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자료사진)연합뉴스 황광모
정부는 물론 지난 4월 독일 방문 당시 노무현 대통령까지도 "북한이 비료를 지원받으면 남북대화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고 대화와 비료의 연계방침을 밝혔는데, 현정부의 구체적인 대북정책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이 반대의견을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현 정부가 대북송금 특검을 수용한 것 말고는 대북정책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뿐만 아니라 김 전 대통령은 한신대 강연에서 북한측에 대해서도 "서울로 못오면 도라산역으로라도 와야 한다"면서 "이것은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는 길이고, 우리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는 길"이라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북측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과는 별도로 한국 정부와 대화할 것을 강력히 권고한 것이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적절한 시점에 남한 정부에 대해서는 북한에 '조건없이 비료를 줄 것'을 권고하고, 북한 정부에 대해서는 '조건없이 남북대화에 응할 것'을 권고함으로써 북한은 비료지원을 위한 회담을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되어 '자존심'을 챙기고, 남한은 어떻게 해서든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실리'를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김 전 대통령이 북한측에 "도라산역으로라도 와야 한다"고 남북대화를 촉구한 지 이틀만인 14일 오전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개성에서 만나자"고 화답해온 것이다.
14일 오후 이봉조 통일부차관의 공식발표에 따르면, 이날 오전 북남상급회담 북측대표단 단장인 내각 권호웅 책임참사가 북남상급회담 남측대표단 수석대표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 앞으로 전화통지문을 보내, 오는 16~17일 개성에서 당국 실무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측이 그동안 거부감을 표명해온 정동영 통일부장관 앞으로 전화통지문을 보낸 것이 이채롭다. 이는 이번 개성 실무회담을 계기로 북한측이 '북남상급회담 남측대표단 수석대표'인 정 장관과도 장관급회담을 할 것임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6·15 이전에 남북관계 풀리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 깨
북한은 그동안 미국 측에 대해서는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공식사과를 요구하며 6자회담 복귀를 거부해왔다. 북한은 또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대북송금 특검 수사 및 6·15 공동선언 관련자 사법처리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 불허 ▲탈북자 대량 집단입국 등을 빌미로 당국간 회담을 거부해왔다.
그런데 북한은 조문 및 탈북자 입국에 대한 남측의 사과나 해명이 없는데도 스스로 남북대화 중단 10개월만에 대화재개를 요청해온 것이다. 이런 '뜻밖의 제안'과 관련 이봉조 차관은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여러 계기 때마다 북쪽에게 당국회담의 조기 개최 필요성을 촉구해왔다. 올 1월 들어 북쪽이 적십자회담 채널을 통해 비료지원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런 과정이 3월까지 진행돼왔다. 북쪽으로부터 3월 이후 비료지원 요청이 전혀 없었다. 최근 들어 북쪽이 당국간 채널을 통해 회담 재개문제를 조심스럽게 타진해왔다. 시기는 최근이라고만 말하겠다. 구체적으로 적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북한이 3월 이후에는 비료지원 요청을 전혀 안하다가 '최근 들어' 당국간 채널을 통해 회담 재개문제를 조심스럽게 타진해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