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이한우의 '코드론'에 담긴 강박관념

등록 2003.05.13 14:50수정 2003.05.1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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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 가운데 <조선일보>의 이한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한우 기자 자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는 1998년 당시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이었던 최장집 교수를 그의 저서 속의 한두 개의 표현을 문제삼아 공직에서 몰아내는 이른 바 '사상검증'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비판했던 강준만 교수까지 – 역시 한두 개의 표현을 문제 삼아 –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현재 이한우 기자는 <조선일보>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철학을 전공한 자신의 이력을 살려 <이한우의 학술 이야기>라는 칼럼도 연재하고 있다. 솔직히 필자는 그가 쓰는 글에 별 관심이 없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반공'을 합리적인 토론의 우위에 두고 있는 신문사의 논설고문에게, 그것도 '사상검증'의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사람에게 합리적인 담론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에 실리는 글은 읽어보지 않아도 대개 예측이 가능하다. "뉴스는 미리 쓰여진다"는 저널리즘 이론을 이 신문만큼 잘 보여 주는 사례도 없을 것이다. 이 신문을 펴 보면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내일도) 이렇게 세 가지 담론만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은 언제나 옳다." "북한은 언제나 그르다." "기득권층은 보호되어야 한다."

때문에 필자는 이한우 기자가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들어 "盧 후보의 이념적 좌표는?"이라는 글을 통해 '사상검증'을 시도했을 때에도 그가 '일상적 업무'을 수행하고 있겠거니 하면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물론 그런 한심한 생각은 들었다. 한국의 거대상업 언론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이념적 좌표"라는 신조어야말로 21세기 한국의 최대 희극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이다.

"보수"로 자신을 규정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머리 속을 무척이나 들여다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들은 '이념'이라는 것이 종양처럼 사람들 몸에 일정량 들어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람들은 머리 속에 자리잡은 그 '이념'이란 놈의 지령에 따라서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옛날에는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잡아다가 고문을 하거나 가두는 등의 방법으로 '치료'하기도 하고 때로는 목숨을 빼앗기도 했지만, 소위 '민주화 시대'에까지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고안해낸 것은 "이념적 좌표"라는 '과학적' 측정 장치다. 그들은 "이념적 좌표"라는 초음파진단기를 통해 이념이라는 '종양'의 크기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당사자의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지 이젠 계속 당사자에게 '자백하라'고 주문한다. 당연하다. 이념이란 애초에 "측정"할 수도, "자백"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적"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정치적으로 진보적인 사람이 여성문제에 대해서 한없이 보수적일 수도 있고, 여성문제에서 진보적이라는 사람이 정치적으로는 극우를 달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란 이처럼 모순적인 정체성의 집합이다. 이념이란 이한우 기자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덩어리'의 형태로 사람들 머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한우 기자는 앞의 글에서 "한국사회에서 이념적 좌표를 매기는 지표의 하나"는 "미국과 북한을 어떻게 보는가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정상적인 이념논쟁을 피하거나 '색깔론'이라며 역공세를 취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내놓지 않겠다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대단히 부정직하고 이중적인 처신이다. 노 후보가 당당하게 '나는 진보적이지만 대통령이 되면…' 혹은 '나는 진보적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식으로 자신의 미래비전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기대하는 것이 그에게 너무 어려운 주문인가?" 이한우(hwlee@chosun.com) <조선일보> 2002.11.28

도대체 뭘 밝히라는 이야기일까? 만일 필자가 "보수"를 자처하는 이한우 기자에게 동일한 질문을 한다면 그는 "당당하게"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이한우 기자가 내놓은 결론은 이것이다.

"대선에서 이념 논란만 있어서도 안 되겠지만, 이념 논란 없는 대선도 맹목적인 것이다. 이념의 뒷받침 없는 정책논쟁은 사상누각이다."

[태평로] '코드'란 말의 오만함 PDF
[태평로] '코드'란 말의 오만함 PDF디지틀조선
왜 "이념 논란 없는 대선이 맹목적"이며 "이념의 뒷받침 없는 정책논쟁은 사상누각"인지 그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이게 소위 한 신문의 사설을 쓰는 기자의 수준이다.

필자는 이 결론 부분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학자의 '사상'을 한두 개의 단어로 '검증'할 수 있다고 믿는 확신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필자의 이런 확신을 뒷받침해준 것은 이한우 기자가 최근(5월6일)에 쓴 "코드란 말의 오만함"이라는 칼럼이다.

그는 <학술이야기>를 쓰는 기자답게, 대통령의 "코드"라는 말에서 "기호학"부터 시작해서 "80년대 운동권"과 "비밀조직의 암호"까지 끌어온다. (그의 기호학에 대한 설명을 그대로 믿는 독자들이 없기 바란다. 그가 주장하는 기호학의 기원과 기호학에서 사용되는 '코드'라는 개념에 대한 설명까지 모두 오류라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기호학에서 '코드'는 결코 '암호'라는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나는 이한우 기자가 "코드"라는 용어가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의 인선과정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했기를 바란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쓴 것이 잘못이고 어떤 사람을 쓰지 않은 것이 잘못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한우 기자는 기껏 "아리송한 코드 운운하며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뿐이다. "책 좀 읽었다고 유세 떠는 행태"를 보이면서 말이다. 국민들 가운데 과연 누가 "코드가 맞는다"는 대통령의 말에서 비밀조직을 떠올리고 기호학을 떠올린단 말인가?

설명하기도 민망하지만, "코드가 맞는다"는 말은 "나와 일하는 방식이 유사하다"거나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의 일상적 표현일 뿐이다. 이 용법을 이해하는 데 "운동권"이 왜 나오고 "비밀조직"이 왜 나와야 한단 말인가? 그의 어처구니 없는 상상력은 다음의 주장에서 극에 달한다.

"사실 80년대 전반에 대학을 다녀보지 않은 사람들은 '코드'라는 말이 갖는 무궁무진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비밀결사를 함께 할 정도의 내밀한 공속감(共屬感)을 나눠갖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에 대해 '코드가 같다'고 말하기 어렵다. […] 문제는 코드 운운하는 사람들이 그 코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지하 운동을 하고 있다면 코드의 내용을 말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국민 앞에 정치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실상(實相)은 숨긴 채 코드가 맞니, 다르니 하며 편가르기를 하는 것은 국민들을 깔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는 '코드'라는 단어 안에 대통령의 "무궁무진한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역시 그는 '사상검증'의 전도사답게 대통령에게 "코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요구한다.

독자 중에서는 이한우 기자가 일상적 용어와 학술개념을 혼동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신문의 기자라는 사람이 모든 사람들이 다 이해하는 일상적 언어의 용법을 모른단 말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한우 기자의 글이 갖는 기능은 아주 명백하다. 그가 최장집 교수에게 했던 그 방식 그대로, '코드'라는 하나의 단어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비밀결사"와 "운동권"의 음산한 이미지를 부여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독자 그 누구도 '코드'에 그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는 자상하게도 종횡무진 80년대로, 그리고 프랑스로 헤매고 다녀야 했다.

필자는 <조선일보>의 철학에 입각해서 이한우 논설위원의 사상을 '검증'해보려 한다. 그가 최장집 교수의 글에서 불온한 사상을 읽었듯이, 나는 그의 글에서 비논리,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강박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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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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