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허된 보원사 터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5층석탑안서순
수백년 동안 폐허인 채 내려오는 충남 서산 가야산 보원사 터에 다시 조그만 절집이 세워지고 독경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터의 관리권을 갖고 있는 서산시와 이곳을 불교 성지로 여기는 조계종단과 갈등의 골이 패여 가고 있다.
보원사 터는 전체 넓이가 10만2886㎡로, 절 터안에 있는 법인국사 보승탑비(보물106호)에는 비의 위치가 ‘고려국 운주 가야산…’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인근에 남아있는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마애삼존불(국보84호)과 1968년 절 내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백제시대 유물이어서 보원사를 누가, 언제 창간했는지 현재로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터의 여기저기에는 현재 남아있는 5층 석탑의 규모와 비슷한 무너지고 깨어진 탑조각과 금당터, 개울을 가로질렀다는 홍예교 터, 아침저녁 공양시간에는 쌀을 씻은 뜨물로 개울물이 흐려진 채 내려가고 1000여명이 넘는 스님들의 독경소리로 지금까지 ‘강당골’로 불리 전해오는 말로 볼 때 대가람이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 할뿐이다.
보원사 터에는 법인국사 보승탑비(보물106호)와 탑비(105호),5층석탑(보물104호),당간지주(보물103호), 석조(보물102호)와 남아있는 5층 석탑과 동일한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탑 조각들이 여러 군데에 남아있는 불교문화의 보고다.
이런 대 가람이 언제 어떤 이유로 수백년 넘게 밭으로 방치돼왔는지는 지금까지도 수수께끼다. 보원사는 폐허 이후 그 터는 지역사람들의 농경지와 집터, 풀밭으로 변해 내려왔다. 1968년 출토된 금동여래입상도 밭을 갈던 농부의 쟁기에 걸려 나온 것이다.
처한 입장에 따라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고 불교성지로 경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보원사 터가 서산시와 조계종과 갈등의 씨앗을 잉태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수년전부터 서산시는 보원사 터에 대해 발굴조사와 영구보존을 위해 사적지로 지정된 10만2886㎡중 개인소유로 되어있는 6필지 8260㎡의 매입을 위해 지난해 8월 행정예고를 한데 이어 지난3월에는 지장물 조사를 했고 조사내용 등을 토지소유자에게 통보했다.
이런 과정에서 조계종7교구본사인 수덕사가 지난해 11월 사유지 중 주소지가 경기도 고양시 의 문모씨 명의로 되어 있는 주택과 3914㎡의 땅을 사들인 다음 그해 12월9일 집을 개조해 ‘보원사’라는 이름으로 수덕사 말사로 등록했고 그 땅을 보원사(주지 정범)에 증여했다.
이 일을 두고 서산시는 ‘발굴조사 등 문화재보존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마당에 보원사가 사적316호로 지정된 지역의 토지를 사들여 사찰을 조성한 것은 시가 계획하고 있는 사업에 막대한 차질을 빗게 하는 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며 발끈하고 나섰다.
시는 지난3월 보원사에 ‘해당 토지를 서산시에 팔 것을 종용하는 한편 이에 불응할 때는 문화재보호법(75조)에 의거 강제 토지수용사용 절차를 밟겠다고 통고했다.
이에 대해 보원사측은 ‘보원사의 찬란한 불교문화유산을 우리가 관리하고 계승발전 시켜야 겠다는 사명감으로 불사를 시작했다’며‘시가 요구한(매도)것은 응할 수 없다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다.
나아가 보원사은 지난 11일 법장 총무원장 등 불교계 원로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개원행사를 갖고 정식으로 사찰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