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철 공사비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다

[심층취재] 틸팅열차 도입 땐 서울-목포 2시간에 주파 가능

등록 2005.03.28 18:10수정 2005.03.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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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피아트 페로비아라가 개발해 영국 버진 철도에 납품한 틸팅 열차 '펜돌리노 390'. 런던-맨체스터 구간을 최고 시속 225Km의 속도로 운행할 예정이다.

피아트 페로비아라가 개발해 영국 버진 철도에 납품한 틸팅 열차 '펜돌리노 390'. 런던-맨체스터 구간을 최고 시속 225Km의 속도로 운행할 예정이다. ⓒ Virgin


호남고속철도 조기착공 여부를 두고 지난 2월 16일 이해찬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때 열린우리당 주승용 의원과 언쟁을 벌인 것을 계기로 이 문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이 총리는 경부고속철도가 "당초 하루 22만~25만명 정도가 타고 4조원의 예산이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총리에 취임해서 보니 예산은 4배로 늘어난 반면 승객은 30%로 줄었다"며 15조 투입이 예상되는 호남고속철도의 조기착공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총리가 호남고속철도사업에 15조원이 소요된다고 한 것은 서울 수서로 예정된 시발역에서 출발해 충청도 지역의 분기점을 거쳐 종착역인 목포역까지 고속철전용 신선(新線)을 완전히 새로 건설하는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 철도전문가들은 이 총리가 언급한 공사비(15조원)의 3분의 1 규모인 5조원 정도면 서울~목포까지 2시간 이내 주파가 가능한 대안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골자는 충청도 지역 분기점에서 익산까지만 고속 신선을 건설하고, 익산 이남구간은 '틸팅열차'를 도입하고 선형 개량을 하는 방식이다.

호남고속철도, 3분의1 예산으로 가능한 대안 있다

a 분기기점 별 호남선 신설연장 및 예상건설비 *자료:한국철도시설공단

분기기점 별 호남선 신설연장 및 예상건설비 *자료:한국철도시설공단

현재 KTX가 운행중인 호남선은 선로상태와 주행속도를 기준으로 크게 세 구간으로 나눌 수 있다. 시발역인 용산역에서 서대전역까지는 고속철도 전용선을 이용해 최고 30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 언론의 관심에서는 비켜나갔지만 고속철도가 개통되기 전인 지난 2004년 3월 24일, 당시 고건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익산에서 목포까지 기존 호남선 복선전철화 사업 준공식이 거행된 바 있다.

약 8900억원이 투입된 이 개량구간에서 KTX는 현재도 최고 시속 160km의 고속으로 운행중이다. 익산~목포 구간은 총 164km에 달하지만 KTX 열차는 송정리역 1회 정차를 기준으로 1시간18분 만에 주파하고 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한 관계자는 "동대구~부산 구간에서 KTX가 최고 시속 140km를 넘지 못하는 것과 비교하면 기존 경부선에 비해서는 선로조건이 훨씬 양호한 상태"라고 말했다.


문제는 서대전에서 익산까지 구간. 서울고속기관차사무소의 한 실무자는 "KTX는 이 구간에서 최고 140km에서 150km의 속도를 내기도 하지만 이는 순간최고속도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구간에서 심한 굴곡으로 인해 제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지역은 객실 내에서 KTX 후미의 기관차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선로의 굴곡이 매우 심한 곳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한 관계자는 "천안·아산의 분기점에서 익산까지 고속철도 신선을 만들고 익산 이남은 기존의 개량복선철도를 활용하는 것 만으로도 서울에서 목포까지 최고 2시간9분의 주파가 이미 가능한 상태"라고 확인했다.


"1단계 공사만으로 서울-목포 2시간9분에 주파한다"

물론 호남고속전철의 분기점이 어디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주행거리와 시간은 이보다 다소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공단측의 설명이다. 호남고속전철이 신행정수도 후보지가 인접한 오송역에서 분기할 경우 익산까지 고속철 신선 길이는 88.84km이며, 서울~목포 주행시간은 2시간13분으로 늘어난다. 만약 대전에서 분기한다면 익산까지의 신선 길이는 69.9km이며 총 주행시간은 2시간19분이다.

단지 충청도 지역의 분기지점에서 익산까지 신선을 건설하는 것 만으로 2시간 초반대의 주행이 이미 가능한 것이다. 반면 호남고속전철의 분기지점이 어디로 결정이 나든 추가 건설비는 최저 4조6천억에서 최고 5조6백억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철도시설공단 측은 추산하고 있다. 노선관통지역인 충청도의 지형이 영남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탄한 것도 공사비가 적게 드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문제는 서울~목포 구간을 2시간 내에 주파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익산 이남에 고속철 전용선을 건설하지 않으면서도 2시간 내 주파를 가능하게 하는 비장의 대안은 바로 '틸팅(tilting)열차'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이태리와 스위스처럼 산악지대가 많은 나라는 평지가 태반인 프랑스에서 개발된 TGV형 고속전철이 적절하지가 않다. 이태리에서 개발된 '펜돌리노'라는 틸팅열차의 경우 곡선구간에 진입할 때 최고 8도까지 차량을 좌우로 기울여 승객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고속주행이 가능한 독특한 메커니즘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마치 모터사이클 선수가 급커브 구간에서 차량을 좌우로 기울여 전복되지 않으면서도 고속주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 이 기술을 적용할 경우 기존 재래선을 활용하면서도 최고 30% 이상의 속도향상을 이룰 수 있음이 이미 입증됐다.

a TTX 열차의 집전장치(팬터그라프) 모형. 열차와 반대방향으로 기울어 안정적인 집전기능을 수행하는 '역틸팅기능'을 갖추고 있다.

TTX 열차의 집전장치(팬터그라프) 모형. 열차와 반대방향으로 기울어 안정적인 집전기능을 수행하는 '역틸팅기능'을 갖추고 있다. ⓒ 민경진

이태리 틸팅열차 '펜돌리노' 속도 30% 향상

실제로 험준한 지형이 많은 이태리의 피아트에서 개발한 기술을 적용한 대표적인 틸팅열차인 '펜돌리노 ETR-460'의 경우 최고 250km의 속도로 기존 재래선을 고속 질주하고 있는 중이다. 익산~목포 구간에 틸팅열차를 도입해 지금보다 약 30%의 속도향상을 달성한다고 가정할 경우 KTX의 최고운행속도는 시속 160km에서 208km로 올라간다. 만약 이론상 가능한 최고 40%의 속도개선을 이루어낸다면 최고주행속도는 시속 224km로 늘어난다.

호남선에서 한국형고속전철(HSR-350X)의 시운전을 진행중인 한 관계자는 "선로를 보강하고 신호시스템을 개량하는 것만으로 익산 이남 구간에서 시속 200km 이상의 주행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인했다. 그는 선형개량만 충분히 이루어진다면 심지어 최고 250km의 속도를 내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틸팅열차를 도입하고 선형개량을 한다면 익산~목포의 개량구간에서도 1시간 내 주파가 가능하다는 뜻.

결과적으로 충청도의 분기지점에서 익산까지 고속전용선을 건설하고 익산 이남구간에서는 틸팅열차를 도입하는 것 만으로 2시간 내 주파가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물론 틸팅열차를 투입해 속도 향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선로강화, 선형개선, 신호설비 등에 약 수천억원 정도의 비용이 투입된다. 하지만 고속신선을 새로 건설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수준이다.

국제철도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독일의 틸팅기술 자문회사 로고모티브의 울리히 하흐만 상무는 "틸팅열차 투입에는 재래선 개량이 필요해 어느 정도 비용이 들어간다"면서도 "신선 건설에 비해 획기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인해 틸팅열차는 유럽 대다수 나라에서 초고속 열차와 경쟁하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밝혔다.

a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 중인 한국형 틸팅열차 TTX. 열차 6량이 1편성이며 설계속도 200Km가 목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개발 중인 한국형 틸팅열차 TTX. 열차 6량이 1편성이며 설계속도 200Km가 목표다. ⓒ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미 고속열차 아셀라, 보스턴-뉴욕 3시간으로 단축

사실 최소한의 투자만으로 고속전철과 버금가는 속도를 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인해 요즘 건설되는 고속철도는 세계적으로 틸팅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대세다. 보스턴-뉴욕-워싱턴 D.C 구간에 도입된 암트랙의 초고속열차 아셀라가 대표적인 사례.

프랑스의 알스톰과 캐나다의 봄바르디에 컨소시엄이 수주한 아셀라 열차는 틸팅 차대를 도입해 기존 재래선을 최고 250km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중이다. 아셀라는 보스턴-뉴욕 간의 주행시간을 기존의 4시간30분에서 3시간으로 단축해 이 지역의 비즈니스 고객을 비행기에서 고속열차로 대거 유인하는데 성공한 바 있다.

이 외에도 일본의 신칸센을 비롯해 독일, 영국, 스페인,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호주 등도 틸팅 열차를 도입하는 등 바야흐로 틸팅방식 고속전철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중이다. KTX 열차의 공급사인 프랑스의 알스톰 역시 당초 틸팅기술을 보유하지 못했으나 이 방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펜돌리노 열차를 개발한 이태리의 피아트 페로비아리아를 인수한 바 있다.

알스톰은 또 고속전용선에서는 최고 320km의 속도로 달리고 재래선에는 틸팅기능을 가동해 220km의 준 고속을 유지하는 모델명 'P-01'이라는 TGV 열차를 몇 년간 시험운행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01년부터 틸팅기술 개발에 착수해 초기 시제품을 이미 선보인 지 오래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기존철도기술개발단'이란 곳이 바로 그곳이다.

'기존철도기술개발단'의 한성호 팀장은 당초 "경부선이나 호남선 같은 간선철도의 고속화가 완료된 이후, 전라선이나 경전선 등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고속전철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틸팅기술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한국형 틸팅열차는 재래선에서 최고 200km의 속도로 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기술도입선은 알스톰에도 관련 부품을 공급하는 독일의 ESW란 회사다.

"한국형 틸팅열차 개발해 고속전철 소외노선에 투입하겠다"

로고모티브의 울리히 하흐만 상무는 "틸팅열차와 고속열차는 각자 독자적인 기술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동일차량에 두 가지 기술을 완벽하게 조합시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흐만 상무는 그러나 "틸팅열차의 속도를 300km로 올리는 것은 어렵겠지만 이미 300km로 주행중인 고속열차에 틸팅기능을 장착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열차의 편성은 10량 이하로 해야 틸팅열차의 성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로템이 개발해 호남선에서 시운전 중인 한국형 고속열차에 틸팅기능을 추가한다면 용산역에서 출발한 KTX는 익산역까지 시속 300km로 내달린 후 익산에서 목포까지는 틸팅차대를 가동해 220km 이상의 고속으로 달려 결국 목포까지 '2시간 내 주파'라는 호남지역 승객들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 TTX 열차의 커브구간 주행 개념도

TTX 열차의 커브구간 주행 개념도

한편 틸팅열차의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10량 이상의 편성을 하지 못하는 것도 승객이 상대적으로 적어 경부선처럼 장대 편성이 적절하지 못한 호남선에는 오히려 잘 들어맞는 셈이다. 철도공사로서도 최적의 경제적인 열차편성이 가능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충청도의 분기점에서 익산까지만 고속 신선을 건설하고 익산 이남구간은 틸팅열차를 도입하고 선형개량을 할 경우 약 5조원 가량의 예산만으로도 '서울~목포 2시간 주파'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국철도학회의 송달호 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호남선 익산 이남구간의 개량공사가 완료된 후 호남고속철도를 건설해야 할 경제적 타당성이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익산 이남 구간에서 이미 부분적으로 고속화를 달성해 3시간대 주파를 하고 있다면 고속철 전용 신선을 건설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속도개선 효과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는 것. 철도 관계자들은 "어떤 기술을 채택하든 목적지까지 빠른 시간 내에 승객을 수송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며 "꼭 경부고속철도와 동일한 신선을 깔아야만 한다는 요구는 비합리적인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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