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미친 짓, 뭐하러 회사 다니나?"

[현장- 용인신봉] '판교 로또' 부메랑에 흔들리는 부동산 시장

등록 2005.06.09 10:59수정 2005.06.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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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용인 신봉은 1년 사이에 아파트 값이 2배가 뛰었다

용인 신봉은 1년 사이에 아파트 값이 2배가 뛰었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매물은 없었지만, 호가는 좀체 멈출 줄 모르고 있었다. 경기도 용인시 신봉동. 2004년 입주가 완료된 이 곳은 용인 수지지구 바로 옆 쪽에 위치해 있다.

경실련은 판교 신도시 개발로 인해 지난 5개월 동안 분당, 용인 죽전 ·신봉, 영통, 동탄, 동백 지역 아파트 값이 총액기준으로 11조원 폭등했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 따르면 용인 신봉은 2002년 분양가가 596만원(32평 기준)이던 것이 2005년 5월 현재 1038만원으로 74%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교 지역 가운데 가장 가파른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렇다면 실제는 어떨까?

'33평 4억 3000만원, 39평 5억 1000만원, 46평 6억원'

2004년 1월 2000세대가 입주를 마친 용인시 신봉동 ○○아파트의 요즘 시세다. 평당 분양가 670만원이었던 이 아파트는 현재 평당 1300만원이다. 1년 사이에 아파트 가격이 2배 가까이 줄달음질 친 셈이다. 부동산 중개소 앞에서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30대 중반의 주부를 만났다.

"이 곳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올랐나?"
"분당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많이 올라도 뭐하나. 양도세 실거래가로 팔 수가 없는데."
"언제부터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 시작한 건가?"
"지난해 판교 개발 이야기 나오면서 가격이 들썩였다."


그는 서울 강서구 염창동 집을 팔고, 용인 수지2지구로 이사왔다가 2004년에 용인 신봉으로 옮겨왔다고 설명했다. 분양 받은 것은 아니지만 입주 초기에 이동해 약간의 프리미엄만을 주고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는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 값이 몇 억원씩 올랐지만 핏대를 세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했다.


"내 남편도 직장인이지만, 이건 미친 짓이다. 자고 나면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데, 회사 다니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결국 빈익빈 부익부만 가속화되는 것 아닌가. 강남이나 분당은 서민들이 진입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렸다. 철옹성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 서울에 들어가려면 강북 아니면 들어갈 수나 있겠나?"

"부녀회가 가격 경쟁 주도... 거품이 꺼져야"


a 이 지역은 아파트 값이 2배 이상 올랐지만, 매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부동산 업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 지역은 아파트 값이 2배 이상 올랐지만, 매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게 부동산 업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오마이뉴스 박수원

용인 신봉 지역에서 중개업을 하는 ㅅ사무소의 민 아무개 대표. 그는 "가격은 호가를 치고 있는데, 매물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용인 신봉 지구에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만들어진 부동산 중개소들은 요즘 시쳇말로 손가락만 빨고 있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아, 가게를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고 민씨는 귀띔했다.

28년 동안 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2년째 공인중개업을 하고 있는 그는 "2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대한민국에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다"고 말한다.

"아파트 부녀회에서 얼마 이하로 팔지 말라고 아예 담합을 맺는 구조다. 그러니 아파트 값이 떨어지겠나. 아줌마들이 모여 앉으면 하는 이야기가 '어디 아파트가 앞으로 전망이 좋다더라'는 것이다. 전 국민이 투기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상태에서 집 값을 잡기가 쉽지 않다."

민씨는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우선 꺼져야 한다"면서, "부동산에 마구 투자했던 사람들이 정말 '개피' 보는 일이 생겨야 정신이 차리지 않겠느냐"고 푸념섞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참여정부가 세운 양도세 실거래가 부과 등 부동산 정책의 기본적인 원칙이나 방향은 맞지만, 실행 과정에서 정책의 구멍들이 생겨 결국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민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을 잡겠다는 의지가 있었다면 집권 초기에 싱가포르 처럼 토지는 국가 소유라는 공개념을 확실히 세웠어야 했다"면서, "지금 상태에서는 신도시나 개발 계획을 만들지 말고, 그냥 부동산 시장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이 집 값을 안정시키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판교 로또를 어찌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5월 30일 "부동산투기 예방의 정책 목표와 정책수단간 불일치가 없는지 점검하라"면서 부동산 투기 예방을 강조했다. 그러나 판교 신도시 분양을 앞두고 주변 집 값은 끝을 모르고 뛰고 있다.

물론 최근의 과열된 부동산 시장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참여정부가 내건 균형발전이 전반적으로 국토의 땅 값을 상승하게 만들었고, 강남 라인의 확대를 가져온 판교 개발로 인해 분당·용인권까지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정부가 시장 상황에 동요돼 요즘 '양치기 소년'처럼 정책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데, 정책일관성을 가지고 흥분된 부동산 시장을 잠재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편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경실련 박완기 시민감시국장은 "정부가 분양가를 20%정도 내리겠다고 도입한 원가연동제는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근거없는 건축비·택지비 인상으로 공공택지에서 폭리를 취한 건설업체에게 면죄부를 부여했다. 그 결과 가격 상승으로 부동산 시장에서 어떤 방법도 먹히지 않는 실정"이라면서, "판교신도시가 보완책 없이 오는 11월 일괄분양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만큼 정부가 판교 공영개발과 함께 공공주택을 대폭 확충하는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올해 들어서도 집값 안정과 부동산 투기근절과 관련 6차례나 발언한 바 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판교 로또를 보는 서민들은 지금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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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2022년 4월부터 뉴스본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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