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용공 판정하도록 압력 받았다"
공안문제연 '사상감정서 남발' 의혹

내부 제보자, 최규식 의원실로 A4 3쪽짜리 편지 보내 폭로

등록 2004.10.11 01:26수정 2004.10.1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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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공안문제연구소 내부제보자가 보낸 A4 3쪽 짜리 편지.(연두색은 편집자 강조)
지난 7일 공안문제연구소 내부제보자가 보낸 A4 3쪽 짜리 편지.(연두색은 편집자 강조)오마이뉴스 박형숙
지난 7일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실로 출판물의 이적성을 '감정'하는 공안문제연구소(소장 전병룡) 내부자로부터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다. A4용지 3쪽으로 된 이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현재까지 공안문제연구소의 최대 문제점으로 거론돼온 감정서 작성에서의 객관성, 공정성을 침해한 최대의 원인은 경찰 출신 연구소장의 역할 때문이었습니다."

이 편지의 요지는 경찰 보안국 출신의 역대 연구소장들이 검찰, 경찰, 기무사, 국정원 등에서 의뢰한 감정 문건을 좌익·용공으로 판정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위해 연구원들에게 갖은 압력과 협박을 해왔다는 것. 특히 경찰청 보안국 대공분실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사건의 경우,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감정서 작성에 개입해 될 수 있는 대로 좌익·용공으로 판정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보안 경찰의 경우 보안사범 5명을 구속시키면 특진이 되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감정서의 결과는 이들 경찰관들의 특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라고 내부 제보자는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개별 문건이 아닌 조직 자체에 대한 감정도 하게 되었다고 내부 고발자는 주장했다. 공안문제연구소의 감정 업무 범위는 공안기관이 의뢰한 개별 문건에 한정해 감정서를 작성하지만 "경찰청 보안국이 공명심을 갖고 수사하게 된 사건에 대해서, 연구소장은 오직 경찰청에 잘 보일려는 의도로 조직 자체에 대한 감정을 명령했다"는 것이다.

진보의련 사건이나 한청(한국청년단체협의회) 사건이 대표적. 이 내부 고발자는 "경찰청 보안국이 신경을 쓰는 조직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청 보안국 수사대장→연구소장→연구관으로 압력이 전달된다"고 주장했다.

"특정 사건과 관련해 일선 경찰 수사기관이 감정내용에 불만을 표시하면 야단법석을 떨고, 곧 회의를 소집해 '우리의 감정서가 얼마나 중요한데, 우리가 일선 경찰들의 사기를 떨어뜨려야 되겠는가? 경찰 수사관이 빨갱이들의 문건 하나를 입수하는데 목숨을 거는데, 이들이 기소할 수 있게 우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좌익·용공을 많이 잡아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불만인 감정서에 대해 재감정을 지시합니다."


진보의련과 한청 사건에 대해 연구관들은 "향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반대하였지만 연구소장은 이를 소장 직권이라고 주장하고 관철하였다"며 "이에 관련한 결재 서류는 연구소 서무과에 보존되어 있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 출신 연구소장이 경찰청 보안국 수사에 이토록 협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 내부 제보자는 "과거 인맥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별정직 신분의 소장은 경찰청에서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교체할 수 있는 신분상의 불안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청 보안국 수사대장→연구소장→연구관으로 압력 전달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오마이뉴스 이종호
최규식 의원은 본지에 이같은 내용의 내부 제보자 편지를 공개하면서 "공안문제연구소가 과거 어떠한 객관성과 기준으로 좌익과 용공의 잣대를 들이댔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사실들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 의원은 "과거 독재정권 유지와 보안계통 핵심세력들의 자리보전을 위해 강압적으로 좌익·용공이라는 특정 방향으로 사건을 조작해 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남영동 대공분실같은 수사기관 입맛에 맞게 감정을 해주고 수사기관에서는 이 감정결과를 가지고 고문을 통해 자백을 강요, 국가보안법 위반 피의자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행자위 소속인 최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에서 현직 연구소장과 연구관 1인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 18일 경찰청 국정감사를 통해 경찰청장과 이들 증인들을 상대로 관련 내용을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규식 의원은 지난달 22일 '공안문제연구소를 아십니까'라는 주제로 공안문제연구소에 대한 최초의 공개 토론회를 주최한 바 있다. 이 자리에는 감정서를 발급하는 연구관이 직접 나와 눈길을 끌었는데 이적표현물 등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는 <한국사회의 이해> 저자 정진상(경상대 사회학과) 교수의 연구소 철폐에 맞서 반박 토론을 벌였다.

공안문제연구소의 업무에 관해 연구소측은 △좌익이론에 대한 비판논리의 연구와 대응론 제시 △국내 좌익세력의 실상과 전술의 실태 파악 △공안관련 정책방향 제시와 대안개발 △공안관련 사건에 관한 문건 감정 및 분석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중 문건감정이 업무의 대부분으로 16명의 연구원은 평균 하루 2건의 문건을 감정하고 좌익성·친북용공성·용공성·반정부성으로 분류한다.

용인에 소재하고 있는 경찰대학 부설 공안문제연구소는 5공화국까지 치안본부(현 경찰청) 산하 남영동 대공분실 내에 설치되어있던 내외정책연구소가 민주화 바람과 함께 1988년 10월 경찰대학 부설기관으로 변경, 설치된 것.

공안연구소는 국회의 통제를 전혀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국정원보다 더한 '음지'의 공안기관.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의 감사를 받지만 공안문제연구소는 경찰청 소관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태나 문제점들이 한 번도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에 의해 '빨갱이 양성소'로 여겨지는 공안문제연구소는 시민사회단체가 줄기차게 감정목록의 공개를 요구해왔지만 "3급 국가기밀"이라며 제출을 거부해왔다. 감정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이력에 대해서도 연구소측은 학력을 제외하고는 이름조차 철저하게 비밀에 붙이고 있다.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9월 22일 국회 도서관 회의실에서 `공안문제연구소를 아십니까`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각계 전문가들로 부터 연구소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은 9월 22일 국회 도서관 회의실에서 `공안문제연구소를 아십니까` 정책토론회를 개최하고 각계 전문가들로 부터 연구소의 문제점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연구소장직 겉으로만 '공채'?
경찰청 보안국 출신 퇴직자들이 차지

최규식 열린우리당 의원이 공개한 공안문제연구소 내부제보자의 편지에 따르면 연구소장(2급 별정직)의 채용은 외부 공채가 원칙이나 "경찰청 보안국이나 경찰청 출신의 퇴직 경찰관의 자리 배치 차원"으로 활용되어 왔다. 그러다 보니 "경찰청장과 경찰청 보안국의 눈치를 살피는 데만 신경을 쓰다"는 것.

1988년 임명된 초대소장만이 유일한 민간인 출신이고 이후 대부분 보안경찰 출신자가 임명돼왔다. 이 내부제보자는 "이들은(연구소장) 감정서를 2부씩 제출하도록 하여 1부는 감정의뢰처에 송부하고, 1부는 소장이 검열용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2대 소장인 박정섭은 경찰청 보안국에서 잔뼈가 굵은 총경 출신. 이후 부임한 김윤근 소장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있을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 1과장을 지냈던 인물로 알려졌다. 김윤근 소장은 소장을 그만둔 뒤, 보안경찰 출신자들의 모임인 충의회 회장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현재의 전병룡(52) 소장은 전 서울경찰청 차장(2000년)으로 경찰청 정보국장, 경비국장 등을 거쳐 경남지방경찰청장(1998년)을 지낸 바 있다.

"소식지, 집회 유인물, 회의록 등 무작위 감정"
한청·진보의련 등 '조직사건' 감정서 공개

공안문제연구소 내부제보자가 보내온 편지에서는 특히 한청, 진보의련 등에 대한 '조직' 감정의 실체가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최규식 의원이 지난 달 공안문제연구소측에 이 두 사건에 대한 감정서 목록 일체를 요구했을 때만 해도 연구소측은 "개별 문건의 내용만을 분석하기 때문에 감정문건이 어느 사건에 관련된 문건인지 알 수 없다"고 능청을 부렸다.

경찰 보안국은 2002년 전국 53개 단체, 1600명의 회원을 둔 한청(한국청년단체협의회·회장 전상봉)과 2001년 현직 의대 교수·의사·간호사·약사·교사 등으로 구성된 보건의료단체 진보의련(진보와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운동연합)에 대해 국가보안법상 친북좌익·이적단체로 규정했다.

본지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공안문제연구소는 이들 단체에 대한 50∼70건의 감정서를 작성했는데 홈페이지 등을 통해 회원들 사이에 공유된 각종 '공개'자료에 대해 감정을 단행했다. 소식지, 집회 유인물, 회의록 등인데 2002년 2월 2일자 한청 소식지 2호를 '용공' 문건으로 판정한 감정서(2쪽)의 내용은 이렇다.

"한청 1기 사업을 평가하면서 '연방조국통일'과 '자주적 민주정부' 건설을 주장하고 있는 바, 이는 남한 정부가 자주적 민주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북한의 대남 인식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 하겠음. 나아가 주한미군철수 등 반미자주화 투쟁과 국가보안법 등을 선전선동하고 있는 바, 이러한 주장은 또한 북한이 통상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라 하겠음…."

또 진보의련의 경우 '진보의련 조직활동론'이라는 글에서 적시하고 있는 무상의료 등의 주장에 대해 연구소는 "사회를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간의 계급투쟁을 보고 있으며 나아가 자본주의에서의 생산관계의 모순의 심화를 역설하고 있는 바, 이는 맑스주의의 사회관에 입각한 것이라 하겠음"이라며 '용공성' 문건으로 판정했다.

한편 <오마이뉴스>도 감정대상(?)에 올랐다. 연구소측는 '창조적 대중으로서의 사이버운동론(초안)'이라 제목의 한청 문서에 대해 "노사모와 촛불시위는 사이버운동의 촉발이며 사이버공간의 정치논쟁은 대중투쟁의 맥락이며 서프라이즈와 오마이뉴스가 사이버공간에서의 대중의식화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시켰다"고 요약, 정리했다(2004년 5월 14일 작성).

"따라서 이 유인물은 대중운동으로서의 사이버운동의 필요성과 그 특징 및 관점의 정립이라는 초안으로 제시돼 있으며 그 가운데 자주와 통일의 대중운동으로서의 사이버운동이라는 시사가 담아지긴 했으나 사회주의 찬양하거나 동조했다는 구체적인 표현을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문건이라 하겠음."

이 문서는 결국 '사회주의'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문제없음'으로 판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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