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선족 동포가 상에 오른 음식의 위치를 조정하는 등 차례상을 차리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승훈
1월 22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 1층 로비에 조촐한 차례상이 마련됐다. 극심한 한파 속에서 이어가고 있는 재외동포법 개정, 불법체류사면 촉구 농성이 오늘로 69일째. 불법 체류자로 낙인찍힌 조선족 동포들에겐 그리 즐겁지만은 않은 민족 대명절이다.
하지만 이들 100여 명의 조선족 동포들은 설날을 맞아 합동 차례를 지내며 가족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외로움을 달랬다.
차례를 시작하기로 한 오전 11시가 다가오자 기독교 백주년 기념관은 차례상을 준비하는 동포들의 손길로 분주했다. 차례상에는 이들이 농성 와중에 어렵게 마련한 떡이며 과일, 생선 등 제수 음식들이 올랐다.
한 동포는 "차린 것은 별로 없어도 우리 고유의 제법인 '홍동백서'를 지켜야 한다"며 차례상에 놓여진 음식의 위치를 조정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차례상에 올릴 술이 상 위로 올라오고, 촛불 2개와 한문으로 쓰인 지방이 놓여졌다. 마지막으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과 국이 상에 오르고 차례가 시작됐다. 동포들은 약식이지만 정성스럽게 차려진 차례상 앞에서 각자의 조상들에게 술을 따라 올린 후 예를 갖춰 절을 올렸다.
하지만 차례상 앞에 선 동포들의 무거운 얼굴 표정을 지어 보였고,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간혹 덕담과 웃음이 스쳐가기도 했으나 눈물과 어두운 표정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이는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왔지만 함께 덕담을 나누며 음심을 나눠 먹을 가족들 곁으로 갈 수 없는 현실 때문인 듯했다.
작년 12월 초 10여 차례나 구조 요청을 외면당해 길거리에서 동사한 고 김원섭의 부인 신금순(43)씨와 아들 원섭(21)씨는 차례상에 올릴 술을 따르다 끝내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신씨는 "남편이 죽은 것은 경찰이 조선족 동포를 같은 동포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차례 지내는 아름다운 문화 공유하고 있는 우리는 동포"
이갑출(67) 할머니도 "설날 아침 이렇게 차례를 지내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민족이라면 누구나 공유하고 있는 아름다운 문화이기 때문"이라며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를 동포가 아니라고 우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동포들의 얼굴 표정이 계속 이처럼 무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서 힘겨운 농성을 계속하고 있지만 동포들은 설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