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에서 습관화된 관념을 반성하다

삶의 몸부림 배어 있는 길, 실크로드를 따라 (5)

등록 2004.09.09 15:11수정 2004.09.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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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목장과 천산천지에서

지금까지 거쳐 온 란주에서 트루판까지 여행은 지난날의 흔적을 더듬어 보는 것이었다. 폐허와 다름없는 황량함에서, 훼손된 유물과 유적지를 보면서 천 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다. 때로는 무지함에 대한 자학을, 그리고 돌아서서는 뭐 볼 것 없구만이라면서 스스로의 무지함을 달래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가고 있는 우루무치는 다르다. ‘우루무치’라는 말의 뜻이 ‘아름다운 목장’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인터넷의 여러 웹문서에서도 남산목장과 천산천지에 대해 환상적으로 그려놓았기에 기대는 컸다. 게다가 우루무치로 가는 길에서 보게 된, 거대한 풍력발전소는 그런 기대감을 한껏 더 부추겼다. 곧게 뻗은 고속도로 주변에 쭉 들어서 있는데 정말 거대하다.

우리가 가진 것이라곤 인적 자원 밖에 없는데 반해 이들은 거대한 땅에 모든 자원을 다 갖고 있으면서, 바람까지 자원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만 하다. 또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는 황폐한 사막에서 바람을 자원으로 이용하는 자연의 힘과 인간의 지혜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자연과 인간의 함수 관계가 앞으로 인류 생존의 길이리라 생각한다.

a 우루무치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서 만난 풍력발전소

우루무치로 가는 고속도로 주변에서 만난 풍력발전소 ⓒ 정호갑

이제 거친 벌판을 벗어나 남산목장으로 간다. 말을 타고 광활한 푸른 초원을 달리는 그림이 그려진다. 우루무치에서 2시간여를 달려 다다른 남산목장은 산 어귀 야트막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푸른 산을 배경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목장을 생각했었는데, 규모가 우리 대관령 목장보다 훨씬 작다. 그리고 이 정도의 경치는 한국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데 실망이다.

목장으로 수입을 올리기보다는 산언저리에 말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길을 만들어 놓고 말을 태워 주고, 또는 빠오를 보여 주고 받는 돈으로 생활하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목장에 대한 기대를 접고 1시간에 20위엔 하는 말을 타고 산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말은 생각했던 것보다 잘 달린다. 고삐를 당기니 한 시간 걸릴 거리를 40분만에 달린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산언저리를 한 바퀴 돌고나니 말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의 고삐를 잡아당기고 채찍을 가해도 가는듯하다 멈춘다. 한 바퀴를 돌고 나면 이제 자기 할 일은 다 했으니 쉬어야겠다는 태도를 취한다. 20분이나 남았는데 할 수 없이 말에서 내렸다.


습관은 사람이나 짐승 모두에게 정말 무서운 것이다. 습관은 새로운 상황이나 변화된 상황을 거부하고 현실에 그저 안주하려 한다. 참으로 안일한 삶의 태도이다.

나 또한 이미 습관화된 관념 속에 빠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일한 모습으로 변화의 속도를 놓쳐 아이들과 틈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에는 타성에 젖어 변화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옛날타령이나 하며 그만 주저앉고 마는 것은 아닌지.


a 남산목장의 평화로운 모습

남산목장의 평화로운 모습 ⓒ 정호갑

이런 생각 속에서도 남산목장에 대한 실망감은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실망감을 천산천지가 채워 줄 것이라 믿으며 발걸음을 천산천지로 돌렸다. 가는 길에 안내원은 천산천지는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고 침이 마르도록 자랑한다. 만년설과 천지, 또 다시 기대감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산으로 오르는 계곡에는 만년설이 녹은 물이 힘차게 흐른다. 하지만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웅장한 계곡에 비하면 그다지 볼품이 없다. 그리고 막상 산에 올라가 본 천지의 모습에 또 한 번 실망을 한다. 천지는 그저 산 위에 있는 자그만 호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천산의 만년설은 너무 아득하게 떨어져 있어 와 닿지 않는다. 뭐 이런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는지.

a 천지 - 그 뒤편으로 멀리 만년설인 천산의 모습이 보인다

천지 - 그 뒤편으로 멀리 만년설인 천산의 모습이 보인다 ⓒ 정호갑

하지만 이것 또한 나의 습관화된 관념임을 곧 깨달았다. 분명히 여기는 한국과 다른 지형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한국에서의 눈으로 이곳 자연을 보고 있다. 조건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여 보니 이곳이 아주 아름다운 절경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작열하는 태양으로 푸르러야 할 산마저도 붉은 모습을 하고 있으며, 목을 축일 물 한 모금도 얻을 수 없는 황량한 사막이 바로 그들의 삶의 터전이다. 그런 그들에게 푸름으로 가득한 산, 힘차게 흐르는 물 그리고 산 위에 펼쳐진 호수는 얼마나 아름답겠는가? 어찌 신에게 경배를 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루무치를 떠나면서 남는 아쉬움

습관화된 관념을 반성하면서도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우루무치의 고유한 모습을 보고 싶었다. 우루무치는 이미 도시화되었기에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기껏해야 밤이 되면 거리 곳곳의 양꼬치 굽는 모습에서 신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a 거리에서 양꼬치를 굽는 모습

거리에서 양꼬치를 굽는 모습 ⓒ 정호갑

그래서 우루무치 시내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홍산공원 대신 안내원과 기사에게 위그루족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고, 기념품도 살 수 있는 따빠쨔(大把扎)로 데려다 달라고 했다. 그 곳에 가면 색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내원과 기사는 그곳은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지 않으니 홍산공원에 갔다가 그 곳과 비슷한 지역특산품을 살 수 있는 가게로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자기들이 소개비를 받을 수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이다. 거기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제 점심을 먹고 나면 북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우루무치역으로 가야 한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매일 먹는 점심 하루쯤은 걸러도 된다면서 일행 중 몇 명이 점심을 먹지 않고 꼭 따빠쨔(大把扎)를 보고 싶다며 택시를 타고 직접 찾아갔다.

잠시 후, 그곳을 다녀온 그들은 화를 내며 울분을 토한다. 거기만 하더라도 우루무치로 여행왔다는 것이 실감난다고 한다. 그곳에는 사원도 있고, 위그루족을 비롯해 여러 소수 민족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인도 등의 특산품도 판매하는 가게도 쭉 늘어서 있다는 것이다. 시간에 너무 쫓겨 눈으로 확인만 하고 온 것이 너무 아쉽단다.

안내원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면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었는데 그들의 소개비에 대한 욕심때무에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는 우루무치 여행이가 되었다. 언제 그 먼 곳 우루무치에 다시 갈 수 있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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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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