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건국신화, 역사적 사실로 밝혀질까?

경주 나정에 우물터, 8각 건물터 등 발굴..."혁거세 설화 밝힐 유적 가능성"

등록 2005.08.25 19:06수정 2005.08.2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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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전 나정 모습. 비각만 있어 과연 나정일까? 의문도 많았다.
발굴 전 나정 모습. 비각만 있어 과연 나정일까? 의문도 많았다.중앙문화재연구원

경주 남산 산자락에 있는 나정 발굴현장. 인근에 오릉, 포석정 등 신라초기 유적이 많은 지역이다.
경주 남산 산자락에 있는 나정 발굴현장. 인근에 오릉, 포석정 등 신라초기 유적이 많은 지역이다.추연만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단순한 신화의 주인공 인가? 아니면 역사적 인물일까

사적 제245호 경주 나정(蘿井)은 박혁거세 탄생설화가 깃든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신라 건국신화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많은 문헌에 나와 있다. 그 중 <삼국유사>는 박혁거세 탄생설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6촌장이 알천에서 회의를 여는데, 양산 아래 나정에 이상한 기운이 하늘로부터 땅에 닿도록 비춰 가보니, 백마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조사해 보니 자주빛 알 한 개가 있었으며 말은 울고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깨고 어린 남자 아이를 얻어 동천에 목욕시키니, 해와 달이 청명해져 혁거세왕이라 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는 단순히 신화의 주인공 일까 아니면 역사적 인물일까? 일반적으로 건국신화는 결국 왕권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기능이 있어 ‘신화는 신화일 뿐’이란 시각이 많다. 그래서 건국신화에서 역사적 사실을 끌어내는 작업은 신중해야 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발굴 전 우물 위치와 발굴 후 우물터 모습
발굴 전 우물 위치와 발굴 후 우물터 모습중앙문화재연구원

나정 우물 '원형'으로 추정되는 우물터
나정 우물 '원형'으로 추정되는 우물터추연만

8각 건물을 세우는 과정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우물'터
8각 건물을 세우는 과정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새로운 우물'터추연만
나정에 우물터, 8각 건물터 등 발굴“혁거세 설화 밝힐 유적 가능성 높다."

3년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나정은 박혁거세 탄생설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유적일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중앙문화재연구원은 24일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우물터를 발견한 데 이어 8각건물터를 비롯해 제사의식 관련시설과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주거지와 유물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문화재연구원은 “8각건물터 아래에서 발견된 우물터와 유구에서 나온 토기 뼈 등을 분석한 결과, 나정은 신라 박혁거세 탄생설화와 연관된 유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또 “8각건물터는 건국시조를 모신 제사시설인 신궁(神宮)터 일 가능성이 높으며 고대건축을 연구하는 풍부한 자료가 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서강대 박물관장 이종옥 교수는 “지금까지 이곳에 오면 비각만 있어 과연 나정일까? 의문이 있었다”고 밝히며 “나정에 우물이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문헌자료와 연관된 유물이 추가로 발굴됨으로써 한국고대사를 새롭게 정리할 계기가 된다”고 소감을 나타냈다.

또 이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학자들이 신라건국 신화를 전면 부정한 사실이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특히 일제는 <삼국사기>의 신라본기 등 신라초기 역사문헌을 애써 무시하며 한국고대사를 왜곡했으며 해방 후 이런 식민사학 흐름을 그대로 따른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정의 발굴조사로 일제 식민사학의 허구가 드러난 것이란 평가.


나정에서 출토된 기와류
나정에서 출토된 기와류중앙문화재연구원

나정에서 출토된 유물류
나정에서 출토된 유물류중앙문화재연구원
신라 제사시설과 청동기시대 주거와 연관된 유적 유물도 발굴

중앙문화재연구원은 8각 건물터는 신라~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며 3차례에 걸쳐 중창된 것이란 설명도 곁들었다. 또 제사행위와 연관이 있는 유적과 더불어 토기, 기와, 철기와 같은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는 것이다. 이에 연구원은 문헌기록과 더불어 나정의 역사적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삼국사기>는 신라 소지왕(또는 지증왕) 때 시조 박혁거세가 탄생한 곳에 신라왕실 최고의 제사시설인 신궁(神宮)이 건립됐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나정 발굴조사는 청동기시대 주거지가 8각건물터 주변에서 확인돼 나정 일대는 청동기시대 주거 집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아가 초기철기시대 유물도 발견됨으로써 청동기시대 이후 이 일대에 사람이 거주하기에 적합한 지형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삼국사기> 등 문헌기록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다는 해석이다.

남산기슭을 뒤로 한 나정은 주위에 넓은 들이 많아 농경문화가 잘 발달한 곳으로 신라건국 이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왔다는 것이다. 지금도 나정 일대에는 혁거세가 첫 궁궐로 삼았다는 창림사 터가 있고 오릉, 포석정 등 신라초기 유적이 많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곳.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 회의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 회의추연만
지난 24일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 회의는 나정의 가치를 인정한 가운데 추가 조사와 복원방향에 대한 폭넓은 의견을 나누었다. 영남대 정영화 교수는 “건국신화는 전설이 아닌 실제적인 역사다. 이렇게 건물터가 잘 남아 있는 곳은 드물다. 인근의 오릉 앞 ‘만남의 광장’ 부지에도 귀중한 유물이 대량 발견되고 있는데, 나정 일대를 연계해 조사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 의견을 밝혔다.

한국전통문화학교 김동현 석좌교수는 “해방 후 경주유적을 많이 발굴했지만 나정은 처음 보는 귀중한 것이 많이 보인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동양적인 가치가 있다”면서 “그러나 건축초석 배열이 어긋난 점 등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부분도 많다. 복원을 서두르지 말고 장기적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모형제작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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