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웅천 주민들 "마을 떠나라는 건가"

"마을 풍비박산 위기...폐기물매립장 또 늘려 짓겠다니"

등록 2004.05.16 16:53수정 2004.05.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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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웅천읍 집집마다 매립장 반대 깃발이 내걸렸다.

웅천읍 집집마다 매립장 반대 깃발이 내걸렸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농사짓기도 싫소. 매립장 문제가 해결돼야 맘놓고 농사일에 나설 것 아니오"
"지금 있는 쓰레기도 산더미 같은데 또 다시 허가권을 내준다는 게 말이 됩니까"


농사철이 됐지만 충남 보령 웅천 주민들은 하나같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에서 불과 3km 인근에 위치한 산업폐기물 매립장(웅천읍 대창리 872번지 일원) 때문이었다. 업체측이 지난 2001년 사업이 종료된 매립장 부근에 지금의 4.5배에 달하는 면적(14만㎡)을 증설, 매립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한 것. 자그마치 100만톤 가량의 산업폐기물을 더 매립할 수 있는 면적이다.

매립장이 처음 지어진 것은 지난 1996년 10월이다. 이때부터 경기권 등 각지의 산업폐기물(슬러지, 폐토사, 소각재, 폐건축물 등)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폐기물은 훌쩍 큰 동산을 만들어 놓았다. 결국 매립장은 허가받은 약 3만㎡에 23만톤을 채워 놓은 지난 2001년 3월에서야 사용이 종료됐다.

a 매립물을 떠받들고 있는 배수암거박스 곳곳이 쩍쩍 갈라져 그 틈으로 쓰레기 침출수로 보이는 찌꺼기가 붙어 있다. 천정엔 배불림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사진은 지난 2002년 10월

매립물을 떠받들고 있는 배수암거박스 곳곳이 쩍쩍 갈라져 그 틈으로 쓰레기 침출수로 보이는 찌꺼기가 붙어 있다. 천정엔 배불림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사진은 지난 2002년 10월 ⓒ 웅천매립장반투위

하지만 산업폐기물 매립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웅천 주민들의 가슴 속에는 근심과 걱정이 겹겹이 쌓여왔다. 우선 매립물이 골짜기 밑에 제방 둑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는 게 문제였다. 집중호우 때는 골짜기 계곡물이 매립물 지하관통으로 쏟아져 들어오면서 지반이 내려앉거나 심지어 배수구가 막히는 일까지 속출하고 있다.

당초 이를 허가한 보령시도 "웅천천 범람시 하천물이 역류해 쓰레기 제방이 유실될 우려가 있다"며 "근본적인 대책과 지속적인 유지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인근 하천의 오염도 심해졌다. 불과 4~5km 떨어진 인근 부사방조제 담수호에서는 바닥을 헤집을 때마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을 했다.

지난 2001년 구성된 '웅천읍매립장증설반대투쟁위' 최영철(50) 상임위원장은 "부사담수호에서 잡은 물고기 10마리 중 1~2마리는 기형이고 3마리는 몸에 반점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지난 2000년 12월 서울대환경계획연구소에 의뢰한 매립장 침출수에 대한 시료분석결과 중금속인 수은과 구리의 오염농도가 기준치를 크게 초과해 검출됐다.


특히 부사담수호의 물은 인근 남포면, 주산면, 서천군 서면 등의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담수호 물은 또 인근 부사, 독산, 무창포, 대천 해수욕장으로 흘러들어 농어민은 물론 관광객에게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주민들의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폐기물 매립장을 떠받치고 있는 배수 암거박스(폭 3.0m, 높이 2.0m, 길이 265m)에 벌써부터 균열이 가고 천정엔 배불림 현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a 암거박스내 방류수. 맑은 물이 나와야 할 방류구에 각종 슬러지가 영겨 붙어 있다.  시료분석결과 이 물에서는 구리와 카드뮴이 기준치를 크게 초과해 검출됐다. 이 물을 빠져 나온 물은 수 분내 웅천천에 이르고 수 십분내 부사담수호-서해바다로 흐른다.

암거박스내 방류수. 맑은 물이 나와야 할 방류구에 각종 슬러지가 영겨 붙어 있다. 시료분석결과 이 물에서는 구리와 카드뮴이 기준치를 크게 초과해 검출됐다. 이 물을 빠져 나온 물은 수 분내 웅천천에 이르고 수 십분내 부사담수호-서해바다로 흐른다. ⓒ 심규상

출입이 통제돼 실제 확인이 불가능한 상태이나 지난해 말 촬영된 사진자료에는 콘크리트 곳곳이 쩍쩍 갈라져 있다. 갈라진 틈으로는 쓰레기 침출수와 찌꺼기로 보이는 농축액이 터져나와 엉겨 붙어 있었다. 암거박스 빗물배출관로에도 붉은 불순물 찌꺼기가 찌들어 있었다. 물에서는 비소,구리 등 중금속이 기준치를 10배 이상 초과해 검출됐다.

직접 현장확인을 한 바 있는 이 마을 최종승(51)씨는 "전체적으로 30여 미터 가까이 균열이 가 있고 쓰레기 차수막이 터져 생긴 침출수로 보이는 액이 줄줄 새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내내 구토증세를 느낄 만큼 역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이 물이 곧바로 웅천천과 부사방조제로 흘러 들어가는데 물이 썩지 않고 배겨날 방도가 있겠냐"고 탄식했다.

마을주민들은 "당초 1만1천㎡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암거박스 위에 배 이상 초과해 폐기물을 매립, 하중을 견디지 못해 내려 앉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지난 1월 "매립시설 하부에 설치된 배수 암거박스의 천정과 벽체에 종횡으로 균열이 부분적으로 생겨 누수가 발생하는 등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a 암거박스 내부

암거박스 내부 ⓒ 심규상

감사원은 "배수 암거 시설에 대한 정밀안전진단과 그에 따른 보완시공 등 안전조치에 나설 것"을 보령시에 지시했다. 감사원의 지시에 의해 보령시가 나서 지난 4월 벌인 안전정밀진단 결과에서도 27m 구간에 균열이 생겼다며 C급 판정(A~E급 중)을 내렸다.

이곳에서 당초 폐기물 사업을 시작하고 또 다시 증설매립을 신청한 업체는 주식회사인 H산업이다. 하지만 이 업체는 현재 관련법에 따라 보령시에 예치한 매립장사후관리기금 3억4200만원마저 보령세무서에 의해 압류돼 있는 상태다. 보령세무서는 또 이 업체의 관련 토지도 압류해 놓았다. 보령시 측도 이 회사가 금융기관과 세무서 등에 수십억원대의 채무가 있는 부도회사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담수호, 농업용수로도 부적절..보령시 "매립장과는 무관”

웅천주민들이 분통을 터트리는 또 다른 이유는 보령시(시장 이시우)가 이 업체에 매립 증설을 허가해 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책위 최 상임위원장은 "지난 2000년 업체 측이 행정소송을 하면서까지 증설하려 했지만 패소했고 주민 반대가 거세 허가가 나지 않았다"며 "이같은 사정을 잘 아는 현 시장이 매립장 증설을 위한 도시계획변경을 추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보령시 관계자는 "업체측 으로부터 지난 해 초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일반폐기물 매립장 증설허가 요구가 다시 들어와 이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 매립장 상층부 계곡부가 붕 떠 있어 자연형태로 만들기 위한 후속조치가 필요하다"며 "불안전한 상층 계곡부를 메워야 하기 때문에 후속조치에 대한 대안으로 폐기물처리장 증설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즉 후속조치 방안으로 상층 골짜기 전체를 쓰레기로 채워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a 한 웅천 주민이 매립지가 들어선 곳을 가르키고 있다. 바로 인근 하천이 웅천천이며 왼쪽 끝자락이 부사담수호와 무창포 해수욕장 부근이다. 왼편 가장자리에 떠 있는 섬이 웅천공군사격장.

한 웅천 주민이 매립지가 들어선 곳을 가르키고 있다. 바로 인근 하천이 웅천천이며 왼쪽 끝자락이 부사담수호와 무창포 해수욕장 부근이다. 왼편 가장자리에 떠 있는 섬이 웅천공군사격장. ⓒ 심규상

실제 보령시는 준농림지역으로 돼 있는 이 지역을 매립장이 들어설 수 있는 도시계획지역으로 용도변경하기 위한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보령시는 이미 97년 건교부로부터 자연녹지예정지역으로 승인을 받은 터라 도시계획변경을 받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령시는 충남도시계획심의위로부터 용도지역변경결정이(결정권자 도지사) 나오는 대로 시설결정(결정권자 시장)을 위한 절차에 나설 예정이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당초 문제 투성이 매립장 시설을 승인해 줘 놓고서 이제 와서 내놓은 치유방안이 쓰레기 골짜기냐"며 "다른 시설이나 일반 흙 등을 채워 골짜기 공백을 메우려 하기보다 업자 이익만을 고려한 매립증설 방안만을 고집하는 저의를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암거박스 27m 균열'..보령시 "C급, 당장 무너져 내릴 정도 아니다"

마을주민들은 매립장 설치 이후 웅천천에 서식하던 뱀장어, 참게, 은어 등이 사라져 버렸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해 말 주민들이 한국화학연구소에 매립장 배수암거시설 방류수에 대한 시료분석에서도 검출되어서는 안되는 페놀이 나오고 중금속인 비소와 카드뮴이 기준치를 크게 초과해 검출됐다.

이에 대해 보령시 관계자는 주변하천 등 오염 우려에 대해서는 "지난 97-98년 경 농업기반공사 등 관계기관과 함께 매립장 인근지역에 대한 조사를 벌였으나 매립장으로 인한 하천오염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매립장에서는 폐수처리된 방류수가 하루 9톤 밖에 나오지 않는다"며 "하루 수천톤씩 방류하는 웬만한 제조업체에 비할 때 매립장으로 인해 오염이 늘어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했다.

방류수에서 중금속이 검출된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의뢰한 기관에서는 중금속이 검출된 사실이 없다"며 "대책위가 의뢰한 곳에서만 중금속이 검출된다"고 답했다. 즉 양측이 서로 시료분석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증설 신청업체는 부도... 보령시 "돈 없이 나섰겠나"

매립장과 윗 지역의 빗물 등이 빠져나가는 배수구인 암거 박스의 균열과 누수에 대해서도 보령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보령시 관계자는 "처음부터 지형과 설계상의 문제로 이같은 일이 예측돼 왔다"며 "지난 달 벌인 정밀 안전진단결과 C급 판정이 나와 일부보수 필요성은 있지만 대책위 주장처럼 당장 무너져 내릴 만큼 위험한 상태는 아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이어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매립장을 증설해 계곡 상층부를 (폐기물로) 채우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a 지난 4월 보령시청앞 매립장 증설 반대집회 모습

지난 4월 보령시청앞 매립장 증설 반대집회 모습 ⓒ 웅천반대투쟁위

보령시는 부도난 업체에 증설허가를 내주려 하는 까닭에 대해서는 "현재는 용도변경 절차를 밟는 단계로 아직 어느 업체가 선정될지 등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해당 토지를 신청업체가 소유하고 있는 만큼 신청업체 외에 다른 업체가 사업에 나서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국 "매립사업을 하려면 시설비 70여억원과 사후관리기금 30억원 등 100억원 정도가 소요된다"며 "능력이 있으니까 사업신청을 했지 않겠느냐"는 말로 현 H업체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도시계획위 결론 따른다던 시장 약속 어디로?"

지난 4월 마을주민들은 보령시청 내 시장실을 점거농성했다. 이에 앞서 대책위는 보령시가 매립장 증설여부에 대한 확답을 꺼리자 지난 해 7월 시청 앞에서 집회를 갖고 이 시장의 답변을 요구했었다. 이 자리에서 이 시장은 단호한 어조로 "보령시도시계획위 자문결과에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초 열린 보령시도시계획위원회에 상정된 '웅천도시관리계획변경안 자문 건'에 대해 의원들은 증설에 부정적 의견을 쏟아냈다. 그러나 보령시는 "용도변경 가능 여부는 논하지 않고 시설운영 측면 등 안건과 무관한 의견들만 나왔다"며 최종 결론을 다시 충남도도시계획위원회에 넘기기로 했다.

주민들은 "보령시장이 시도시계획위원회 의견에 따르기로 한 당초 약속을 깨고 증설허가를 위해 다시 충남도도시계획위원회를 거론하는 꼼수를 쓰고 있다"며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예정에 없던 점거농성으로까지 확대된 것.

보령시 관계자는 "시도시계획위원회 자문결과를 그대로 충남도 도시계획위원회 올릴 예정"이라며 "충남도도시계획심의위 결정에 따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 "공공시설도 아닌 업자 돈벌이 사업장 왜 두둔하나"

보령시측은 "과거에 허가한 문제보다는 앞으로의 치유대책이 더 중요하고 시급한 만큼 주민들이 증설허가를 용인할 수 있도록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8천여 웅천읍 주민들은 "당초 문제투성이 매립장을 허가해 놓고서 이제 와서 내놓은 치유방안이 쓰레기 골짜기냐"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양언규(39.웅천읍 대창리)씨는 "웅천읍 반경 10km내에 웅천공군사격장과 보령댐, 서천화력발전소, 부사방조제, 쓰레기 매립장 등으로 마을이 풍비박산 위기에 처해 있다"며 "여기에 공공시설도 아닌 업자 돈벌이를 위한 매립장 증설까지 왜 우리가 떠안아야 하냐"며 발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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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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