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적은 사스가 아니라 '편견'이다

[중국 현지보고] 사스와 '중국혐오증' 확산에 대해

등록 2003.05.01 08:45수정 2003.05.02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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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아침,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예전에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는 어느 중국인 아가씨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올해 24살인 그 친구는 쓰촨에서 올라온 다공메이(打工妹, 도시로 돈벌러 온 농촌아가씨들을 지칭) 부류로 베이징의 한 식당에서 일하던 아가씨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중국인 할아버지와 친했던지라, 예전에 우연히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뜬금없이 전화를 했다.

“베이징에 사스가 창궐하는데 잘 지내세요? 그저께 내가 일하던 식당도 사스 때문에 당분간 영업을 정지했어요. 그래서 식당주인이 다시 문열 때까지 다른 데 가 있으래요. 근데, 내가 베이징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말이죠. 지금 민공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한다는데….

그러고도 한참을 이것저것 다른 얘기들을 했지만, 그녀가 왜 나에게 전화를 했는지는 뻔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갈 데가 없으니 당분간 우리집에서 기거하면 안되겠느냐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등줄기로 식은 땀이 맺히는 것도 같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도 같았다. 오죽 사정이 다급했으면 딱 한번 만났을 뿐인 나에게까지 전화를 할 생각을 했을까.

“어어…. 잘 지내. 집에만 가만히 있으면 베이징에 사스가 나도는 줄도 모르겠어. 같이 사는 방 친구도 한국에 안돌아가고 지금 나하고 같이 지내. 방 친구가 다른 사람들이 집에 오는 걸 싫어해서 나도 요즘에는 사람들을 잘 안만나. 사스가 무섭긴 무섭나봐….”

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 그날 내내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갈 데가 없어서 베이징 어느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한편으로 그렇게 핑계를 댈 수밖에 없었던 나의 몰인정함에 대해서도 얼마간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날 아침 한가지 사실만은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예전에 어떤 분이 말한 것처럼 “이 빌어먹을 사스는 사람들의 폐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차단시키고 있다”는 것을.

사스와 ‘중국혐오증’의 확산


무섭고 경악스러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최근 중국의 사스관련 보도들이 한국언론 매체를 도배하면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중국혐오증’역시 사스 못지않게 ‘살 떨리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인터넷을 중심으로 네티즌들이 무차별적으로 퍼뜨리고 있는 이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도 마땅한 치료약이 없어 보이는 아주 고약한 신종 바이러스임에 틀림없다.

최근 한국으로 돌아간 많은 지인들은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얘기들을 한다. “절대 주변 사람들한테 중국에서 왔다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 겠어. 소문내지 않고 잠입하든가 해야지.” 왜? 속된말로, 요즘 중국에서 왔다고 하면 무슨 ‘나환자’ 쳐다보듯 하기 때문이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역시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런 얘기들을 한다. “애국하는 심정으로 그냥 남아있지 뭐. 이럴때 아니면 언제 애국해 보겠어.”.


그러다, 최근들어 해열제를 먹고 귀국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한국언론의 보도를 접하고는 그만 기가 질려 버렸다. 중국에서 귀국한데다 조금만 열이나고 기침이 나면 자칫 ‘사스의심환자’로 분류될까봐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으면 해열제를 먹고 귀국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의 분위기나 네티즌들의 반응은 해열제보다 더한 서글픔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정작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문제는 자국인에 대한 일시적인 왕따현상이 아니라 중국, 중국인에 대한 비이성적인 ‘혐오론’의 확산이다. 최초의 사스 환자가 중국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중국과 중국인 전체를 무슨 비위생적인 바이러스 덩어리로 취급하는 태도이다. 그것이 경악스러운 것은 마치 이슬람 문화나 흑인들에 대해 근거없는 편견을 퍼뜨리는 서방의 인종주의적 시각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만일, 사스가 중국에서 먼저 대규모로 퍼지지 않고 미국이나 기타 선진 서방국가에서 확산되었다고 하면 그 반응이 어땠을까. 그때도 지금의 ‘중국혐오증’ 같은 비이성적인 사고들이 판을 쳤을까. 이와 비슷한 얘기가 얼마전 모 신문에도 실렸다.

“만약 사스에 백인들이 감염되지 않았더라도 이 난리가 났을까. 그저 홍콩과 중국이라는 ‘지역’문제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사실 사스 초창기에는 그런 식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백인들이 걸리기 시작하면서 이것은 ‘세계’ 문제가 되었다. 최근 영국의 사학 명문 이튼 등 일부 기숙학교들은 학기 시작 전 10일 안에 사스 발병지역을 다녀온 학생들에게 등교 금지령을 내리고 벽지의 캠프에 이들을 격리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의 사스 공포에서 인종주의의 유령을 보는 것이 억설이 아니라는 분명한 증거다.”(한겨레신문, 4월 29일자)

최근 한국 네티즌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중국혐오증’도 어떻게 보면 이러한 인종주의의 변종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과민한 반응일까? 요즘 유럽 등에서 아시아인들이 사스로 인해 각종 인종주의적 수난을 겪고 있다는 얘기들이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같은 아시아권인 우리들 내부에서도 사스로 인해 중국, 중국인 이지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한번쯤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것도 바로 얼마전까지 세계에서 유례없는 ‘중국 열풍’이 불었던 나라에서 말이다.

얼마전, 미국의 한 신문에 실린 “중국을 격리시키자”라는 내용의 기사가 중국인들을 자극시킨 적이 있다. 중국 <인민일보>는 사설을 통해 “각 매체들이 관련 사실들을 보도할 때 당연히 갖추어야 할 선의와 직업적인 태도가 부족하다”며 “문제를 정치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마치 에이즈 환자가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어느 누구도 미국이 에이즈의 발원지라고 단정하지 않는것처럼 사스환자가 중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다고 해서 중국을 사스의 발원지로 여기는 ‘정치적 판단’을 하지 말라는 얘기였다. 핵심은 그 ‘정치적 판단’의 배후에 작용하고 있는 서방을 중심으로 한 외신들의 ‘중국 때리기’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 논리에 동의를 하건 하지 않건간에, 한번쯤 경청해볼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미국에서 ‘9.11’ 사건이 터졌을때, 전세계의 상식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먼저 애도와 슬픔을 표시했던 걸로 기억한다. 정치적 판단이나 분석은 차후의 일이다. 감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어쩔수 없이 격리를 시키고 일시적인 입국거부를 한다고는 할 수 있어도 “중국인은 원래부터가 그렇게 비위생적인 사람들이라서 이 기회에 완전히 격리를 시키자”라는 식의 몰상식한 발언들은 하지 말라.

한 사회의 성숙도를 재는 기준은 그 사회의 위기를 대처하는 능력과 제도에 달려 있다고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인류애와 관용의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사스라는 인류의 새로운 ‘적’ 앞에서 얼마만큼이나 보편적인 인류애와 관용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을까. 그것도 바로 지척거리에 있는 이웃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슬픈 현실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나역시 어느날 아침 또한번 그 아가씨의 전화를 받는다면 이번에는 뭐라고 둘러댈까. “사실 넌 지금까지 비위생적인 숙소에서 집단적으로 기거를 해왔기 때문에 솔직이 겁이 난다. 사스에 감염될까봐….” 이렇게 ‘속 시원하게’ 거절해야만 할까.

요즘, 베이징에서 산다는 것은 때때로 이렇게 우울하고 답답하고 또 괜히 화가 나는 날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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