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초 축구부 화재참사 1백일

죄는 벌하고 넋은 추모

등록 2003.06.28 10:36수정 2003.06.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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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9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화재참사가 발생한지 다음달 5일(토)이면 1백일이 된다. 세달여 조금 넘는 시간.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었고 일반인들 뇌리에서 그날의 악몽은 점차 오래전 기억으로 지워지고 있다. 지워지는 기억이 안타까웠던 것일까.

화재가 발생한 3월26일부터 89일째가 되는 지난 24일(화). 지역에서는 화재참사와 관련한 두가지 엇갈린 풍경이 연출됐다.

법정에 선 어른들

24일 오전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는 천안초 화재참사와 관련, 어른들이 법정에 섰다. 천안지원 형사1단독(재판장 윤성묵) 심리로 열린 이날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천안초 화재참사로 기소된 교육 관계자 전원에 금고 및 징역형을 구형했다.

학생들 합숙 관리를 소홀히 한 축구감독 오모씨와 코치 허모씨에게는 업무상 과실 치사상죄를 적용, 금고 5년을 구형했다.

천안초 교장 성모씨와 행정실장 안모씨, 체육부장 오모씨에게도 같은 죄를 적용해 각각 금고 3년을 구형했다.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천안교육청 보건체육담당 윤모 장학사와 박모 행정담당에게는 공문서 위조죄를 적용, 징역 2년과 1년을 각각 구형했다.

사건을 맡았던 이창원 검사는 “교육 관계자들의 불성실한 관리로 꽃다운 어린 학생 9명이 숨지고 아직도 많은 학생들이 부상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구형 배경을 설명했다.


결심공판에는 유가족 및 부상자 가족들과 교육청 직원, 학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유가족대책위원회 김창호 위원장은 이날 공판과 관련, 격앙된 감정을 솔직히 드러냈다. 검찰의 구형 결과와는 별도로 재판정에 선 교육 관계자들 모습에서 크게 실망했다는 반응.


천안초 축구부 화재참사와 관련, 피해부모들과 시민들은 사법처리가 미온적이라는 불만이다.
천안초 축구부 화재참사와 관련, 피해부모들과 시민들은 사법처리가 미온적이라는 불만이다.윤평호
“너무 화가 나 공판 중간에 밖으로 나왔다. 법정에 선 어른들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죄를 받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아무 죄도 없는 아이들 9명이 죽었는데도 자기 살 궁리만 하는 교육 관계자들 모습이 정말 실망스러웠다.”

천안초 축구부 화재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인 한종술 변호사는 검찰의 기소자체에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한 위원장은 “검찰이 화재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전임 천안교육장이나 충남교육감은 정작 기소하지 않은 채 아랫사람들만 처벌하고 있다”며 교육당국에 면죄부만 제공하는 이번 재판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오는 7월15일(화) 재판부는 어떤 확정 판결을 내놓을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썰렁한 추모대회

검찰의 결심공판이 열린 24일 천안초에서는 총동창회(회장 김숙희) 주최로 추모대회가 열렸다. 추모대회는 당초 화재가 발생했던 축구부 숙소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우천 때문에 소강당으로 옮겨 진행됐다.
화재 발생 이후 총동창회가 자체 추진했던 성금모금 결과에 대한 보고대회를 겸해 열린 이날 추모대회는 ‘대회’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썰렁했다.

오지 않는 참석자들을 기다리느라 오후 5시 시작 예정이었던 추모대회는 30분 늦게 개회했다. 시간을 늦춘 보람도 없이 참석자들 수는 고작 13명. 총동창회 회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천안초 성금보고 추모대회가 24일(화) 교내에서 쓸쓸하게 개최됐다.
천안초 성금보고 추모대회가 24일(화) 교내에서 쓸쓸하게 개최됐다.윤평호
추모사 낭독에 이어 성금보고가 진행, 곧장 성금 사용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다. 성금 사용처를 놓고 토론이 시작되자 추모대회장에서는 금새 격론과 고성이 오갔다.

동창회가 그동안 모은 성금 총액은 1012만8000원. 회기별 동창회에서 540만원, 5월26일 제일교회에서 개최한 자선음악회 수익금 136만8000원, 개인 성금 336만원을 모두 합한 금액이다.

총동창회 김성열 상임부회장은 “성금이 1000만원 정도로 소액인 만큼 교육청과 시가 추진하는 교내 추모동산 조성에 성금을 보태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참석자들 중에서는 다른 의견도 개진됐다. 총동창회 한 회원은 “추모동산 같은 전시성 사업에 성금을 쓰지 말고 축구발전기금으로 사용하거나 아니면 유가족들에게 직접 전달해 도움을 주자”고 말했다.

서로 다른 의견을 놓고 한동안 언쟁이 계속, 분위기가 격앙되자 김성열 부회장은 표결을 진행해 자신의 안을 승인받았다.

참석자들은 추모대회 끝 순서로 대통령과 교육부총리, 교육감, 교육장, 시장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했다. 호소문에서 총동창회는 “비통에 빠져 있는 천안초가 활력을 되찾도록 시설개선 투자에 신경을
써 달라”고 밝혔다.

유가족.부상자 그후
부상자 미국치료 추진, 유가족 소송 준비

3월26일 발생한 화재로 천안초 축구부는 9명이 사망했고 15명이 다쳤다. 부상한 15명 가운데 3명은 아직도 서울의 화상 전문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특히 45도 화상을 입은 윤장호(6학년)군은 부상이 심해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장호군을 포함해 3명의 부상자를 미국에서 치료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충남도와 협약이 체결된 미국의 LA 슈레이더 병원에 이들을 보내 고도화된 전문 치료를 받도록 하겠다는 계획.

퇴원한 12명의 축구부원들 가운데 현재 천안초에 재학하고 있는 학생은 6명.

3명은 축구를 포기하고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로 전학갔다. 다른 3명은 축구를 계속 하기 위해 축구부가 있는 서울의 초등학교로 전학갔다. 천안초에 다니는 6명 가운데서도 2명은 축구를 희망, 2학기쯤 다른 학교로 전학을 검토하고 있다. 천안초 축구부 부활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
부상자 보상은 개별보상으로 진행, 15명 부상자 가운데 10명이 교육청과 합의를 끝냈다. 교육청 관계자는 “부상이 심한 장호군을 제외한 2∼3명은 조만간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 보상은 일단락 됐지만 갈등은 지속되고 있다. 유가족대책위는 “교육청이 국민성금으로 모금한 돈 일부를 보상금으로 전용했다”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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