했습니다. 겨울철 추위를 막기 위해 덕석을 엮어 옷을 만들어 주고 바람구멍이 있으면 잘게 묶어 틈을 막아 보온을 해줬습니다.


무엇이든 덮고자 하면 짚을 이용했습니다. 지붕을 일 때, 장독을 감쌀 때, 흙 담장을 덮을 때, 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갈 때, 눈비가 몰아쳐도 일을 해야 하면 도롱이를 만들어 썼습니다.

지붕으로 마람이 올라가지 전 먼저 썩음썩음한 마람을 한 꺼풀 걷어내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걷다보면 쥐가 새빨간 새앙쥐를 막 까놓아 징그럽기 그지없습니다. 털이 하나도 없는 쥐를 보신적 있나요? 어른들은 새앙쥐를 낫으로 “툭” 밀어 마당으로 던져버립니다. 그러면 놓칠새라 ‘닭구새끼’(닭)들이 몰려와서 한 마리씩 물고 마당과 고샅을 쓸고 다닙니다. 서로 이리저리 빼앗느라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지요.

또 하나 특이한 것을 볼 수 있는데 한 해 걸러 지붕 개량을 하는 경우 두부색깔에 입주댕이만 불그스름한 굼벵이가 지들 세상이라고 둥지를 틀고 엄청 많은 새끼를 까놓습니다. 이 때 닭과 사람간의 작은 전쟁이 벌어지죠. 닭들은 겨우내 부족한 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고깃덩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빠른 놀림을 하고 사람들은 못 먹던 시절이라 몇 십마리 모았다가 푹 고아서 보신제로 썼습니다.

살기 좋은 집에 대해서 말할 때 꼭 빠트리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굼벵이가 살고 있는 집이 사람 건강에 가장 좋다는 겁니다. 굼벵이가 살 정도 되면 누가 살아도 건강하다는 증거랍니다.

a 용마람

용마람 ⓒ 김규환

지붕을 일 때는‘마람’(또는 마름)을 엮어 지붕 꼭대기에서부터 벼를 털어낸 꽁지가 아래로 향하게 하여 겹치게 둘둘 돌려가며 아래로 내려옵니다. 처마 근처에 이르러서는 방향을 거꾸로 잡아 두어 번 포개어 안쪽으로 집어넣으면 됩니다. 안으로 집어넣은 것은 아시다시피 물빠짐이 좋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마람을 두르고 나서 물머리를 따라 맞배지붕은 한 번만, 사각지붕은 네 방향으로, 팔작지붕은 여덟 번 용머리를 두릅니다. 용머리 두르기가 끝나면 바람에 날려 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대나무를 쪼개거나 긴 막대기를 줄지어 꼭꼭 누르고 단단하고 조금 굵게 꼰‘사내키’(새끼줄)로 마감을 합니다.

마람 엮고 지붕 이는 이틀간은 일년 중 몇 안되는 큰 행사였습니다. 마당에 길고 병해충이 없는 탐진 볏짚을 쌓아두고 새벽 같이 시작합니다. 남자 일꾼 최소 대여섯은 모여 전날 엮기를 마쳐야 당일에 지붕을 새로 이는 것을 마칠 수 있었지요.


대게 동짓달에 주로 했지만 아직 나락단을 쌓아두고 다 훑지 못한 경우 섣달에도 합니다. 하여튼 정월 초하루 이전에 하면 문제없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새집에 산다는 마음에 마냥 기분이 들떴습니다. 막걸리 심부름도 하고 새끼줄도 꼬아 봅니다.

새집으로 들어간 날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지요. 상쾌했습니다. 생나무 연기에 퀴퀴한 냄새가 빠지고 볏짚에서 달짝지근한 기분 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a 문

ⓒ 김규환

어머니는 조금 한가한 틈을 보아 방문 창호지를 다 뜯습니다. 물걸레로 대야 하나를 준비해서 때가 다 가시도록 쓱쓱 닦습니다. 꺼무튀튀했던 문도 이제 노오란 나무 본색을 드러냅니다. 밀가루를 훌렁훌렁 풀어 휘저어가며 풀을 쒀 두십니다. 풀을 쑤면서 해야할 일이 또 하나 있지요. ‘다우다’라는 새하얀 광목 천에 풀을 먹여 빨래줄에 한 번 걸어 둡니다. 어느 정도 말라 풀이 먹었다 싶으면 먼저 창호지를 바르고 그 위에 천을 바릅니다. 마지막으로 문풍지를 바르면 문 여닫을 때도 별 문제 없었지요. 그렇게 하면 소한(小寒) 추위도 끄덕 없었습니다.

지붕을 새로 해서 따뜻하고 문을 새로 발라 새 집이 되었습니다.

a 장독뚜껑

장독뚜껑 ⓒ 김규환

시골 날씨는 기상청에서 발표한 것보다 3-4도는 낮습니다. 간장이나 된장 등 짠 것은 얼 일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두고 동치미 독과 배추 김칫독은 마람을 엮어 둘러씌우는 데도 짚이 쓰이고 뚜껑도 짚으로 이쁘게 만들어 덮었습니다.

a 보온

보온 ⓒ 김규환

무 구덩이는 얼지 않을 땅까지 파내고 가에 짚을 둘러 흙에 직접 닿지 않게 하고 무를 상하지 않게 차곡차곡 쌓은 다음 짚을 오므리고 나무 작대기를 꽂아 지붕을 만들고 흙을 덮습니다. 흙이 두텁게 쌓이면 그 위에 큰 짚다발 하나를 꽁지를 단단히 묶고 눈이 쌓여도 안으로 스며들지 않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착착 마무리 묶음을 합니다. ‘우지뱅이’가 다 되었으면 가랭이를 쫙 펴서 올려놓으면 무에 바람이 들어 갈 염려도 없고 냉기가 들어 찰 까닭도 없이 경칩 때도 싱싱한 무를 보관해두고 먹었습니다.

배추는 다소 덜 어는 특성이 있어 땅을 얕고 길게 터널을 만들어 파고 그 위에 짚다발을 몇 개 가지고가 덮어두면 충분했습니다.

a 담장

담장 ⓒ 김규환

이 뿐만이 아닙니다. 돌과 섞어서 쌓은 흙담에는 이 짚으로 용마람을 틀어서 담을 따라 길게 덮어주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허물어질 염려도 없었답니다.

a 짚삼태기

짚삼태기 ⓒ 김규환

a 닭의 안전가옥 엇가리

닭의 안전가옥 엇가리 ⓒ 김규환

a 뽕잎을 먹을 만큼 먹으면 창자도 보일 듯 투명해집니다. 이 때 짚으로 만든 섶을 넣어주면 타고 올라와 비단을 뽑아 냅니다.

뽕잎을 먹을 만큼 먹으면 창자도 보일 듯 투명해집니다. 이 때 짚으로 만든 섶을 넣어주면 타고 올라와 비단을 뽑아 냅니다. ⓒ 김규환

빗살무늬토기 등 흙으로 빚은 것은 대체로 고정식인 반면 플라스틱과 고무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가볍고 보온을 필요로 하는 경우 짚으로 도구를 만들어 썼습니다. 한섬이 들어가는 가마니, 흙과 퇴비, 재를 옮길 때 쓰는 삼태기, 씨앗을 담고 옮기는 골망태, 지게 멜빵, 물길을 때 머리를 밭쳐주던 똬리(또아리, 동아리), 짚세기(짚신), 나락 100가마도 충분히 넣었던 뒤주, 엇가리, 누에섶 등 필요한 만큼은 대게 각 가정에서 만들어 썼습니다.

계란 한 줄(10개)을 차례대로 놓고 감싸 매서 빠지지 않게 하여 기다랗고 모양나게 학교로 들고가서 선생님께 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촌지의 원조쯤 됩니다. 몇 년 지나고 나서는 씨암탉으로 바뀌었죠. 쭉지를 줄로 묶어 “쾍쾍” 울어대는 닭을 등교길에 선생님께 갖다 드린 기억이 떠오릅니다.

a 둥구미

둥구미 ⓒ 김규환

a 닭둥우리, 둥지죠. 21일 만에 바람에 날릴 것 같은 이쁜 털을 갖고 '삐약삐약' 병아리가 날개짓을 합니다.

닭둥우리, 둥지죠. 21일 만에 바람에 날릴 것 같은 이쁜 털을 갖고 '삐약삐약' 병아리가 날개짓을 합니다. ⓒ 김규환

a 망태

망태 ⓒ 김규환

할아버지나 할머니께 한 번 여쭤 보세요. 한국전쟁이 터져 사람들이 우왕좌왕 피난을 다닐 때 급한 마음에 이불을 이고 지고 떠난 집이 많았습니다. 이런 경우 큰 낭패를 보았다는 사실은 아주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처음에야 이불이 따뜻하고 간편할 것 같지만 눈 한 번 맞고 비 맞으면 꽁꽁 얼어 녹지도 않고 잘 마르지도 않았답니다. 이불을 끝까지 고집한 사람들은 죽음도 면치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이불을 대신한 것도 다름 아닌 짚다발이었습니다. 눈이 와도 쭉쭉 펴서 널면 한 시간이면 대체로 꼬들꼬들 말라 가벼워지고 뽀숭뽀숭해집니다. 어릴 적 칼바람이 불 때 짚더미 속에 잠시 숨어 몸을 녹였던 기억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습니다.

a 짚단을 이렇게 단단히 쌓아두면 3년 가도 끄덕없습니다.

짚단을 이렇게 단단히 쌓아두면 3년 가도 끄덕없습니다. ⓒ 김규환

짚은 썩어서 퇴비가 되어 다시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 거름을 먹고 화학비료 없이도 농작물이 잘도 컸던 시절이 불과 2-30년 전의 일입니다. 농약칠 필요도 없고 비료칠 이유가 없었으니 이걸 두고 유기농법이라고 하면 됩니다.

화학비료가 들어오자 퇴비 만들기를 게을리 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부터 우리나라 농업이 죽은 거지요. 누가 힘들여 외양간에 짚 넣어 쇠똥, 돼지똥 뭍혀가며 쇠스랑으로 끌어내겠습니까? 또한 뼈빠지게 풀나무를 베어올 고생을 누가 자처하겠습니까?

이제 사람들은 유기농을 일본이나 유럽에서 배워오고 있습니다. 퇴비만 쓰면 소출은 조금 줄더라도 안전하고 맛있는 농산물을 만들 수 있고 우리 선배들이 더 유기농을 잘 했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그래서 농사지으려면 자신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건가 봅니다.

a 멍석 하나 있으면 시골에선 짱입니다. 윷놀이 때, 추어탕 먹을 때, 대사치를 때, 멍석말이 할 때 긴요하게 쓰입니다.

멍석 하나 있으면 시골에선 짱입니다. 윷놀이 때, 추어탕 먹을 때, 대사치를 때, 멍석말이 할 때 긴요하게 쓰입니다.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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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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