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물가 '단순 비교'는 무리

김지수 기자의 '왕초보들이 알고 있는 미국에 대한 오해'에 대한 반론

등록 2003.03.22 10:11수정 2003.03.2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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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물가에 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하시면서 느끼신 한국과의 차이점, 보통 한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 모습과 실제와의 차이에 대해서 글을 쓰신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만,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님의 글에 대해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자 하여 글을 씁니다.


한국 사람들 (유학생, 이민자 모두)이 처음 미국에 오면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물가입니다. 적은 돈 한 번을 쓸 때도 원화로 계산해서 한국과 비교를 하게 되죠. 예를 들어, 초기에는 교통비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다니는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참고로, 제가 있는 곳은 뉴욕이며, 대중 교통의 가격이 $1.5 = 1700원 정도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식 물가(?)에 익숙해지면서 적응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워낙에 다양하고 지역마다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의 글에서는 동부 지역의 도시를 기준으로 하겠습니다. 또한 어떤 경제 단위에 속해 있느냐 (예를 들면 교포들의 비즈니스인지 미국 현지 비즈니스인지, 합법적인 신분인지 아니면 불법 신분인지 등등)에 따라 차이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신분으로 미국 주류 경제(?)를 기준으로 얘기를 한다는 점 등 양해해주시고 글을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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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초보들이 알고 있는 미국에 대한 오해

1. 일반 국민들의 임금 수준과 국가의 소득 수준을 무시하고 환율로만 변환하여 물가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님은 저번 글에서 대표적인 예로 햄버거 가격을 예로 들으셨습니다. 가장 저렴하다고 생각하는 햄버거 가격이 $4.5정도로 원화로 거의 5000원 정도이기 때문에 비싸다고 말씀하셨죠. 물론 환율로 환산하면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소득 수준과 임금 수준을 비교해보면 얘기는 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

우선 한국과 미국의 GNP 수준은 거의 3배 가까이 차이가 납니다. 물론 단순히 GNP 수치로서 개개 국민의 소득 수준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최소한 전체 국가의 소득 수준이 한국의 3배 정도가 된다고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일반 개개인들의 경제 활동에 더 가까운 영향을 소득 수준의 차이는 어떨까요. 여기서는 좀 더 현실적인 차원에서 얘기를 하기 위해서 법정 최저임금 보다는 실제 현장에서 지급되는 임금을 기준으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미국에서 보통 수준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게 되면 평균 연봉이 대략 3만불 정도가 됩니다. 즉, 범위로는 $2만5000에서 $3만5000정도가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반면 한국에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을 때 보통 평균 연봉이 2000만원 내외라고 볼 때 격차가 작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르바이트(part time)를 한다고 가정을 했을 때는 어떨까요. 미국에서 가장 흔하고 비교적 쉬운 정도의 일이 캐시어(계산원)입니다. 누군가가 처음에 캐시어로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보통 받는 초임이 시간당 $8 정도입니다. 원화로 계산하면 1만원 정도 되는 돈이죠. 한국에서 누군가가 초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고 하면 처음에 시간 당 1만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렇듯 미국과 한국은 소득 수준의 차이가 거의 2.5배 정도(원/달러 환율로 계산했을 때) 된다고 보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따라서 이런 소득 수준의 격차를 반영했을 때 미국에서 5000원 하는 햄버거의 가격이 한국에서 3500원 정도 하는 햄버거보다 훨씬 비싸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여기에 세금률이나 연금 같은 요소를 고려하면 그 차이가 좀 더 유동적일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의 소득 수준이 한국 보다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런 소득 격차를 무시하고 단순히 원/달러 환율로 물가를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2.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차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님의 글에서 기름 값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보통 미국에서 휘발유 1갤런(약 3.7리터 정도)을 사는데 $1.80(원화로 대략 2000원)정도 합니다. 요즘에 전쟁 때문에 많이 올랐기 때문이고, 보통 $1.5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반면, 의료비는 어떨까요. 앰뷸런스를 일단 한 번 타기만 하면 치료비 말고 기본적으로 $700-800 정도(100만원에 가까운 돈이죠) 비용이 청구됩니다. 미국의 의료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죠. 혹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영화를 기억하시는 분은 영화에 나오는 미술가가 강도를 당해서 다친 후에 병원비 때문에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여자 주인공의 아들이 몸이 아프지만 병원비 때문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등등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렇듯, 한국과 미국은 문화의 차이 때문에 동일한 재화(goods)나 용역(service)을 대하는 가치관이 다를 수 있고, 그 차이 때문에 물가 수준의 차이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전통적으로 차가 생활 필수품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물가에 비해서 휘발유 가격이 싼 것이겠구요. 반면 한국은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 비교적 공공재(public goods)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비는 훨씬 저렴한 것이겠죠.

또한 음식값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에 와서 보통 고기의 가격 때문에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기(닭, 돼지, 소)의 가격 자체가 놀랄 정도로 싸거니와, 한국에서 그렇게 비싼 쇠고기의 값이 돼지고기랑 비슷하거나 더 싼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반면 삼겹살을 먹으려고 한국 슈퍼마켓에 가면 삼겹살 가격이 미국 수퍼마켓의 쇠고기 보다 비싸다는 것에 놀라기도 합니다. 즉, 식생활의 차이에서 오는 물가의 차이가 크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화에서 오는 차이로 인한 물가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두 나라의 물가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3. 미국과 한국의 사회 구조 차이에서 오는 소득 격차를 고려해야 합니다.

사회 구조 상에서 오는 물가의 느낌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가정의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는 교육비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유치원 교육부터 대학원 교육까지 전과정이 사립과 공립으로 현격히 나누어져 있습니다. 사립 학교는 교육의 질 자체가 공립 학교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긴 하지만 엄청난 학비 때문에 일부 소수층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공립 학교와 일반 시민들을 기준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공립학교의 경우 고등 학교까지는 무상교육이라는 사실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즉, 대학 교육 전까지를 비교해 볼 때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일반 가정에서 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해 볼 때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죠. 한국에서도 물론 공교육비의 부담은 그리 크지 않지만, 사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학 교육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우, 아직도 국립 대학 등 공립 대학의 학비는 비교적 낮은 수준이지만 사립 대학의 학비 수준은 무시 못할 수준이죠. 공립 학교와 사립학교의 학비 차이는 사실 미국의 경우가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립 대학을 갈 경우 보통 학비가 $2500 정도(사립 대학의 경우는 10배 정도 됩니다) 되지만 사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각종 융자나 장학금 등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담은 그리 크다고 볼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이 학교 다닐 때 융자와 장학금으로 다니고 졸업 후에 2-30년에 걸쳐서 상환을 하는 구조라고 보시면 됩니다. 반면, 한국의 경우는 사립학교의 수가 공립학교의 수 보다 많을 뿐더러, 많은 학생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사립 학교를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비싼 사립 학교의 학비가 고스란히 일반 가정의 소득/지출 구조에 영향을 주는 것이죠 즉, 그러한 차이로 인한 일반 가정의 ‘사용가능한 소득’(disposable income)의 격차가 더 커진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disposable income이라고 하면 세금만을 고려하지만, 여기서는 그 의미를 조금 더 확대해서 사용했습니다.)

즉 앞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소득 수준 자체가 차이가 날 뿐더러 교육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미국 일반 가정의 소득 수준은 더 높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미국 가정은 교육비에 돈을 많이 안 써도 되기 때문에 다른 곳에 쓸 돈이 더 많아진다는 것이죠.

또한 세금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미국은 재화나 용역을 구입할 때 세금을 따로 계산해서 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미국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미국만 세금을 내고 한국은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국은 이미 물건값에 세금이 포함이 돼서 나오는 것이고, 미국은 단지 그것을 분리하는 것뿐입니다. 따라서 세금을 따로 내기 때문에 물가가 비싸게 느껴진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논리입니다.

이처럼 미국과 한국의 물가를 단순히 원/달러 환율로 계산해서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그 사회에 여러가지 요소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봤을 때, 미국의 물가가 한국에 비해 어떻다고 결론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쉬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저의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미국에서 경제활동을 해서 사는 사람들과 한국에서 사는 사람들을 비교해 봤을 때, 확실히 미국의 물가가 싸다고 볼 수 있으며, 유학생들처럼 소득의 원천이 한국내에서의 경제활동인 경우에는, 미국에서 사는 것이 더 비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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