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망에 담아온 산사이야기(8)-지리산 화엄사

화엄사 산문은 곧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산문

등록 2003.07.16 07:50수정 2003.07.1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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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휴전선 이남에 있는 무지기 수의 산중 언뜻 기억나는 산 이름을 대라고 하면 어떤 산 이름들을 말할까? 한라산, 치악산, 설악산, 소백산, 태백산, 대둔산, 덕유산, 계룡산, 지리산 그리고 고향에 있는 앞산이나 뒷산쯤을 말할 듯 하다.

궁금증이 생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지리산을 말할 것인가가. 교과서에 나와서가 아니라 지리산을 모르는 성인은 없을 듯하다. 전남·북과 경남 삼도를 걸치고 있는 규모도 규모지만 아직 상처의 딱지처럼 지리산에 묻어있는 6.25의 상흔 때문일지도 모른다.


2년 전 지리산을 1박 2일로 종주 한 적이 있다. 2박 3일 정도면 좋을 듯한데 다른 목적이 있어 최소한의 시간을 잡았지만, 가던 길로 다시 돌아와야 하는 반야봉도 빠트리지 않고 들렀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일정 부분이나 많이 알려진 계곡을 한번쯤은 관광 삼아 다녀왔겠지만 정작 지리산을 종주한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듯 하다.

a <智異山大華嚴寺>란 편액이 걸려있는 이 문은 화엄사의 산문이지만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산문이기도 하다.

<智異山大華嚴寺>란 편액이 걸려있는 이 문은 화엄사의 산문이지만 지리산으로 들어서는 산문이기도 하다. ⓒ 임윤수

일반적으로 지리산 종주는 전남 구례군 마산면에 있는 화엄사부터 시작하여 천왕봉을 끝으로 하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반대로 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화엄사-천왕봉 코스를 선택했을 때 화엄사부터 노고단 하단까지 20리쯤은 한 뼘의 평지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긴긴 오르막 비탈길이다. 우스개 소리로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올라서면 지리산 종주를 반쯤은 끝냈다고 할 정도로 사람을 지치게 하는 그런 코스다.

화엄사부터 노고단 하단 평지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이 되지만 계속된 오르막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하지만 지리산 종주 전 코스 중에서 이곳만큼 아름답고 기억에 남을 만한 곳도 드물 듯 하다. 원래 힘든 과정이 오래 기억되기 마련이지만 오르막 내내 시원한 계곡이 길동무처럼 함께 한다.

자동차로 노고단 하단인 성삼재까지 가고 그곳부터 종주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꽤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화엄사부터 노고단까지를 걷지 않고서 지리산 종주를 이야기하는 것은 뭔가를 빠트린 미완성의 종주라고 말해주고 싶다.

a 여느 일주문(불이문)들과는 달리 양반 집 솟을대문처럼 생겼다. 이 문을 들어서면 국보와 보물이 즐비한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보고의 땅으로 들어가면 자신도 곧 보물이 됨을 느끼게 된다.

여느 일주문(불이문)들과는 달리 양반 집 솟을대문처럼 생겼다. 이 문을 들어서면 국보와 보물이 즐비한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보고의 땅으로 들어가면 자신도 곧 보물이 됨을 느끼게 된다. ⓒ 임윤수

지리산 종주가 시작되는 그 곳에 있는 화엄사(華嚴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9 교구본사다.


554년 신라 진흥왕 5년에 인도 승려 연기에 의해서 창건되고, 642년 선덕여왕 11년 자장이 중창하였으며 의상대사가 장륙전(현재의 각황전)과 화엄석경을 만들었다는 창건설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 고찰들의 대부분이 이런저런 재란에 황폐화되고 소실되었듯 화엄사도 정유재란 때 현재의 각황전인 장륙전과 화엄경이 파괴되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그 후 1630년 인조 8년에 벽암 각성(碧巖 覺性, 1575∼1660년)에 의해 중수되어 선종 대가람으로 인정받았고, 1702년 숙종 28년에 장륙전이 중건되어 선교 양종 대가람의 지위까지 얻었다고 한다.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화엄사는 우리나라 문화재의 보고이며 신라사찰 가운데 지리산 입산 1호의 천년 거찰이다.

a 이른 시간 종각에 걸려있는 달빛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이른 시간 종각에 걸려있는 달빛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 임윤수

15세기에 가깝게 장구한 역사를 지닌 화엄종찰답게 화엄사에는 각황전, 석등, 4사자 5층석탑 등 국보 4점과 보물 5점, 천연 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 사찰문화재 20여 점이 보존돼 있다.

매번 절을 찾으며 느끼는 소감이지만 절은 곧 우리 나라 대다수 보물과 유물의 보고라는 생각이다. 화엄사의 넓은 경내 대부분 전각과 탑이 국보이자 보물 그리고 유물임을 알게되면 이 곳이 찬란한 불교 문화의 보고임에 벅찬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규모에 걸맞게 큼지막하게 <지리산대화엄사(智異山大華嚴寺)>라 쓰여진 편액을 달고 있는 산문을 들어서면 산사냄새 물씬한 숲길로 들어선다. 서둘지 않는 넉넉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양반 집 대문 같은 불이문에 다다르게 된다.

a 어둠을 뚫고 대웅전 문살 틈새로 비추는 불빛엔 스님의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함께 실려있다.

어둠을 뚫고 대웅전 문살 틈새로 비추는 불빛엔 스님의 염불소리와 목탁소리가 함께 실려있다. ⓒ 임윤수

정남향으로 나 있는 불이문을 지나 좌측으로 조금 구부러진 길을 따라 들어가면 금강문이 나오고 이 문을 지나면 천왕문에 다다른다. 천왕문은 금강문과는 서쪽방향으로 조금 빗겨 있어 시각적 단순함을 피할 수 있는 독특한 맛이 있는데 태극형상으로 가람이 배치된 것이라고 한다.

천왕문을 지나 다시 올라가면 보제루에 이르게 된다. 대개 다른 절에 있는 보제루는 그 밑을 통과하여 대웅전에 이르게 되어있는데 화엄사의 보제루는 루의 옆으로 돌아가게 되어있다. 보제루를 통하여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계단처럼 층진 넓은 공간이 나온다. 아래층 마당 형태의 공간에 동서 두 개의 탑이 사선방향으로 보인다.

동쪽 탑 위 부분 보다 한단 높은 위 터에 대웅전이 있고, 서쪽 탑의 위 부분, 대웅전과 평탄한 역 기역자 형태의 위치에 각황전이 있다.

a 숙종이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명명한 <각황전>으로,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숙종이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명명한 <각황전>으로,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다. ⓒ 임윤수

이미 불이문 바깥부터 들려오던 산사의 새벽 목탁소리가 공중을 맴돌며 메아리 치는 듯 귓전에 점점 크게 들린다. 새벽 산사 몇 개의 전각에서 동시에 울려나오는 목탁소리는 장엄 그 자체이다.

목탁소리에 장엄이란 표현이 왠지 어색해 보일 듯 하다. 그러나 화엄사의 목탁소리는 다른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각황전과 대웅전 그리고 명부전과 나한전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는 주변의 산 벽까지 갔다 다시 돌아오며 회오리바람처럼 울림을 만들어 낸다. 자연이 연출하는 입체음향 효과를 덤으로 실은 목탁소리가 청각의 단계를 넘어 가슴 저 아래까지 숨어든다.

전각에서 흘러나오는 조그만 불빛이 탁한 머릿속을 밝게 해 준다. 적막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조용한 새벽 산사에서 목탁소리와 조화를 이루는 스님들의 독경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에 퐁당하고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맴 돌이 여운을 만든다.

a 각황전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 쪽 아침 전경으로 산허리를 감고 있는 안개에 잘 어울린다.

각황전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 쪽 아침 전경으로 산허리를 감고 있는 안개에 잘 어울린다. ⓒ 임윤수

규모가 작은 산사는 말할 것 없고 웬만한 규모의 사찰도 아침예불은 전각 한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을 보다 동시 여러 전각에서 울려나는 독경과 목탁소리의 한 가운데 서니 마음이 붕 떠오르는 듯 하다.

보름 달빛이 남아있는 이른 새벽에 맞이한 화엄사의 아침예불 목탁소리와 독경소리는 귓전을 윙윙 울리며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가슴으로 모으게 한다.

각황전 북쪽 측면에는 자그마한 나한전이 각황전과 같은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대웅전 서 쪽 측면에는 원통전등 작은 전각이 대웅전과 같은 방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전각의 배치는 대웅전과 보제루를 잇는 축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각황전의 중심과 앞에선 석등을 잇는 축이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일주문과 금강문 그리고 천왕문들이 모두 이 중심축 선상에서 조금씩 빗겨 태극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a 자식이 어머니께 효로 공양하는 듯 배치된 두 개의 탑이 인륜을 생각하게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읊은 도선국사 의천의 시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자식이 어머니께 효로 공양하는 듯 배치된 두 개의 탑이 인륜을 생각하게 한다. 주변을 둘러보고 읊은 도선국사 의천의 시가 시비에 새겨져 있다. ⓒ 임윤수

각황전의 오른쪽(불이문 쪽) 뒤편에 돌계단이 있는데 그 108계단을 오르면 효대가 나온다. 미리 이 효대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화엄사를 찾는 참배객이나 관광객은 그 계단이 잘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각황전의 규모와 장엄함에 압도되어 그냥 지나치기 쉽다.

108계단을 올라 효대에 오르면 국보 제35호인 4사자석탑이 있다. 4사자석탑은 중간층 받침돌 모퉁이에 하나씩 있는 4개의 연꽃자리 위에 4마리 사자가 앉아 위층 탑 돌을 받치고 있다. 모퉁이에 있는 4마리의 사자들 중앙에는 스님 한 분이 위엄한 모습으로 사자들과 같이 위층 탑 돌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렇게 이루어진 탑의 기초 위로 3층의 탑 몸체(塔身部)가 있고 그 위에 커다란 꾸밈없이 담백하게 처리된 탑 꼭지부(上輪部)가 있다.

a 단청이 되지 않아 맑은 느낌을 주는 나한전이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단청이 되지 않아 맑은 느낌을 주는 나한전이 한결 친근하게 느껴진다. ⓒ 임윤수

4사자석탑 속 스님을 향하여 예를 올릴 수 있는 제단석이 있고 그 뒤에 석등이 있다. 그 석등의 하부 중앙에는 스님 한 분이 한 쪽 무릎을 꿇고 한 손에 공양 그릇을 들고 4사자석탑 속 스님을 향하여 있어 이 석등을 공양석등(供養石燈)이라 부른다 한다.

석탑 속의 스님은 이 절을 창건하신 연기조사의 어머님이고 공양석등에 계신 스님은 연기조사라고 한다. 4사자석탑과 공양석등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자식이 어머니에게 공양을 올리는 모습으로, 연기조사가 그 어머니에게 공양을 올리는 모양을 형상화하였다 한다. 어머니와 자식의 애틋한 사랑과 효가 형성화 된 석탑과 석등이 있는 이 터를 효대(孝臺)라 부른다.

a 화엄사와 관계된 많은 대덕고승들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 부도군이다.

화엄사와 관계된 많은 대덕고승들의 자취를 느끼게 하는 부도군이다. ⓒ 임윤수


도선국사 의천이 효대에서 읊은 시

寂滅堂前多勝景
吉祥峰上絶纖埃
彷徨盡日思前事
薄暮悲風起孝臺

적멸당 앞에는 훌륭한 경치도 많고
길상봉 위에는 가는 티끌조차 끊겼네
하루 종일 거닐면서 과거사를 생각하니
날 저문 효대에 슬픈 바람 이는구나.
/ 임윤수
고려 제 11대 문종의 네 번째 왕자로 태어난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효대에 올라 4사자석탑과 공양석등을 보고 지은 시 한 수가 효대시비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화엄사에는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많은 전각과 탑 그리고 비석 등이 있다. 그 많은 전각 중에 규모나 역사성에서 당연 시선을 고정시키는 곳은 역시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시고 있는 각황전이다.

각황전은 국보 제67호로 숙종 25년에 시작하여 28년에 완성된 2층 팔각지붕의 전각으로 건립배경과 <각황전>이라 부르게 된 설화가 있어, 최정희님의 한국불교 전설 99에 있는 <공주의 울음과 불사>를 빌어 소개한다.

역시 새벽산사는 일상에 지치고 피곤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뿐 아니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다준다.

a 효대에 서서 바라본 화엄사가 안개에 포근히 쌓인 듯 하다. 경내에 흐르는 감로수는 갈증을 덜어줄 뿐 아니라 심신의 피로도 씻어 줄듯하다.

효대에 서서 바라본 화엄사가 안개에 포근히 쌓인 듯 하다. 경내에 흐르는 감로수는 갈증을 덜어줄 뿐 아니라 심신의 피로도 씻어 줄듯하다. ⓒ 임윤수

보름달이 남아 있는 이른 시간 지리산 초입 화엄사에 울려 퍼지던 아침 예불 목탁소리는 정한수 떠놓고 뭔가를 기원하던 어머니의 모습처럼 마음에 위안을 가져다준다.

아침예불로 시작되는 산사의 맑은 목탁소리를 들으며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지리산 종주의 첫걸음을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각황전 불사에 얽힌 설화
공주의 울음과 불사

『주지와 대중은 들으라.』
『예.』
『내일 아침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어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을 화주승으로 삼아라.』
때는 조선 숙종조. 임란 때 소실된 장륙전 중창 원력을 세운 대중들이 백일기도를 마치기 전날 밤!
대중은 일제히 백발의 노인으로부터 이 같은 부촉을 받았다.

회향일인 이튿날 아침 큰방에 모인 대중은 긴장된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려 밀가루 항아리에 손을 넣었으나 한결같이 흰 손이 되곤 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주지 계파 스님뿐.
스님은 스스로 공양주 소임을 맡아 백일간 부엌일에만 충실했기에 아예 항아리에 손을 넣지 않았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마지막으로 항아리에 손을 넣게되었다.

이게 웬일인가?
계파 스님의 손에는 밀가루 한 점 묻지 않았다.
스님은 걱정이 태산 같아 밤새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너무 걱정 말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청하라.』
간밤 꿈에 만났던 그 백발의 노승이 다시 나타나 일깨워 주는 게 아닌가?
『나무 관세음보살.』

새벽 예불 종소리가 끝나자 주지 스님은 가사장삼을 챙겨서 산기슭 아랫마을로 향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도록 아무도 만나지 못한 계파 스님은 초조와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아! 내가 한낱 꿈속의 일을 가지고….』
씁쓰레 웃으며 마지막 마을 모퉁이를 돌아설 때! 드디어 눈앞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순간 기쁨에 넘친 스님은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스님은 남루한 거지 노파의 모습에 이내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백발노승의 말을 믿기로 한 스님은 노파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다.
눈이 휘둥그래진 거지 노파는 몸둘 바를 몰라했다.
『아니 스님, 쇤네는….』

그러나 스님은 그 자리에 꿇어앉아 더욱 머리를 조아리며 간청했다.
『소승의 소망은 불타 없어진 절을 다시 복구하는 일이옵니다. 하오니 절을 지어 주시옵소서.』
『아이구, 나같이 천한 계집이 스님에게 절을 받다니 말이나 되나 안되지 안돼....』
총총히 사라지는 주지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노파는 결심했다.

『다 늙은 것이 주지 스님께 욕을 뵈인 셈이니 이젠 죽는 수밖에 없지. 난 죽어야 해. 아무데도 쓸데없는 이 하찮은 몸, 죽어 다음에 태어나 큰 불사를 이루도록 부디 문수 대성은 가피를 내리소서........』
할멈은 그 길로 강가로 갔다. 그리곤 짚신을 바위 위에 가지런히 벗어 놓고는 강물에 투신자살을 하였다.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자 스님은 살인범 누명을 쓰게 되었다.
『아, 내가 허무맹랑한 꿈을 믿다니.』
스님은 바랑을 짊어진 채 피신 길에 올라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5∼6년 후.
창경궁 안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울음을 그치지 않는 공주를 큰길에 다락을 지어 가두라는 왕명이 내려졌다.
『폐하! 노여움을 푸시고 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듣기 싫소! 어서 공주를 다락에 가두고 명의를 불러 울음병을 고치도록 하라.』
이 소문을 전해들은 계파 스님은 호기심에 대궐 앞 공주가 울고 있는 다락 아래로 가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묘한 일이 일어났다.
그렇게 울기만 하던 공주가 울음을 뚝 그쳤던 것이다.
『공주!』
황후는 방실방실 웃어대는 공주를 번쩍 안으며 기뻐 어쩔 줄 몰라했다.
『아니, 공주가 손가락으로 누구를 가리키며 웃사옵니다. 폐하!』
『허허! 정말 그렇구나.』

황제와 황후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폐하! 저기 저 스님을 가리키고 있사옵니다.』
『응, 스님을?』
모든 사람의 시선이 계파 스님에게 쏠렸다.

주위를 의식한 스님이 그만 자리를 떠나려 하자 공주는 또 울기 시작했다.
『여봐라, 저 스님을 모시도록 하라.』
황제 앞에 부복한 스님은 얼떨떨했을 게다.
『폐하, 죽어야 할 몸이오니 응분의 벌을 주시옵소서.』
스님은 지난날의 일을 낱낱이 고하며 눈물을 흘렸다.

울음을 멈춘 공주는 빠르르 달려와 스님에게 매달렸다.
그리고는 태어날 때부터 펴지 않던 한 손을 스님이 만지니 스스로 펴는 것이 아닌가?

이!∼ 그 손바닥엔 「장륙전」이란 석 자가 씌어 있었다.
이 모습을 본 황제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내 일찍이 부처님의 영험을 알지 못하고 크고 작은 죄를 범하였으니, 스님 과히 허물하지 마십시오.』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소승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폐하!』
『공주가 스님을 알아보고 울지 않는 것은 필시 스님과 전생에 깊은 인연이 있음을 뜻함이오. 짐은 이제야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스님을 도와 절을 복구할 터인즉 어서 불사 준비를 서두르시오.』

숙종대왕은 장륙전 건립의 대원을 발하고 전각이 완성되자 「각황전」이라 명명하였다. 왕이 깨달아 건립했다는 뜻이라 한다.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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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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