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없는 젊은 날을 불태우려면

<젊은날의 깨달음>을 읽고서

등록 2005.05.31 17:36수정 2005.06.0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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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사람들은 젊은 옛 시절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한때 진리가 뭔지 그것에 사로잡혀서 도서관에 파묻혀 책과 씨름했던 그 때 그 시절,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온갖 공사판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그 때 그 시절, 작은 것 보다는 큰 것에 뜻을 두고 그 일에 온 몸을 던졌던 그때 그 시절….

그렇듯 나름대로 그때 그 시절이 있다. 힘들었지만 자기만이 이겨낼 수 있었고, 자기만이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그때 그 젊은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때론 부모가 줬던 영향 때문에 견뎌낼 수 있었고, 선생이 줬던 가르침 때문일 수 있었고, 때론 사회가 겪고 있는 불의 때문일 수 있었고, 자기만이 미쳐버린 그 무엇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것들 때문에 어렵고 힘들었지만 꿋꿋이 한 평생을 견디며 살아 올 수 있었다.


<젊은 날의 깨달음> 책 겉그림
<젊은 날의 깨달음> 책 겉그림리브로
그래서 두 갈래로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너무나도 힘든 나날이었지만 나름대로 정말 값진 삶을 살아왔노라고, 또 온갖 고통 속에 시달리며 한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래도 올곧은 뜻을 굽히지 않고 살아왔노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수 있고, 그와는 달리 자식들이나 그 누구한테도 자랑삼아 이야기할 수 없는 부끄러운 젊은 시절도 있겠고, 가히 속여서 말하고 싶은 거짓된 시절도 있기 마련이다.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부끄럽지 않는 젊은 시절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젊은이들을 두고서 하는 이야기일 텐데, 이미 젊은 시절을 보낸 어른들이야 할 수 없겠지만 아직 꿈 많은 젊은이들이야 다르지 않겠는가?

그들에겐 진리에 파묻혀 살 수 있는 시간이 있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젊음을 불태울 시간이 있고, 큰 뜻을 위해 작은 것을 버릴 수 있는 용기도 있지 않겠는가? 무작정 돈에 휘둘린 채 인생을 무의미하게 보내기보다는 큰 뜻을 세우며 나름대로 값진 인생을 살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그 이정표를 어디에 둘 것인가, 그것을 알려 준 책이 있다. 바로 <젊은날의 깨달음>(인물과사상사·2005)이다. 조정래나 홍세화, 김진애, 정혜신 같은 나이 든 분들이 이 책에 글을 썼다. 젊은 옛 시절을 힘겹게 보낸 분들이지만,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활발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 분들이다. 분명 '나이든 젊은이'들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이분들이 어떤 젊은 시절을 보냈는지, 그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다.

"1년차 전공의 시절, 나는 당직이 아닌데도 집에 가지 않고 병원 당직실에서 자곤 했다. '지금 내가 정신과 의사가 되었구나'하는 가슴 저린 희열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당직실에서 잘 때는 그런 느낌을 혼자 조용히 그리고 마음껏 음미할 수 있었으니까."(23쪽)


이는 정신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젊은 대학시절을 불태웠던 정혜신 씨가 쓴 글이다. 그녀는 당시 성차별이 있던 그 시대상을 뛰어넘기 위해 온갖 모욕과 수모를 받으면서도 기꺼이 견뎌 냈고, 휴가도 잊은 채 밤잠을 설쳐가며 온갖 연구와 발표에 흠뻑 젖었으며, 심지어 자신이 정신과 의사인지 환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 일에 완전 미쳐 있었고, 자신이 정신과 전문의가 된다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지방 정신과 파견 근무자로 발령이 났을 때도 그녀는 그 모든 일을 기쁨으로 맞아들였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그 젊은 시절에 쏟아 부었던 열정이 떠오르는 것인지, 자신이 정신과 의사로서 자질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바닥까지 환자가 되어 보았던 경험' 덕택이라고 이야기한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선생 노릇을 오래하지 못했다. 고약한 것들을 소설로 쓰는 '삐딱한 놈'으로 찍혀 3년 만에 중경 고등학교에서 쫓겨났다. 10월 유신이 시작된 그 해 내가 낸 작품집에는 반미의식의 〈누명〉, 연좌제의 〈어떤 전설〉, 여순사건을 다룬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같은 단편들이 실려 있었다. 그 작품들이 육군대학 총장 출신으로 유신을 절대 지지하는 교장의 눈에 심히 거슬렸던 것이다. 선생이 떠날 때는 으레 전교생이 모이는 조회 때 이임인사를 하는 법인데 교장은 나에게 그것도 못하게 하고 내몰았다."(154 쪽)


이는 아버지 때문에 지긋지긋한 가난을 경험해야 했고, 또 아버지 덕에 가르치는 일과 글 쓰는 일을 한꺼번에 할 수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사회가 어수선하여 가만히 두지 않는 까닭에 그만 두어야 했고, 그리고 손수 출판사도 꾸려서 교정도 보고 배달도 하고 지방 수금도 하여 먹고 살 길을 열어갔다던, 그야말로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던 조정래씨가 쓴 글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해서 잘나가던 출판사를 그만 두고 온전히 글만 쓰는 소설가가 될 수 있었을까. 물론 마음 한 구석에는 그때까지도 돈 욕심이 없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출판사를 잘만 꾸리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나서서 영업을 하던 그 때에, 고속버스에서 황량한 겨울 들판을 바라보게 되었고, 언제까지 그렇게 다녀야 하는지 자신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그는 그 모든 욕심을 뿌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글쓰기에만 전념하게 됐고, 비로소 그때〈유형의 땅〉을 썼고, 〈불놀이〉를 썼고, 〈태백산맥〉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무언가 하나에만 온전히 미쳐야 그 진수를 퍼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겨운 젊은 옛 시절을 살아 온 어른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가 그래도 어느 정도 이정표를 그리고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이들에게 그런 물음을 던진다면 뭐라고 답을 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엇이 젊은이로 하여금 앞날을 살아가게 만드는가?', '젊은이는 과연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단지 돈 때문만이 아니라, 자기가 세운 목표가 가히 부끄럽지 않도록 아름다운 생을 불태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이 어떤 젊음을 불태워야 할지, 자기가 그리고 있는 그 밑그림들을 더 또렷이 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젊은 날의 깨달음

조정래.홍세화.정혜신 외 지음,
인물과사상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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