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팔순 생신을 맞으며

등록 2003.09.18 09:13수정 2003.09.1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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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음력 8월 22일)은 내 어머니의 팔순 생신입니다. 우리 집안에(친가, 외가 모두) 팔십 수를 누리신 분들이 거의 없는데, 내 어머니께서 비교적 건강하신 몸으로 수를 누리시니, 어머니께나 자식들에게나 복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식들로서는 그저 어머니께 고마울 뿐입니다.


같은 또래,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거의 그렇듯이 내 어머니 또한 만고풍상을 다 겪으시며 한 세상을 살아오셨지요. 몰락한 양반 지주의 막내딸로 태어나 초년 고생도 심했고, 그저 양심만 바를 뿐 주변머리도 능력도 없는 남편을 만나 처음부터 손에 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먹고살기 위한 노고는 그야말로 피땀의 연속이었지요.

7남매를 낳아서 기르고 가르치기 위한 그 노고는, 아예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설명으로도 내 어머니의 그 피눈물 어린 노고들을 제대로 그려낼 수가 없을 테니까요.

고생이 거의 끝났다 싶은 노년의 세월로 접어들어서는 뜻밖의 병고도 무척 많이 겪으셨지요. 65세 때는 지역 병원에서의 자궁적출 수술이 잘못 되어 재수술을 한 탓에 3개월 동안이나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그로부터 4년 후에는 방광 안에 생긴 돌을 꺼내기 위한 수술을 받아야 했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2001년 가을, 이번에는 대장암 수술로 또 한번 큰 고생을 치르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로부터 벌써 만 2년이 흘렀군요.

나는 어머니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이승에서의 연옥'이라는 내 수식어를 다시 떠올리곤 합니다. 천주교 신자로서 매일 같이 많은 기도를 하고, 평일 미사도 거의 빠지지 않고 참례하며 생활하시는 어머니는 사후에 '연옥'에라도 가는 것이 목표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답니다. 연옥에 가 있을 당신 영혼을 위해 '위령미사'를 많이 지내 달라는 말씀과 함께….


죄 많은 인생이 어떻게 곧바로 하느님 나라에 들 수 있겠느냐며, 이승을 떠난 영혼이 세상에서 다 벗지 못한 죄를 씻고 정화하는 곳인 연옥에라도 갈 수 있기를 소망하시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답니다.

'어머니께는 이 세상 자체가 연옥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평생은 그야말로 연옥 생활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므로 연옥을 이미 치르신 어머니는 돌아가시는 즉시 천당에로 가시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언젠가 <이승에서 연옥을 사신 내 어머니>라는 글을 쓰면서 그런 내 소망과 확신을 절절하게 기록한 적이 있지요.

노년에 네 차례나 수술대 위에 누우셨던, 혹독하게 병고를 치르신 몸으로도 어머니는 팔순이 되신 오늘에도 이렇게 저렇게 몸 놀리는 일을 많이 하며 사십니다. 교사 며느리를 얻어 사시는 탓에 살림을 거의 맡아서 해주시다시피 하는 상황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빨래를 널고 걷는 일로 2층 연립주택의 옥상도 자주 오르시고, 15분 거리인 저자에도 손수 걸어가셔서 음식 거리를 사서 들고 오시곤 합니다.

주로 집에서 생활하는 나는 어머니를 도와 드린다고는 하지만, 통풍과 당뇨라는 두 가지 병 때문에 오히려 어머니의 도움을 받는 때도 많습니다. 저자에 가시는 (걷기를 원하시는) 어머니께 오실 때는 짐이 있을 테니 꼭 좀 전화를 하시라는 부탁을 드렸는데도, 어머니는 그냥 양손에 짐을 들고 오시는 때가 많습니다.

걱정을 하는 내게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짐이 많지 않은데 뭘…" 하시지만, 어머니 마음속에는 아들의 글쓰는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더 크시니, 그것을 잘 아는 나로서는 내 초라한 작가 명색도 죄스럽고, 송구한 마음이 이만저만이 아니지요.

요즘도 여러 가지 김치를 손수 담그시는 어머니는 오랜 세월 당신의 김치를 여러 신부님과 수녀님들께 선물하시는 일을 참 많이 해오셨지요. 멀리에서 사는 자식들에게는 물론이고, 주변의 여러 어려운 분들께 손쓰신 일도 많답니다. 특히 우리 성당에 와서 생활하신 수녀님들은 한결같이 내 어머니의 김치에 맛을 들인 탓에, 그 수녀님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는 내 어머니 김치 이야기가 화제가 되기도 한답니다.

이처럼 내 어머니께서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시는 데에는 까닭이 있지요. 결혼하지 않고 독신 생활을 하는 성직자 수도자들을 잘 공양하는 것은 예수님께 공양을 드리는 것과 같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이라는 생각….

노년 세월에 네 차례나 수술을 받기 위해 오랜 시간의 마취를 겪으셨음에도 어머니의 정신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사리를 바르고 명확하게 분별하시는 노인의 지혜는 더욱 빛을 발하고, 나보다도 더 좋으신 기억력으로 때로는 내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항들을 일깨워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묵주기도 15단씩을 기본으로 바치며, '사제들을 위한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는데, 그 기도 역시 암기로 하시는 거지요.

어제 우리 가족은 점심에 가까운 한 음식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팔순을 축하하는 조촐한 자리를 가졌습니다. 오늘이 생신임에도 하루 앞당긴 것은 내 아내가 근무하는 초등학교의 운동회가 오늘로 잡혔기 때문입니다(호우주의보 때문에 연기되었지만…).

보통 날 같으면 하루 연가를 얻을 수도 있고, 저학년 담임이니 오전 수업 후에 조퇴를 할 수도 있지만 운동회 날은 그것이 안 된다며, 아무리 큰 잔치가 아닌 조촐한 소규모 식사 자리라 해도 맏며느리가 빠지면 되겠느냐는 내 아내의 주장을 누구보다도 어머니가 선뜻 옳게 여겨주신 탓이었지요.

같은 읍내에서 사시는 세 분 사촌형님 내외분과 사촌누이, 신부님 수녀님들을 비롯한 소수의 성당 식구들, 그리고 우리 가족을 합해 20명 정도가 모여 점심 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그야말로 조촐한 자리였지요.

우리가 이렇게 어머니의 팔순 생신 행사를 보통 날의 점심 식사처럼 조촐하게 치른 것에는 눈물겨운 사연이 있답니다. 10년 전 칠순잔치 때 일어났던 슬픈 일 때문이지요. 칠순 잔치 막바지 때 그 음식점의 아무런 보호 장치도 없는 분수 연못에 네 살배기 내 조카녀석이 빠져서 목숨을 잃은 사건…. (내 어머니를 '이승에서 연옥을 사신 어머니'로 볼 수밖에 없는 또 한가지 이유이지요.)

그때 그 사건 후에 수사 의지를 발휘하는 경찰 당국에 우리가 앞서서 선처를 호소하고,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서둘러 사건을 봉합했던 일이 다시 떠오르는군요.

그때로부터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머니도 제수씨도 어느 정도 슬픔을 극복하고, 같은 천주교 신자 집인 그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한 일도 여러 번이지만, 그래서 어머니의 팔순 생신 행사도 그 집에서 하기를 내가 조심스럽게 원했지만, 보통 날 같으면 몰라도 팔순 생신 행사는 그 집에서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어머니의 뜻이었습니다. 그 심정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10년 전에 칠순을 먹다가 손주 새끼를 죽인 할메가 또 무슨 팔순 잔치냐"는 말씀을 하셨고, 주변에서 그런 말들이 돌지도 모르는 것을 적이 우려하시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잔치'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싫어하셨고, 소규모로 보통 날처럼 식사나 하자는 말씀을 하셨고, 남들에게 부담을 줄 것을 우려하신 나머지 팔순을 알리고 초대하는 범위를 최소한으로 줄이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어머니의 진심 어린 간절한 부탁이었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뜻을 존중해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어머니의 팔순 생신 행사를 하루 전인 어제 점심때 참으로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10년 전 칠순 생신 잔치 때의 그 슬픈 사건을 기억하고, 그 사건의 '후유증'을 알게 모르게 의식하기도 하면서….

그리고 어제 저녁에는 동생 가족과 어머니를 모시고 만리포의 한 생선횟집에 가서 오붓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생이 어머니의 팔순 생신을 축하드릴 겸 미국에서 15년만에 친정에 온 누이를 위해 한턱 쏜 거지요.

어머니의 팔순 생신인 오늘 우리 성당에서는 오전 10시 30분에 미사를 지냅니다. 여성 레지오 쁘레시디움들의 주(週) 회합 전에 지내는 레지오 단원들을 위한 미사인데, 이 미사에 우리는 어머니를 위한 '축복미사'를 봉헌하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특별한 말을 하더군요. 어머니께 적은 돈으로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다가 오늘 미사를 위해 성당 제대를 장식하는 '꽃 봉헌'을 했노라고…. 며느리에 의해 봉헌된 꽃으로 장식된 제대를 보며 그 제대 앞에서 우리 가족은 오늘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를 위한 축복미사를 지냅니다. 미사에 참례하는 신자들이 모두 축복기도에 동참하는 가운데서….

어제 성당 수녀님들로부터 선물 받은 꽃바구니들이 우리 집의 작은 거실 안을 환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 LA에서 살고 있는 큰 매제와 막내 누이에게서 전화도 왔습니다. 호주의 시드니에 삶의 보금자리를 꾸미려는 넷째 딸을 보러 지금 호주를 여행 중인 매형과 누님에게서도 전화가 왔고, 대전에서 사는 막내 동생에게서도 어머니께 전화가 왔습니다. 이래저래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십니다.

비록 10년 전 칠순 잔치 때의 그 슬픈 사건이 기억에 어른거리고,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후유증'이 감지되는 가운데서도 팔순 생신을 맞으신 내 어머니는 안온하고도 정갈한 모습을 하고 계십니다.

비록 또다시 날이 궂고(그래서 아내 학교의 운동회는 깨졌지만), 그리고 추석 연휴를 망친 태풍 매미로 말미암아 참담한 수해를 입으신 분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송구한 마음 크지만, 평생 만고풍상을 겪으며 살아오신 끝에 오늘 팔순 생신을 맞으신 내 어머니께 감사와 축복을 드리며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빕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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