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을 지키는 게 재미있어요"

등록 2003.02.03 15:28수정 2003.02.2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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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성미산 지킴이-재연, 승준엄마, 승준

성미산 지킴이-재연, 승준엄마, 승준 ⓒ 전민성

1월 31일 설 연휴 첫날 저녁 아직 누그러들지 않은 영하의 추위 속에 성미산 정상 봉우리에는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모임'(이하 '성지연') 회원들이 텐트를 치고 성미산을 지키고 있었다.

이틀 전인 29일 새벽 서울시 상수도 본부는 강추위 속에 등산객이 없는 틈을 타 성미산 봉우리 9천평에 자라던 천그루의 나무를 잘라냈다.

십여명의 성지연회원들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갈탄에 불을 지피고 그 주위에 둘러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원들의 어깨 너머에는 텐트가 쳐 있고 그 뒤로는 '성미산을 지키자'는 구호의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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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아래 위치한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승준(8) 군도 추운 날씨에 늦게까지 엄마와 함께 남아 있었다.

기자: 추운데 나와 있으니까 어때?
승준: 지키는 게 재미있어요.

기자: 성미산이 없어지면 뭐가 안 좋지?
승준: 성미산이 없으면 단독주택(아파트)이 생겨서 공기도 안 좋아지고...

기자: 처음 언제 성미산의 나무가 없어진 걸 알았지?
승준: (29일 오전) 도토리에서 나리(선생님)가 전체모임에서 성미산 갈 건데 갈 사람은 가고 안 갈 사람은 안 가도 된다고 했어요. 그때 성미산에 와서 봤어요.


기자: 그때 느낌이 어땠어?
승준: (나무 자른 사람들을) 막 패주고 싶었어요.

'도토리'란 성산동 주변의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하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을 가르킨다. 29일 성미산의 나무들이 베어지던 날 오후 '도토리'아이들 15명과 주민 20명은 망원역에서 모여 서울시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서울시청본관을 항의방문하고 시장면담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청측은 정문과 후문을 모두 막고 아무도 들여보내주지 않아 올들어 가장 추운 날 중 하나였던 29일 아이들을 포함한 주민 35명은 한 시간 동안 추운 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떨어야 했다.

a 세혁아빠

세혁아빠 ⓒ 전민성

결국 시청측은 서울시 상수도 본부측과 협상하라며 '성지연'대표 5명을 충정로에 위치한 상수도 본부로 오라고 했다. "추위에 떨던 아이들을 데리고 시청 구내 식당으로 가서 율무차를 자판기에서 뽑아주었지요." 승준의 어머니인 정성미(39)씨의 말이다. "시청 사람들이 왜 아이들을 데려왔냐고 하더군요."

'성미산 지킴이'로 통하는 '성지연' 회원들은 대부분이 이 지역 주민이면서 동시에 자연 친화적이고 체험적인 교육을 중요시하는 공동육아 프로그램의 회원이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우리 어린이집'에 가고 초등학교 4학년까지 아이들은 '도토리'에 가지요. 어렸을 때는 아이들의 감성과 창의성을 기르는 것이 인지교육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노는 것이 공부입니다." 세혁(6)과 주혁(5) 형제를 둔 세혁아빠의 말이다.

성서초등학교 6학년이며 '도토리'를 졸업한 주재현(13)은 "우리들은 (성미산에) 일주일에 3-4번 정도 와요. 오후 2, 3시쯤 오는데 술래잡기, 등산 등을 했어요"라며 벌목을 당하기 전 성미산에서 놀던 기억을 떠올렸다.

a 농성단장 김경훈

농성단장 김경훈 ⓒ 전민성

농성단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경훈(36)씨도 아들 용빈(5)을 '우리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는 아빠다. "공사 백지화가 목표입니다. 주민들의 요구와 의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마포구청과 서울시는 공사를 중단해야 합니다. 10여년 전 계획한 공사라서 밀어붙인다는 식은 주먹구구식 행정의 본보기지요. 온전한 생태환경인 숲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이미 서울시는 산의 정상부 9천평의 땅에 자라던 1천여 그루의 나무들을 벌목했고 성미산 정상의 3분의 1은 폐허로 변해 맨몸을 드러내고 있다. 추운 속에서도 늦게까지 남아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2차 토목작업을 막기 위해 성미산을 지키고 있던 승준과 재연을 포함한 성미산 지킴이들의 새해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성미산 지킴이'들과 지역주민들은 내일 2월 4일 화요일 정오 덕수궁 앞에서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규탄대회"를 갖고, 2월 8일 토요일 5시에는 성미산에서 촛불시위를 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성미산 지킴이'들과 지역주민들은 내일 2월 4일 화요일 정오 덕수궁 앞에서 "성미산 개발저지를 위한 규탄대회"를 갖고, 2월 8일 토요일 5시에는 성미산에서 촛불시위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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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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