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전 편액김정봉
판전 글씨는 기교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교를 감추고 졸함을 존중하는 경지라 할만하다. '큰 재주는 졸해 보인다'는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로 평가를 대신해 볼까? 완당의 글씨를 몽당비자루로 쓴 것으로 비유를 많이 하는데 왜 위 글에서는 지팡이로 쓴 것 같다고 하였을까? 몽당비자루로 쓴 것이라 하면 완당평전에서 저자가 자주 사용한 것처럼 글씨에 기름기가 아직 빠지지 않았다고 판단해서일까?
이 글씨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제주도로 귀양 가기 전에 대둔사의 초의스님과 나눈 일화에서 볼 수 있는 기고만장한 기운을 갖고 쓴 글씨는 적어도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추사는 제주도로 귀양 가기 전에 해남 대둔사에 들러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의 현판을 보고 초의 스님에게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 놓은 게 이광사인데 어찌 저런 촌스런 글씨를 달고 있는가?"라고 하면서 자신이 쓴 글씨로 바꿔 달게 하였다. 그 후 9년간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다시 대둔사에 들러 "지난번에는 내가 잘못 보았어. 예전의 현판이 있거든 다시 달아주게" 하였다 한다.
귀양살이를 끝내고 돌아온 완당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기고만장한 기개는 살아지고 완숙한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인생의 반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것이 판전이 아닌가 싶다.
운동을 할 때 힘을 잔뜩 주면 에러를 범하기 쉽다. 특히 골프는 힘 드리지 않고 힘을 빼고 쳐야 좋은 샷이 나온다 한다. 판전 글씨는 나이가 들어서 힘이 빠진 글씨가 아니고 힘을 쭉 빼고 쓴 글씨다. 손이 가는 대로 몸이 움직이는 대로 흘러나온 글씨가 아닌가 싶다.
여성에게서 채취한 난자에서 핵을 빼낸 뒤 난자를 제공한 본인의 체세포를 난자 속에 주입하는 방법으로 세계 최초로 사람 배아 줄기세포를 만든 황우석 교수팀의 한 여학생의 신기(神技)의 손은 그냥 나오지 않았다. 황우석 교수는 젓가락으로 콩자반을 집어내는 우리의 놀라운 젓가락 문화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손과 정신이 분리되지 않은 채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예술품을 그려 내는 신령(神靈)한 선조의 손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돌아오는 길에 판전 글씨를 한 번 더 보았다. 정신이 맑아지면서 행복감에 젓는다. 비오는 토요일에 다시 한 번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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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不自美 因人而彰(미불자미 인인이창), 아름다움은 절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무정한 산수, 사람을 만나 정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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