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무협소설> 전사의 후예 263

꿈틀거리는 음모 (1)

등록 2003.12.17 08:51수정 2003.12.17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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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냐? 누구냐…? 대체 어떤 놈이냐고. 어떤 놈이냐고… 어서 안 나와? 안 나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어디라고… 나와라! 나와라…!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당당하게…”

산동성(山東省) 태안현(泰安縣)에 위치한 태산(泰山)은 중원오악 가운데 동악(東岳)으로 불리며 대종(垈宗)이라고도 불린다.


대(垈)란 큰산을 의미하고, 종(宗)이란 연장자를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중원의 큰산 중에 제일 맏이란 의미이다.

높이로 따지면 오악 중 세 번째에 불과하지만 오악의 으뜸, 오악독존(五岳獨尊), 천하제일산이라고 불린다.

오래 전 공자가 ‘동산(東山)을 올라보면 노(魯)나라가 작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태산에 올라보면 천하가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고 해서 그 명성도 계속 높아져만 갔다. 그래서인지 역대 제왕들은 태산을 신의 화신으로 생각해 왔다.

기록에 의하면 역사이래 칠십이 명의 황제가 태산에 와서 봉선지례(封禪之禮 :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식)를 행하였으며, 문인들과 묵객들도 태산에 와 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겨 시(詩), 사(辭), 부(賦)를 지어 태산을 송찬(頌讚) 하였다.

산 아래의 대묘(垈廟)로부터 시작해 산 정상의 벽하사(壁霞寺)와 옥황정(玉皇頂)에 이르기까지, 연도에는 비각(碑刻)과 전각들이 상당수에 달해 가히 문물의 보고(寶庫)라고 할 만하다.


산아래 대종방(垈宗坊)으로부터 팔 부 능선이 있는 남천문(南天門)까지는 총 칠천여 개의 돌계단이 놓여져 있어 대략 한 시진 가량이면 오를 수 있는 산이다.

태산은 분명 세상에 널리 알려져 많은 왕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알려진 곳보다 알려지지 않은 곳이 더 많기도 하다.


수려한 풍광을 지녔지만 인적을 거부할 정도로 험한 절지(絶地)들이 즐비하기 때문이었다.

태산의 정상에 위치한 벽하사 동남쪽에는 마치 도끼로 찍어낸 듯 매끈한 벼랑 하나가 있다. 그 벼랑의 정상은 울창한 수림으로 뒤덮여 있으며, 사시사철 자욱한 운무에 싸여 있다.

낙룡대(落龍臺)라 불리는 그곳은 오래 전 승천하려던 용이 떨어졌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으로 태산에서도 일출을 보기에 가장 좋은 곳일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출을 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사방이 깎아지른 듯 한데다가 워낙 매끈한 절벽이기 때문이다.

그런 낙룡대 정상의 울창한 수림 속에서 누군가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고, 그 고함은 곧 메아리가 되어 태산 전역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서 썩 나오지 못해? 못해…? 대체 어떤 놈들이냐? 놈들이냐…? 나와라! 나와라…!”

분노한 듯 사내는 한 자루 도를 휘두르며 연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그 고함은 허공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어디에서도 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낙룡대 아래에는 정상에 있는 벽하사보다도 더 유명한 곳이 있다. 마치 누워있는 용의 모습과 유사하다 하여 와룡곡(臥龍谷)이라 이름 붙여진 계곡이다.

삼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이 유명해진 이유는 이곳에서 무림천자성의 정예인 정의수호대원들이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양성해내는 책임을 맡은 한운거사 초지악이 이곳에 터를 잡은 이유는 그의 외호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젊은 시절 강호에 출도한 그는 가전무공인 일월도법 가운데 전반부만 익혔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혁혁한 무명(武名)을 떨칠 수 있었다. 하여 무림계의 풍운아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얼마 후부터 그가 나타나면 웬만한 분쟁은 종식되곤 하였다. 누구든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피력하면 최소한 병신이 되거나, 아예 목숨을 잃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마치 무림의 명숙이라도 된 양 늘 거들먹거렸지만 누구도 그를 징계하려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도법에 마치 물 흐르듯 유연함이 더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그의 도법은 강함만이 있었는데 거기에 유연함이 더해지면서 점점 더 고절해졌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봐주기를 원했고, 기왕이면 품위 있게 보아주기를 원했다. 하여 스스로 한운(閒雲)이라는 외호를 지었다. 무공도 고강하지만 고매한 성품을 지닌 한 마리 고고한 학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외호에 학(鶴)자를 넣지 않은 이유는 속 들여다보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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