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은행엔 '으르렁', 외국계엔 '이를 어째'?

[분석] LG카드 지원 놓고 외환·한미은행 거부... 채권단 반발

등록 2004.02.05 16:01수정 2004.02.06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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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외환은행 본점
서울 중구 을지로에 위치한 외환은행 본점오마이뉴스 이승훈

정부가 '관치'라는 비판을 무릎쓰고 마련했던 LG카드 정상화 방안이 외환은행 등 외국계 은행들의 반발로 진통을 겪고있다.

정부는 지난달 11일 16개 채권금융기관이 1조6500억원의 유동성을 LG카드에 지원하고 향후 이를 출자전환하는 것을 뼈대로 한 LG카드 정상화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5일 미국계 펀드 론스타가 대주주로 있는 외환은행은 LG카드에 대한 신규 유동성 지원을 거부했다. 같은 외국계인 한미은행도 LG카드에 신규자금 334억원을 지원하되 기존 채권의 출자전환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일종의 '조건부 지원' 방안인 셈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두 은행이 이번 주까지는 분명한 참여의사를 밝혀야 한다"며 "시한을 넘긴다면 정부로서도 강도 높은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그러나 외환은행은 정부의 압박도 무시하고 지난 4일 밤 이사회를 열어 LG카드 지원 불가 입장을 최종 결정했다.

한미은행도 이달 들어 3차례나 이사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 5일 오후 막판에 '조건부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외환 '지원 불가', 한미 '조건부 지원'... 다른 채권은행도 반발

외환은행의 지원거부 및 한미은행의 조건부 지원 소식에 다른 채권은행들은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16개 채권은행이 모두 참여한다는 전제 하에 LG카드 지원안에 대해 이사회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조흥·기업은행 쪽은 "우리도 다시 이사회를 열어야 한다"며 "외환은행이 빠진 공동 지원안이 다시 이사회를 통과할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외환은행이 내세우는 지원거부 이유는 더이상 지원할 여력이 없다는 것.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재 외환카드와 합병이 추진되고 있어 향후 외환카드에서 예상되는 손실과 충당금 적립규모만도 은행에 큰 부담인데 LG카드까지 지원할 여력이 없다"고 밝혔다.


한미은행 측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335억원의 LG카드 채권이 고객자산인 신탁계정에 들어있어 이사회에서 채권의 출자전환과 신규자금(334억) 지원을 승인할 근거가 없다"고 이유를 댔다.

그러나 금융계는 다르게 보고 있다. 한미은행이 소극적인 것은 대주주인 칼라일 컨소시엄이 은행 지분 매각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LG카드 지원참여로 인한 매각가 하락을 염려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즉 외환·한미은행 모두 겉으로는 '주주이익'과 '시장논리'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대주주의 단기 투자이익을 실현을 위해 LG카드 지원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금융계에서는 "공익적 관심이 없이 단기 투자이익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 외국계 투자 펀드가 은행을 인수하는 것의 위험이 드러났다"며 "정부가 은행법상 예외규정을 너무 확대 적용, 외국 금융자본이 아닌 투자펀드에게 투자적격성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은행을 판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현재 다른 채권은행들은 LG카드의 공동관리방안이 무산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두 은행의 버티기를 손실부담은 하지 않으면서 열매만 따먹으려는 '무임승차'라고 비난하면서 동시에 정부의 형평성 없는 '관치'에도 큰 불만을 표하고 있다.

채권은행들은 정부에 대해 "두 은행의 무임승차에 대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만큼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국계 은행에 힘쓰지 못하는 '관치'

외환·한미은행의 태도는 과거 정부의 입김에 시중은행들의 이사회가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과 비교해 큰 변화인 것은 사실이다. 이는 IMF 이후 외국인의 은행 보유 지분이 급증함에 따라 정부의 시중은행에 대한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의 '관치'가 국내 은행들에게는 여전히 위세를 부리면서 시장논리와 주주이익을 명분으로 앞세운 외국계 은행들에게는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금융계에서는 LG카드를 조속히 정상화하는 것이 모든 채권단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보고 있다. 정상화가 지연될수록 채권단이 회수할 수 있는 채권의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최악의 경우 지원방안이 무산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채권단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는 LG카드가 청산에 들어갈 경우 지금까지 LG카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던 채권단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큰 폭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이밖에 두 은행은 자신들의 지원 거부로 LG카드 정상화가 실패해 금융시장의 극심한 혼란이 생길 경우 그 책임을 둘러싼 비난여론으로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다. 그동안 정부도 LG카드 지원안에 대한 이사회 승인이 미뤄지고 있는 두 은행 대주주에게 이점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해왔다.

그러나 LG카드 청산시 입을 손실을 뻔히 알고 있는 두 은행은 정부의 '공개경고'와 채권은행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LG카드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다. 외환·한미은행의 이런 '배짱'은 역설적으로 자신들이 지원하지 않아도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관치'에 대한 믿음 때문으로 보인다.

태도 바꾼 정부... "LG카드 정상화 문제없다"

금융당국은 이날 두 은행의 믿음대로 "외환은행이 신규지원을 안해도 LG카드 정상화는 문제없다"고 밝혀 나머지 채권단만으로 정상화를 추진 할 뜻을 내비쳤다. 그동안 외환은행이 지원을 거부해 LG카드 공동관리방안이 무산될 경우 LG카드가 청산되고 금융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겁을 주던 태도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외환·한미은행의 LG카드에 대한 총 출자전환 금액은 각각 1171억원, 669억원으로 전체 출자전환 3조6500억원의 5% 수준에 불과해, 기존 채권의 만기연장만 이뤄지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환·한미은행 등이 부담할 금액을 산업은행 등 다른 채권은행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정부의 이런 태도는 이전의 자신들이 천명했던 입장을 스스로 저버린 것이다.

금융계는 외국계 두 은행의 이번 '항명 사태'는 그동안 카드사 부실 처리에 원칙을 갖지 못하고 임기응변에만 매달려 정책의 권위와 신뢰를 잃어 버린 정부의 자승자박이라는 냉소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또 단기 이익 실현을 목표로 국내 금융시장 안정을 외면하고 있는 외국계 투자펀드의 국내 금융기관 인수에 대한 반감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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