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각 추녀마루의 용두와 잡상.한성희
"저건 뭐죠?"
"잡상이라고 하는데요. 정자각에는 손오공(손행자), 삼장법사(대당사부), 저팔계가 있죠. 제일 꼭대기에 있는 것은 용의 머리인 용두구요."
"잡상은 왜 올려놓습니까?"
"악귀를 막는다는 벽사의 의미가 있죠."
잡상이란 말 그대로 잡동사니 동물과 사오정도 포함돼 있고 이귀박과 삼살보살에 이르기까지 10여 종이 있다. 그렇지만 잡상은 아무나 지붕에나 올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귀하신 토우들이다. 잡상은 궁궐과 궁궐에 관련 있는 건물에만 올릴 수 있다. 능도 왕과 왕비가 주무시는 곳이니 정자각에 잡상이 올라간다.
절의 지붕에 잡상이 있는 경우도 왕실의 제사를 지낸다거나 능 주변에서 축원을 하는 등, 왕실과 관련을 맺은 사찰에 국한된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회암사의 발굴터전에서 잡상이 나온 것은 이성계와 문정왕후가 관련 있기 때문이다.
"왜 사오정은 없습니까?"
하긴 서유기의 주인공 중에 사오정만 빠진 이유가 궁금하긴 할 것이다. 왕실 관련 건물에만 올라가는 잡상은 홀수로 올리기 때문에 사오정이 빠진 것이다.
잡상의 유래는 송나라에서 전해졌다고 하며 임진왜란 이후 조선 궁궐 건축물에 유행했고 일본에는 없다. 중국에서는 황제 궁에 11개를 올리고 세자궁은 9개 하는 식으로 지위에 따라 숫자가 정해져 있다.
우리나라는 경복궁 경회루에 11개가 올라가 가장 많은 잡상이 있다. 잡상은 생김새가 알아차릴 수 있게 분명하지 않고 가지가지다. 손오공만 해도 모자를 쓴 잡상이 있는가 하면 모자를 벗긴 잡상도 있다.
'잡상'이라고 발음하기가 좀 거북스러울 정도로 이름이 잡스런(?) 편인 잡상의 또 다른 명칭은 '어처구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도 잡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목수가 건물을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올려놓는 어처구니를 깜빡 잊고 올려놓지 않아서 유래된 말이라 한다. 기껏 잘 지어놓고 어처구니를 올리지 않으면 미완성이 되니 작은 일을 마무리하지 않아 어이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잡상이나 어처구니나 발음상으로 우스꽝스러워 왕궁 지붕에만 올라가는 귀하신 몸치고는 이름 복은 별로 없나보다.
공릉에 대해 해설을 하다보면 호기심 많은 사람 덕분에 이렇게 알쏭달쏭한 세호의 정체유무부터 조선지붕 종류까지 줄줄 꿰어야 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일도 생긴다. 그렇지만 눈으로 보는 것마다 많은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더 반갑고 상세한 해설을 해주는 일이 더 보람 있다는 해설사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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