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 대첩'을 이루어낸 성미산 주민들

15일, 망원역에서 홍보 집회 가져

등록 2003.03.16 16:56수정 2003.03.1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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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파인애플 신드롬'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주민들

'파인애플 신드롬'의 공연을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주민들 ⓒ 전민성

15일 오후 3시 지하철 6호선 망원역에서는 이틀 전 상수도 사업본부가 용역 100여명을 데리고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들에게 폭력을 가한 것을 알리는 홍보전과 촛불행사가 있었다.

아직은 쌀쌀한 이른 봄날씨에 참여한 주민들은 3월 30일에 있을 나무심기 행사의 신청도 받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도 나누어 주었다.

지하철 입구에 설치된 TV 모니터에서는 당시의 현장을 담은 비디오가 상영되어 많은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잡았다.

a '우쿨렐레'와 멜로디혼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스캥크와 티비

'우쿨렐레'와 멜로디혼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스캥크와 티비 ⓒ 전민성

오후 2시 성미산에서 있었던 ‘숲속학교’에 참여하고 산에 걸을 천에 그림과 글씨 등을 그리고 망원역을 찾은 아이들은 비디오를 보고 ‘산이 불쌍했어요’, ‘울 것 같았어요’, ‘깡패들이 잔인했어요’ ‘트럭(포크레인)을 부수고 싶었어요’라며 저마다 한 마디씩 의견을 말했다.

홍보를 위해 가지고 나온 판넬을 서로 나누어 갖고 일렬로 망원역 입구에 서고, 책상 위에 놓여있던 홍보용 전단지를 들고 역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아이들의 표정에는 진지함이 가득했다.

“오늘 오후 우연히 산을 찾았는데 재미난 ‘숲속학교’에서 고구마와 감자를 구워먹고 초록천위에 ‘제발 성미산을 살려주세요’, ‘성미산은 아이들의 꿈을 담고 있어요’, ‘성미산을 사랑해요’등의 글씨를 썼어요” 라고 판넬을 들고 있던 천재희(성서초4)와 천호준(성서초6) 남매가 수줍게 웃었다.

천재희양은 “사람들이 죽는 거(다치는 것)를 보니까 슬펐어요. 그리고 숲속을 부수니까 너무 속상했어요”라고 안타까와 했다.


a 서울시 행정의 모순을 지적하는 심재옥 서울시의원

서울시 행정의 모순을 지적하는 심재옥 서울시의원 ⓒ 전민성

오빠 천호준군은 “다음 주 ‘숲속학교’에서 ‘새집 만들기’와 ‘봄나물 캐기, 비빔밥먹기’ 등을 한다”며 호주머니에 고이 접어 넣었던 프로그램 종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이날 홍보전에 참석했던 심재옥 서울시의원은 “행정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러한 싸움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며 ‘1천만 그루 나무 심기’등에 예산을 책정한 서울시가 아름들이 나무 2400 그루를 두 시간 만에 베어낸 ‘용감무쌍한’행동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산 관통도로 사업을 예로 들며 "행정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집행하는 예산이 어디서 나온 돈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진실로 지역주민의 입장에서 그들의 편의가 무엇인지 한 번만 생각해 본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 행정가들의 주먹구구식 행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종합적인 안목의 행정이 아쉽다고 했다.

a 아빠와 촛불행사에 참여한 오세주, 박광범 군

아빠와 촛불행사에 참여한 오세주, 박광범 군 ⓒ 전민성

14일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시청역 구간에서 이루어졌던 서울시장 기습면담에 참여했던 신상렬(43)씨의 사회로 5시부터 시작된 공연은 하자센터에서 온 2인조 ‘파인애플 신드롬’의 공연으로 막을 열었다.

스캥크와 키비는 각각 ‘우쿨렐레’와 멜로디혼으로 ‘학교는 감옥이 아니다’, ‘우쿨렐레 주세요’ 등을 연주해 청중들의 환호를 받았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호받을 대상이 아니며 주위의 것들이 무너지고 부서지는데 세상일에는 신경쓰지 말고 공부만 하라는 학교가 감옥 같았다며, 자신의 자식들이 살아갈 성미산이 꼭 지켜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검게타고 야위었으나 힘있는 목소리로 연단에 선 김종호 ‘성미산을 지키는 주민연대’ 위원장은 이틀 전 상수도사업본부의 강행을 막아낸 주민들의 싸움을 ‘3.13 대첩’으로 부르자는이야기가 나왔다며, 당시 부상을 당한 13인의 이름으로 상수도사업본부, 제우스용역, 효림건설, 반도 등 네 곳을 폭행 치사로 고소를 신청해 놓았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시가 3월 14일 한국통신으로 하여금 천막농성장의 전화를 중단하는 등의 방해를 놓기 시작했으며, 저녁에는 산위의 천막을 3일 안에 철수하라는 내용의 서울시장 직인이 찍힌 계고장을 시공무원이 아닌 감리업체 직원 2명이 갖고 와 공문서 위조혐의를 조사중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연단에 선 심재옥 서울시의원은 이명박 서울시장이 "성미산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일부이며 반대주장 뒤에는 민주노동당 같은 정치조직의 이해관계가 있지 않느냐"고 했다며 "아직도 쌀쌀한 날씨에 금쪽같은 주말을 반납하고 망원역에 모인 이 많은 주민들이 정치조직에 선동되었겠느냐"며 청중을 향해 ‘여러분은 선동되어 여기 나왔습니까?”라고 크게 묻자 주민들은 “아니요!”라고 힘차게 답했다.

계속해서 사회자 신상렬씨는 14일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시청역 구간에서 기습적으로 시장면담을 이루어낸 성미산 지킴이들의 성과를 보고했다.

그는 지하철에서 시장에게 전날 성미산에서 일어난 폭력과 현장에 류재룡 상수도 사업본부장이 나와 있었다고 알렸으나 시장은 공사주체가 서울시 상수도 본부임에도 불구하고 마포구청에 문의하여 알아보겠다는 성의없는 대답만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서울 시장이 사람들이 많이 있던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는 입에 손을 대며 ‘쉬! 쉬!’ 하고 시민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개찰구를 빠져나와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알았어, 알았다니깐’ 하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화를 냈다고 말했다.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시장이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건설하는 대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민들이 제시한 배수탑 방식이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고했다.

계속해서 신재정(성산동, 45)•김혜장(성산동, 43) 부부는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지난 2월21일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딸 신나라(성서초 6)와 친구 최경빈(당시 성서초 6)군의 글을 읽었다.

a 촛불을 밝히고 성미산의 보존을 기원하는 주민들

촛불을 밝히고 성미산의 보존을 기원하는 주민들 ⓒ 전민성

“공원은 살아있지 않지만 성미산을 살아있어요. 콘크리트는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지만 성미산은 봄이면 새싹들이 피고 진달래가 피지요. 아파트에서는 뛰어 다니면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지만 성미산에서는 마음껏 뛰놀 수 있지요. 공원은 자연이 없으니까 자연을 흉내내서 만든 것입니다. 돌로 밥을 짓고 풀로 반찬을 만들면 소꿉놀이셋트와 비교도 안되지요. 한 번 사라진 자연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성미산을 지금 모습 그대로 보존해 주세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이용하는 성미산이지만 우리들에게는 미로 같은 길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지요. 성미산이 사라지면 성미산에 살포시 놔 주었던 그 벌레와 풀피리 부는 나무들은 어떻게 되나요? 갈 곳 잃은 동물들의 외침이 들리지 않나요?”라고 자연 성미산의 가치와 성미산에 사는 말없는 생명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행사가 끝나고 청중들은 초에 서로서로 불을 붙여 망원역에서 망원우체국 사거리까지 1km의 거리를 행진했다.

무리 속에는 망원역에서 홍보물 전시를 도왔던 오세주(성원초 1)군과 박광범(성원초1)군도 있었다. ‘성미산을 지키려 나왔다’고 밝힌 오세주군은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고 벌레도 죽이지 못하게 해야 성미산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개혁국민정당에서 성미산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새로 만들었다며 위원장직을 맡은 아빠 오경환씨도 촛불시위도 참가하고 홍보, 속보도 만들어 성미산 지키는 일을 돕겠다고 밝혔다.

같은 날 아침 11시 폭력사태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마포구청장을 항의 방문했던 어린이를 포함한 주민 60여명은 찬 바닥에 앉아 점심을 먹어야 했다. 아이들이 앉아있던 차가운 시멘트바닥 위쪽에는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고장'이라는 홍보글이 새겨져 있었다.

주민이 참여하는 협의기구를 만들자는 그들의 소박한 요구는 2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서울시와 마포구의 행정에 주민의 목소리가 들어갈 틈은 전혀 없는 것일까?

진정 주민의 이해와 요구를 들을 수 있는 행정의 참모습이야 말로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고장’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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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동네의 성미산이 벌목되는 것을 목격하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이주노동자방송국 설립에 참여한 후 3년간 이주노동자 관련 기사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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