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에 열중해줘서 고맙습니다"

고3 학생들에 대한 특강을 마치고

등록 2003.12.12 15:48수정 2003.12.1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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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수능시험이 끝난 후 수업 상황이 온전치 않은 상태로 생활하는 고3 학생들을 찾아가서 문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했다. 전교조에서 마련한 '2003년도 고3학생 사회적응 프로그램'이라는 행사에 참여를 한 것이다.


수능 이후의 고3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은 여러 번 있다. 학기 중간에 1학년과 2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모교에 국한된 일이었다.

내가 사는 충남 태안 지역에는 고등학교가 4개 있다. 태안고, 태안여고, 만리포고, 안면고 등이다. 이들 4개교 중에서 태안여고를 제외한 3개 고등학교가 올해 수능 이후의 고3 학생들을 위한 특별교육 행사를 실시했다. 군내 3개 학교가 똑같은 프로그램을 채택하여 순차적으로 그런 행사를 갖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나도 모교를 포함하여 3개 학교를 다니며 특강을 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에는 모교의 경우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그런 행사를 기획하고 실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교조 지부에서 그런 행사를 기획했고, 그리하여 사립학교를 제외한 3개 공립학교가 똑같이 보조를 맞추어 고3 학생들을 위한 특별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다.

올해 처음 3개 학교를 차례로 다니며 많은 고3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던 나는 그런 특별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시한 전교조 태안지부와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3개 학교에 감사하는 마음 크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메이크업', 성교육, 음악, 문학, 역사문화, 사진, 중국문화 등 여섯 개 분야의 전문가 여섯 명이 참여했다. 지역에서는 해당 분야의 대표적인 위치에 있거나 대학에 출강하는 분들이 기꺼이 참여한 것이다.


기획 담당 선생님의 특강 요청은 정중하고도 간곡했다. 그 요청을 수락해 준 것에 대해서도 여간 고마워하지 않았다. 마지막 학교의 특강을 마쳤을 때는 곧바로 전화를 걸어 다시 고마움을 표했다. 이래저래 내 쪽에서 오히려 더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태안고는 여학생만 100명 정도 내 특강을 들었고, 만리포고는 60여명, 안면고는 80여명이 내 얘기를 들었다. 태안고에서는 마이크를 사용했지만, 만리포고와 안면고에서는 육성으로 얘기를 해서 더 열정적으로 몸짓도 많이 했던 것 같다.


학생들의 태도는 전반적으로 진지했고, 내 얘기를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내 얘기에 열중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하도 고마워서 이야기 중간에도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곤 했다.

수능시험 점수와 관련하여, 그리고 자신의 미래가 불명확하고 불안한 만큼 심리적으로 몹시 불안정하고 만사가 귀찮은 학생들이 많을 터인데도 강사에 대한 예의도 생각하는 듯한 학생들의 태도가 나는 정말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 앞에 설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작가'라는 명색을 걸치고 있는 나로서는 면구스러움도 크다.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부터 시작하는 내 이력(작품 외적 활동들)은 그런 대로 괜찮은 꼴이지만, 작품 업적과 작가로서의 위상은 실로 미미하니, 특히 모교의 후배들에게는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도 고장의 유일한 신춘문예 출신 작가, 고장 유일의 소설가임에도 고장의 명예까지 빛낼 수 있을 만큼 작품 업적과 작가적 명성을 더 많이 쌓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수험 능력 위주의 교육 풍토 속에서 온갖 스트레스를 감내하며 교교 시절을 살아온 학생들을 위로하면서 내 이야기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참고거리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

프로그램의 항목 상에는 '문학'으로 되어 있지만,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문학 이야기이기보다는 인생 이야기일 터였다. 프랑스에서는 해마다 사법시험의 첫 문제로 시에 관한 문제를 출제한다는 이야기, 그 속에 함축되어 있는 상징성과 관련하여 문학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 사람이 높은 정신과 깊은 생각과 넓은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감동과 간접 경험과 지적인 충격을 얻을 수 있는 독서가 기본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등이 문학 이야기에 속할 터였다.

나는 학생들에게 물어 동의를 얻은 다음 처음부터 끝까지 모자를 쓴 채로 이야기를 했다. 결혼식 주례를 할 때도,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할 때도, 노인정에 가서 얘기를 할 때도 모자를 쓸 정도이니 모자에 관한 얘기부터 했다. (학생들에게 들려준 나의 모자 애용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별도의 글로 쓰려고 한다.)

고등학교 1년 시절에는 문제아로 마침내 큰 사고를 치고 무기정학까지 당했던 내가 그 후 모범생으로 변신하여 고교 졸업 때는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공로상'을 받은 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는 월간 <말> 2002년 10월호에 쓰고 <오마이뉴스>에도 올린 '가출 1주일만에 집에 돌아왔더니'란 글에 구체적으로 소개했으므로 여기에서는 자세한 기술을 피한다.)

군 입대 후 논산훈련소 28연대 대기병(이등병) 시절에 겪은 '삼선개헌' 국민투표와 세 번에 걸친 '파월' 지원 사이에 어려 있는 의미 심장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이 이야기도 2001년 8월 <오마이뉴스>에 올린 다음 그 해 <월간문학> 11월호에 발표한 '1969년 삼선개헌 국민투표에 대한 기억/고독한 반표(反票)'라는 글에 자세히 소개했으므로 여기에서는 구체적인 기술을 피함.)

관련
기사
- 1969년 삼선개헌 국민투표에 대한 기억 ①

그리고 우리 한국 사람들의 특징 중의 하나인 '망각증'에 관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94년 <한국소설> 겨울호에 발표했던 '망둥이를 아시나요?'에 그려진 망둥이낚시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망둥이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다시 말해 늘 망각증을 경계하며 과거의 일을 겨울 삼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함을 설파했다.

대학진학을 하지 못하고 고졸로 학력을 마무리한 내가 무려 15년 동안의 눈물겨운 도전 끝에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 명색을 얻게 된 이야기, 고졸 학력으로도 대학에 출강을 하게 된 이야기, 현세적 가치들에 집착하지 않고 영적인 가치(사후세계)를 추구하는 내 삶의 태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런 많은 이야기들을 하자니 물이 흐르듯 구성지게 말을 해도 1시간 가지고는 부족했다. 1시간 30분 정도 얘기를 하곤 했다. 1시간 30분이라면 고3 학생들로서는 실로 긴 시간일 터였다. 지루하기도 하고 졸음에다가 잡념도 들기 쉬울 터였다. 그럼에도 대부분 끝까지 내 얘기에 열중했다. 그러니 나로서는 정말 학생들이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도 수능시험 이후의 고3 학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가졌다. 더구나 올해는 내 모교인 태안고뿐만 아니라, 도합 3개 학교를 차례로 방문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비록 명색이 초라하고 왜소한 작가일망정 어린 학생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이야기와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좋은 시간을 갖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신 세 학교의 선생님들께 거듭 깊이 감사한다. 내 홈을 찾아와서 게시판이나 방명록에 기록을 올려준 학생들에게도 고마운 뜻을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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