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우성
- 과거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에 부작용이 더 많았다는 지적이 많다. 과거 정부 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물론 순기능도 있었다. 그러나 정부정책이 주로 기업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아쉬운 점이다. 기업이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주체이고 직접 영향력을 미칠수 있어서 (정책을 펴면) 효과도 금방 나타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부는 기업자체에 대한 지원보다는 인프라에 해당하는 시장에 관심을 둬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정한 시장, 투명한 시장 육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 현재 시장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는 이야기인데.
"시장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공공부문, 기업부문, 소비자부문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소비자 시장은 그런대로 시장원리가 작동한다. 그러나 공공부문과 대기업과의 거래 관계 부분은 투명하지도 못하고 공정하지도 못한 상황이다. 벤처기업들이 살지 못하게 만드는 시장 구조, 인프라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지원정책이 나온다 해도 다시 망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벤처기업의 숫자는 많았는데 제품을 내다팔 제대로 된 시장이 없어서 다들 망한 것 아닌가."
- 정부가 또 다시 벤처활성화 정책을 연말까지 내놓겠다면서 준비하고 있다. 정부가 과거의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하나.
"기업에 집중된 관심을 시장으로 넓혀야한다. 산중턱에 좋은 자리가 있으면 여기에 가게를 세울 수 있도록 터를 닦고 도로를 만들고 경찰관을 배치해 치안을 책임지는 일이 정부가 할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가게 만들라고 자금만 지원한다면 창업을 해도 도로가 없어서 사람들이 찾지도 않을 것이고 치안이 부재하면 불량배들만 들끓어 돈만 뜯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게를 열어도 망하기 십상이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벤처가 자생할 수 있는 데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이 만들어지고 게임의 룰만 공정해 진다면 정부에서 창업자금 지원하지 않아도 각자 알아서 회사를 만들 것이다."
- 벤처 활성화를 위한 조건의 하나로 인수·합병의 활성화가 거론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인수·합병이 필요한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벤처기업 중 기업공개(IPO)되는 업체보다 인수·합병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벤처를 시작해서 어느 정도 크면 회사와 기술을 키워줄 대기업과 인수합병을 하거나 벤처들끼리 시너지를 위해 인수합병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벤처의 인수·합병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도 있고 대기업과 중소벤처간 거래관행상 인수합병이 일어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또 벤처들간에도 기업이 잘 될 때는 혼자서 하려고 하고 상황이 어려워지면 인수·합병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이 어렵다는 것은 시장에서 평가가 부정적이고 경쟁력이 없다는 것인데 경쟁력이 없는 기업끼리 인수·합병해봐야 시너지가 날 수 없다."
- 인수합병의 부재로 좁은 시장에서 많은 수의 벤처가 경쟁하는 상태라 벤처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수합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가.
"인수합병을 하게되면 주식을 교환하게 되는데 이때 양도소득세를 내야한다. 그런데 주식교환은 당장 현금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벤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이 된다. 또 합병 때 주가가 높았다가 낮아지면 또 다시 큰 손해를 보게 된다. 때문에 주식을 교환할 때가 아니라 교환한 주식을 팔 때 세금을 내게 할 필요가 있다."
"금융사기 '솜방망이' 처벌이 벤처 투명성 강화에 걸림돌"
- 인수·합병 활성화의 걸림돌로 이와 관련한 잦은 사기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점도 꼽히고 있다.
"투명성을 강화할 제도도 물론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금융사기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 평생 먹고 살 돈 마련하려면 금융사기 한번 하고 몇 년 살고 나오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실 금융사기는 살인 만큼 죄질이 나쁜 것인데 법 전체의 구조상 처벌 강화가 잘 안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특히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도 경미한 처벌 때문에 잘 안지켜지는 경향도 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참 답답하다."
- 침체에 빠진 코스닥 시장 활성화를 위한 대책으로 연기금 활용론이 대두되고 있다. 안정적인 운용이 중요한 연기금이 위험이 높은 벤처에 투자한다는 것에 대한 우려도 높은데.
"투자의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접근하면 우려를 다소 줄일 수 있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연기금에 100이라는 투자처가 있는데 99개 투자를 실패해도 1개가 1만배 이익이 나면 전체적으로 이익이 나게 된다. 따라서 요즘 수익률이 낮아서 연기금의 운용이 힘든데 국내 채권위주의 투자보다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투자청처럼 운영수익을 높이기 위해 투자처를 좀더 다양화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그 대상중 하나로 벤처에 접근하면 우려를 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