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모 연재소설 <수메리안> 32

등록 2004.01.13 11:14수정 2004.01.1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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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분지 가운데 들어선 죽음의 사막은 2천여 리라고 했다. 그 사막을 둘러싸고 동서로 길게 가로놓여 있는 서역(타림) 분지는 약 2500리 길이었다. 유목민들의 지대라고도 불리는 이 분지의 북편에는 장장 3천여 리의 강이 동서로 관류하고, 남변에는 곤륜산 기슭에서 분지로 흘러드는 수많은 물줄기가 있다.

그런 자연조건으로 파령 주변에는 고래로 수많은 민족이 태동하거나 거쳐 갔다. 또 수많은 종족이 이동해오거나 또 북방으로 옮겨갔다. 남쪽에서는 빙하기 이후 큰 사슴과 돼지와 순록의 무리들이 이곳 초원으로 옮겨왔고 사람들 또한 그 동물을 따라 와서는 함께 머물거나 또 바이칼 쪽으로 떠나갔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노보시비로스크(Novosirosk)산과 아바칸(Abakan) 산맥의 계곡에 잠깐 둥지를 틀었던 환족 일파들도 그곳에 수많은 유물들을 남겨두고 다시 돌아와 환족의 한 지파를 세웠다.

그렇게 씨족에서 부족, 수장사회, 성읍국가로 변천하면서, 또는 이동을 하거나 터를 잡으면서 때론 융숭한 수장사회를 이루기도 했고 때론 이웃의 침략으로 쫓겨나기도 했을 것이다.

쫓겨 가는 길도 크게 곤란하지 않았을 터이다. 곳곳에 초원이 무성해 목동들은 이 초원을 따라 양떼와 소떼를 몰고 갔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또 물 맑은 호수를 만나 새 살림터를 만들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서른여섯 마을이 들어섰다는 이 분지를 기점으로 동쪽 입구가 사주요, 서쪽 경계가 파령 고원이다. 주변사람들이 태산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천산(높이 약 7천미터)은 파령(현재는 중앙아시아의 소련, 중국, 아프가니스탄 등 세 나라에 걸쳐져 있다)과 인접해 있었다.

에인은 다시 시원 내력을 떠올렸다.
'환인천황은 그 천산에서 하강하시어 신시를 세우셨다….'
그 신시가 처음 파내류 국이 세워진 그 자리였을까?


에인이 시원지를 궁금해 할 때 노린내가 다가왔다. 낙타였다. 제후가 한 발 뒤쯤에 서서 에인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출발하시지요."
"예, 그러지요."

에인이 대답하자 제후는 곧 낙타의 머리를 평원 왼편으로 돌렸다. 고원 아래쪽 방향이었다. 에인이 의아해서 물어보았다.
"이 평원으로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고원 아랫길로 가야 합니다."
고원을 가로질러 가도 되었다. 또 고원 서쪽 끝에는 경사가 완만해져서 내려가기도 수월했다. 하지만 고원은 목동들이나 오르내릴 뿐 대상이나 행인들은 가급적 피하는 곳이었다. 지대가 높아 밤이면 추워지는데다 그 넓이가 한도 끝도 없어 언제쯤 서편에 도착할지 알 수도 없었던 때문이었다.


제후가 그 길을 꺼리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에겐 그 고원이 미지의 지대라는 것이었다. 한번도 지나가보지 않은 데다 사람들의 의견으로도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지금은 길을 가지고 모험할 때가 아니었다. 하루빨리 가야할 때는 아는 길이 그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에인은 아쉬웠다. 그 끝없는 평원을 말달려 가고 싶은데 제후는 또다시 좁은 길로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냥 갈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렸다. 장수와 군사들은 또 무슨 일인가 해서 긴장을 했다.

에인은 뚜벅뚜벅 걸어 파밭으로 들어갔다. 소변을 보려는가? 그러나 에인은 파의 씨 대궁을 따 모으는 것이었다. 그리고 돌아와 그 파씨를 자기 개인 바랑에 넣고는 곧 말에 올랐다. 그의 부하들은 비로소 안심을 했다. 은 장수도 함께 말머리를 돌리며 일행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출발!"

낙타는 벌써 저만치 앞서 가고 있었다. 에인은 곧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그가 낙타 옆으로 다가들자 제후가 말했다.
"이제 대월씨 국까지는 1천여 리가 남았습니다. 2,3일 후면 장군님의 아버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제후께서 그 낙타 옆구리를 부지런히 때려준다면 내일쯤에라도 도착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에인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낙타의 걸음걸이에 달렸지 않느냐는 뜻이었다. 제후는 웃지도 않고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았다.
"그건 비상용이지요."
그리고 곧 자신의 말을 정정했다.

"낙타가 달릴 수 있는 길은 넓고 평편한 곳입니다. 사실 이렇게 좁고 가파른 길에서는 때려대면 그냥 주저앉아버린 답니다."
귀물이라고 뽐내던 때와는 판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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