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택 교육감님, '수우미양가' 행복했습니까

[주장] '학력증진 최우선 정책'에 반대하며

등록 2004.07.30 10:01수정 2004.07.31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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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당선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당선자 ⓒ 공정택 홈페이지

민선으로 선출된 서울시 4대 교육감 공정택(70) 서울시 교육위원이 내놓은 '학력 증진 최우선 정책'을 보면서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이 나라의 교육에 대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희망의 끈을 이제는 미련 없이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현 상태에서도 성적 제일주의에 입시 경쟁 교육에서 아이들은 질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우리 아이들의 숨통을 조이겠다는 보도를 보면서 '과연 이 나라 공교육에 희망이 있는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사교육비로 인해서 받는 서민들의 고통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뻔히 사교육비를 증가시킬 우려가 있는 '학력 증진 최우선 정책'이라는 것이 고작 10년 전에 사라진 '수우미양가'의 부활이라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지금 초등학생들도 이런저런 시험들로 학교와 학원만 쫓기듯 오가는데 중간고사, 기말고사까지 실시하고, 그 결과로 순위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 잔인한 짓을 하는 게 아닌지요?

학업성적 '수'가 아니면 인생도 낙제점?

이 아이들을 '수우미양가'로 나누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학업성적에서 '수'가 아니면 이 아이들의 인생도 낙제점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아이들은 각기 성격이 다르고, 능력이 다릅니다. 대기만성형의 아이들도 있고,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들도 있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도 있고, 마음씨가 착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교육은 이 아이들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과 가장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내, 그들이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그 행복이 이웃에게까지 이어지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중간고사, 기말고사로 아이들을 '수우미양가'로 나누고 그들의 삶에 등급을 매기겠다는 발상은 진정 아이들들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교육을 살려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혹시라도 잠시 튀어보겠다는 발상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우려를 넘어서서 10년 전, 30년 전의 입시지옥을 넘어서서 과거 공 교육감이 초등학교 교육을 받았던 그 시절로 회귀하겠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제 개인적인 고백을 해볼까요?

저는 서울 변두리, 판자촌들이 집결해 있는 곳에서 한 반 70명이 넘는 콩나물시루 같은 학교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성적표를 받으면 '수'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저와 친한 것들은 주로 '미'였습니다. 어쩌다가 낙엽이 '우수수'떨어지기라도 하면 부모님들이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같은 반 아이들끼리도 '양'이나 '가'를 받은 아이들은 이내 밝혀져 '공부를 못하면 모든 것을 못한다'는 식의 의식들이 팽배했습니다.

사교육이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할 그런 상황에서도 소수의 몇몇 아이들은 과외를 받는 모양이었고, 그런 아이들은 '수'를 참 많이 받았습니다. 과외를 받을 형편이었던 그들은 어머니를 통해 치맛바람도 솔솔 날리더군요. 비가 와도 그 비를 그냥 맞고 집에 가야 했던 대다수의 친구들에게 소수의 몇몇 친구들은 경외의 대상이기도 했답니다.

그 뿐입니까? 선생님들의 관심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에게만 쏠리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더 잘하는 친구가 있어도 도통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노래를 시키지 않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가 있어도 공부를 못한다는 이유로 사생대회를 나가는 아이들은 '수'그룹의 아이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선생님의 편애에 반발해서 한 달여 동안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성적표를 받아보니 결석처리가 안되어 있더군요. 물론 꾸중도 듣지 않았구요. 그 때는 몰랐는데 공부도 특별히 잘하지 못하는 아이 하나 때문에 이런저런 복잡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가.

그러다가 한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 분의 말씀 한 마디가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공부는 좀 떨어져도 맡은 일은 척척 일등이네"하는 그 한 마디가 학교에 재미를 붙이게 했고, 공부에 재미를 붙이게 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중학생, 초등학생의 학부모가 된 지금 돌아보면 공부만 잘한다고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못했다고 실패한 인생을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결국 얼마 만큼 인간성이 되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지더군요. 물론 공부를 잘함으로 인해서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 때 저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a 이 아이들을 '수우미양가'로 나누어야 시원하겠습니까?

이 아이들을 '수우미양가'로 나누어야 시원하겠습니까? ⓒ 김민수

공정택 교육감님, 저는 '수우미양가'가 있던 시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공 교육감님은 행복하셨습니까?

상위 몇 %의 학생들을 위한 교육은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꼴찌도 사람대접 받고, 꼴찌도 일등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교육을 통해서 발견하게 해 주어야, 참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 교육감님이 이번에 당선된 이후 내 놓은 '학력 증진 최우선 정책'은 0교시 수업 문제나 평준화 문제,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등학교의 문제, 교원평가제 어느 것 하나 신선한 것이 없습니다. 구태의연하거나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인상마저 받습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지만, 이 말이 아직 공교육에 남아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만나는 아이들은 막말로 촌놈들입니다. 도시의 아이들과 비교해서 공 교육감님의 방침대로 평가를 한다면 아마도 '양'이나 '가'에 속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른 바다에 몸을 담글 줄도 알고, 푸른 잔디에서 들꽃을 바라보기며 감탄하며, 곤충들도 만지며 뛰어 노는 아이들입니다. 과연 그 아이들의 인생도 '양'이나 '가'에 속할까요?

이 땅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면서 자기의 적성과 특기를 찾을 수 있는 교육, 사교육 없이 공교육만으로도 학부모들이 마음놓을 수 있는 교육을 원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공 교육감님이 발표하신 '학력 증진 최우선 정책'은 무더운 여름 더 짜증나게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공 교육감님, '수우미양가' 행복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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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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