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원
산비탈 아래 산수유가 활짝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가까이 가서 사진 몇 장 찍어 볼까 생각하며 내려가려는데 눈앞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습니다. 청설모란 녀석이었습니다. 날씨가 좋아서 나들이를 나왔는지 나뭇가지 사이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습니다.
어릴 때 다니던 학교 길은 참 멀었습니다. 고개까지 넘어야 했습니다. 책보를 비스듬히 메고 고갯길을 오르다보면 다람쥐가 참 많았습니다. 조그만 녀석이 나뭇가지 사이에 앉아 있다가 인기척이라도 느끼면 후다닥 나뭇가지를 타고 사라집니다.
아이들은 다람쥐를 보면 돌멩이를 던졌습니다. 아이들의 어설픈 돌팔매질에 쉽게 잡힐 다람쥐가 아니었지요. 다람쥐는 아이들의 손에서 돌이 떠나기도 전에 나뭇가지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다람쥐만 보면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같은 마을에 사는 형이 던진 돌에 비탈길을 타고 오르던 다람쥐가 맞았습니다.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닌데 다람쥐는 굴러 떨어졌습니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올리며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팔매 돌을 던진 형이 으쓱대며 다람쥐를 손으로 집어 들었습니다. 부러움과 호기심에 가득 찬 눈망울로 아이들은 형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람쥐를 집어들던 형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습니다. 죽은 줄 알았던 다람쥐가 필사적으로 형의 손을 할퀴고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애써 잡은 다람쥐를 놓치지 않으려는 형과 손아귀를 벗어나 도망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는 다람쥐 사이에 큰 싸움이 벌어진 것입니다.
형은 오래 버티지 못했습니다. 손가락 사이에 붉은 피가 흐른다 싶더니 결국 다람쥐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형의 손아귀를 벗어난 다람쥐는 순식간에 숲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형은 다람쥐가 할퀴고 물어뜯은 상처의 고통에서 벗어나려 한참을 쩔쩔 매며 서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다람쥐보다 청설모가 더 많이 눈에 띕니다. 다람쥐에 비해 덩치도 크고 검은 데다가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녀석입니다. 밉상이어도 자주 보면 정이 든다고 오늘따라 녀석에게 눈길이 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