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에 나무를 심다

가족 나무심기와 숲속 음악회

등록 2003.03.31 15:07수정 2003.03.3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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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 30일 일요일, 남편은 홍익대 운동장에 축구를 하러 갔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615축구단 단원으로서 땀을 흠뻑 흘리는 것이 한 주의 피로를 푸는 것이라며 빠지지 않고 꼭꼭 참석합니다. 나는 남편이 나간 뒤에도 한참을 더 잤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남편이 왔습니다. 보통 때는 축구단원들과 점심이라도 먹고 해서 2시도 넘고 하는데 오늘은 일찍 왔네요. 왜냐하면 오늘 성미산에 우리의 나무를 심을 계획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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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미산을 지키는 게 재미있어요"


점심을 먹고 성미산으로 갔습니다. 남편은 성미산 지킴이도 했지만 저는 성미산에 오르는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성미산엔 이미 많은 분들이 나무도 심고 잘려진 나무 가지를 자른 자연의 목걸이도 걸고, 또 멋진 장승도 만드셨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 붙어 있는 나무를 한 그루씩 갖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과 함께 자랄 나무들입니다.

성미산 정상엔 서 있는 나무가 없습니다. 잘려진 등걸이 쓰러져 있고 상수도 공사에서 박아 놓은 건설 예정지라는 팻말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잘려진 나무 가지로 만든 목걸이에 그림을 그려서 목에 걸었습니다. 아무 그림 없이 나이테만으로도 훌륭한 무늬가 되었습니다. 나는 아무 그림도 그리지 않은 채 구멍만 뚫은 자연산 목걸이를 목에 걸었습니다. 인공의 힘이 없이, 자연은 스스로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정상의 나무들이 잘려나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키작은 나무들은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잎을 틔웁니다.


나무심기가 끝나고 숲속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마치 모모가 있던 그 야외 극장, 가난한 사람들이 진솔한 흥겨움 같았습니다. 잘 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자기의 실력을 뽐내는 작은 자연 음악회였습니다.

아이들로 이루어진 도토리 합창단이 친구 성미산을 없애지 말아달라는 편지를 대통령에게 보냈습니다. 부디 아이들의 소중한 친구인 성미산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즐겁고 정겨운 공연은 3시부터 5시 30분까지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은 이날 하루 산 속에서 신나게 뛰어 놀았습니다. 옷에 흙이 묻어도 괜찮고, 넘어져도 심하게 다치지 않는 산에서 말입니다.

우리는 나무를 심었습니다. 나중에, 나중에 이 나무가 자라서 성미산의 푸르름을 만들 때까지 잘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성미산에 나무를 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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