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까지 입시의 노예로 만들려는가

[주장]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의 '성적지상주의'를 경계한다

등록 2004.07.30 04:00수정 2004.07.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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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서 성적이 아닌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교육은 이미 교육이 아니다. 상급학교로의 진급이 교육이라면 공교육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가?

외워 쓰기의 교육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 더 잘한다. 학교는 학원이 아니다. 단순히 책 외우고, 시험 보고의 반복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을 배우는 곳이다. 단지 숫자 몇 자리가 사람으로서의 인성을 나타낸다는 말인가? 성적지상주의라는 말은 이러한 뜻을 벗어나지 않는다.

학교가 학원으로 둔갑할 때, 그 안은 무법천지가 된다. 당장에 지금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이 중학교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0교시, 야간자습이라는 비이성적인 주입의 마성이 이제는 초등학교까지 점령하려 하고 있다.

창의와 능력개발로 가득해야 할 청소년기는 단지 시험지의 노예가 되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아무도 지금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좋다고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교육을 초등학교까지 적용하자는 말은, 이제 서울시가 교육을 포기한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초등학교에까지 지금의 고등학교 시스템을 도입해서 과연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지금의 초등학생들도 결코 성적표에서 자유롭지 않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고1 수학을 배운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한 것이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교육은 과연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스스로 공교육이기를 포기하고 입시학원과의 경쟁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의 벗이자 진정한 교육으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초등학교에 일제고사와 성적표를 부활한다는 소리는 부디 다시 한 번 생각하기를 부탁한다. 초등학생들은 지금도 자유롭지 않다. 공교육은 이런 비상식적인 수준의 교육을 해체하고, 인성교육이라는 큰 목표 하에서 교육을 이끌어가야 한다. 인성이 거세된 교육은 입시학원과 경쟁하는 단순한 암기연습일 뿐, 사람을 만들어나가는 교육이 될 수 없다.

지금의 족쇄조차 견디기 힘든, 이 땅의 초등학생들에게는 성적표 부활이 아니라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한 교육의 재정립과 입시로부터의 압박감 해소가 필요하다. 10살 남짓 된 아이들에게 대학 걱정을 시키는 것보다,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건전하게 자라는 것을 먼저 바라는 것이 합당한 일이다.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진보하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혁명을 통해서 아이들은 선생님과 비등한 정보를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 스스로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하루가 멀다하고 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교실은 계속 아이들에게 뒤로 갈 것을 강요하고 있다.

미래의 박세리, 미래의 안철수에게 자신의 자질을 키우기에 앞서 수학공식 하나 더 외우게 하는 것보다 잔인한 일은 없다, 성적지상주의라는 이야기는 이러한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의 스스로 가진 재능과 미래보다는 일률적으로 정해진 교과서만을 향하는 것은 단지 “붕어빵 찍어내기”에 불과하다.


유능한 디자이너는 있지만 독특한 디자이너는 없다. 독자적으로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들 역시 손에 꼽을 정도이다. 매뉴얼대로, 해오던 대로는 자신있는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독자적으로 분야를 개척하는 사람이 없다.

한국은 애니메이션 강국이다. 애니메이션 제작량이 세계 3위이다. 하지만 누구도 한국 애니메이션을 평가하지 않는다. 한국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하청 공장으로 여겨질 뿐, 독자적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성적지상주의는 대한민국을 끝없는 하청공장으로 만들 뿐이다. 그저 창의적인 선진국의 하청공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에는 성적지상주의가 도움이 될지 모른다. 결국 선진국들의 창의력에 휘둘릴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독자 브랜드는 성적지상주의에서 절대로 피지 못한다.

성적위주의 교육이 아닌, 재능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으로서의 학과공부가 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배울 것에 대해서 역시 그 원리와 창의에 기반한 교육, 단순한 암기위주의 교육이 아닌 기본원리 속에서 흥미를 느끼는 실존 중심의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디 신임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이러한 교육 기조에 서서 성적지상주의를 재고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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