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세계무형문화유산 되다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우리 판소리 외 28개 선정

등록 2003.11.08 11:57수정 2003.11.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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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판소리(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 문화재청

"우는 놈은 발가락 빨리고,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에 오줌싸고, 소주병 비상넣고, 새망건 편자끊고, 새갓 보면은 땀때 띠고, 앉은뱅이는 택견, 곱사동이는 되집어 놓고, 봉사는 똥칠허고, 애밴 부인은 배를 차고…."

"선인(船人)들을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치마자락을, 거듬거듬 걷어 안고, 비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이 모두가 사무친다. 엎어지며 넘어지며, 천방지축(天方地軸) 따라갈제…."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아 네가 무엇을 먹을랴느냐…. 저리 가거라 뒷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를 보자 빵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마도 내 사랑아"

"충간(忠奸)이 공립(共立)허고 정족(鼎足)이 삼분헐새 모사는 운집(雲集)이요 명장은 봉기(蜂起)로다. 북위모사(北魏謀士) 정욱(程昱) 순유(筍攸) 순문약(筍文若)이며 동오모사(東吳謀士) 노숙(魯肅) 장소(張紹) 제갈근(諸葛瑾)과 경천위지(經天緯地) 무궁조화(無窮造化) 잘긴들 아니허리."


위 대목들은 우리 판소리의 대표적인 사설들 중 하나이다. 순서대로 <흥부가> 중 놀부 심술부리는 대목과 <심청가> 중 심청이 뱃사람들을 따라 인당수로 가는 대목, <춘향가> 중 그 유명한 사랑가이며, 마지막은 <적벽가>의 한 대목이다.

누가 판소리를 고리타분하다 했던가? 놀부 심술부리는 대목에서 배꼽잡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으며, 심청이 뱃사람들을 따라 인당수로 가는 대목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목석이 있을 것이며, <춘향가>에서 사랑의 애틋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판소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걸쭉한 입담으로 맛이 나는 예술이다. 어디 그뿐이랴. 창을 하는 소리꾼과 감상하는 청중이 추임새로 하나되어 즐기는 맛을 어느 소리가 따라 올까?


a 송순섭 적벽가 공연(2003년 서울대 문화관)

송순섭 적벽가 공연(2003년 서울대 문화관) ⓒ 문화재청

이런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인 판소리가 종묘제례악에 이어서 세계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다. 유네스코 제2차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 선정위원회는 프랑스 파리에서 지난 2일부터 심사회의를 열어 세계 각국이 신청한 63개의 유산 중 1차 심사를 통과한 56개의 무형 유산 종목을 심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판소리를 비롯한 28개를 제2차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최종 선정하고 이를 지난 7일 오후14:00 (프랑스 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 2001년 선정된 종묘제례악과 함께 판소리가 인류의 무형유산으로써 우수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고,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 무대 진출을 다시 한번 튼 셈이다.


인류문화의 다양성과 전통성을 보존하기 위한 국제적 공동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97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이하 세계무형유산 걸작) 설립에 관한 결의안이 채택되어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매 2년마다 걸작을 선정하여 발표한다. 2001년 첫 해에는 36개 신청 종목 중 우리나라의 종묘제례악 등 19개 종목을 1차 세계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번 두 번째 걸작선정을 위해 유네스코는 지난해 2002년 6월 말까지 각국으로부터 신청을 받았는데, 이 제도에 대한 국제적인 인지도가 낮았던 1차 걸작선정과는 달리 70개국 63개(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신청하는 경우 포함)나 되는 종목이 출품되었고, 각국의 홍보활동도 치열했다. 이 가운데 우리 나라의 판소리가 선정되었다는 것은 전통문화로서의 우수한 가치가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았다는 의의가 있다.

이어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2005년 3차 세계무형유산 걸작 신청대상으로 ‘강릉단오제’를 정했으며, 내년 6월 말 신청마감을 앞두고 유네스코가 정한 신청서 작성과 영상자료를 제작하고 있다.

a 판소리 학술심포지엄(2001년, 남원)

판소리 학술심포지엄(2001년, 남원) ⓒ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그동안 판소리의 세계무형유산 걸작선정을 위하여 홍보영상물 및 신청자료 제작, 학술심포지엄(판소리의 예술성과 세계화방안, 2001년) 및 판소리 국창전(2002년) 개최, 국제심사 위원단을 대상으로 한 판소리 인지도 제고 등 다양한 국내외 홍보활동을 추진해 왔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 러시아 등 판소리 해외공연 지원, 유네스코 총회기간(2003년) 중 세계무형유산의 보존을 위한 한국과 유네스코의 협력방안 협의 및 파리 현지 홍보활동 등을 통하여 판소리 선정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을 실시해온 것이 그 결실을 맺은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러한 국제사회의 긍정적 평가는 우리 전통문화의 가치와 이념에 대한 세계인들의 이해와 수용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통문화의 우수성이 국가 경쟁력을 크게 좌우하는 최근의 국제환경에 비추어 매우 고무적인 발전이라는 평이다.

지금은 세계가 급변하는 시기이며,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따라서 나라마다 겨레마다 스스로의 힘과 자존심을 기르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로 부각되었다. 이런 때 자원도 없고, 땅도 좁은 우리나라는 세계 강대국과 겨뤄 정치, 경제, 군사 등 어느 쪽으로도 경쟁이 불가능하다.

우리 전통문화가 초강대국인 미국에게의 그것보다 우위에 서있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번 판소리의 세계무형문화유산 선정을 통해 세계인이 인정한 우리 문화를 더 깊은 애정으로 대하며, 발전시켜 가야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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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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