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금을 닮은 서귀포 돔베낭골

자연의 속살을 찾아가는 사색여행(1)

등록 2005.09.09 02:25수정 2005.09.09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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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도시가 정지됐다. 잔뜩 준비한 감정을 나무라는 것 같다. 자연은 참 오묘하다. 잠시 머리를 씻기 위해 가끔씩 찾아가면 언제나 처음 방문자가 된 기분이다.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내 가슴을 파고드는 노랫가락은 오늘도 신곡(新曲)이다.

돔베낭골은 서귀포시 호근마을 바닷가에 있다. 도시 한켠에 있지만 사람 사는 세상과는 단절에 가까울 정도로 거리를 두어왔다. 그래서 돔베낭골에서는 모두가 이방인이 된다. 마을사람이든, 제주도민이든, 바다건너 찾아온 여행자에게든 동등한 인격이 부여된다.


a 또 다른 세계, 돔베낭골

또 다른 세계, 돔베낭골 ⓒ 김동식


오늘 마음을 비워도 될까

도시의 끝에서 돔베낭골을 이어주는 징검다리는 그 어떤 인연을 빨리 끊으라는 듯 짧고 가파른 계단으로 되어 있다. 하루하루를 무겁게 짓누르던 삶의 조각이 이 순간까지 남아있다면 함께 털어 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도시의 흔적을 꿰차고 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계단을 모두 내려갔을 때 도시는 사라지고 뜻밖의 새로운 세계가 성큼 다가왔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라면 털썩 주저앉았을 법도 하다. 자연의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만큼은 파도소리도, 끼룩끼룩 갈매기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심장의 박동에 맞춰 가슴이 부르르 떨려온다. 나는 오늘 마음을 비워도 될까. 그 빈자리에는 무엇을 채울까. 자연을 채우겠다면 지나친 욕심인가.

a 돔베낭골에서는 도시는 이방인이다

돔베낭골에서는 도시는 이방인이다 ⓒ 김동식


파도와 바람이 빚은 자연의 걸작품

그런데 '돔베낭골'이라는 이름이 궁금하다. 서귀포시 지명유래집(1999년)에 따르면 지난날 '도마'처럼 넓적한 잎사귀가 달린 나무가 많아 이 해안가를 '돔베낭골'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돔베'와 '낭'은 '도마'와 '나무'를 뜻하는 제주말이다.


그 이름의 근원을 좇아 시선이 박힌 곳은 당연히 기암절벽과 어울리고 있는 숲 속이다. 그러나 잎사귀가 넓적한 나무는 눈에 띄지 않고, 그 곳에는 늘 푸른 소나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a 우뚝 선 기둥이 예사롭지 않다

우뚝 선 기둥이 예사롭지 않다 ⓒ 김동식


a 영겁의 세월이 빚어낸 자연의 걸작품

영겁의 세월이 빚어낸 자연의 걸작품 ⓒ 김동식


주상절리를 이루고 있는 수직절벽은 오랜 세월 병풍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신의 조각도 이보다 더할까. 그야말로 파도와 바람이 빚은 자연의 걸작품이다.


a 바다생물을 닮은 갯바위

바다생물을 닮은 갯바위 ⓒ 김동식


a 갑골문자를 연상시키는 돔베낭골 갯바위

갑골문자를 연상시키는 돔베낭골 갯바위 ⓒ 김동식


갯가에 겹겹이 포개진 바위덩어리에도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숭숭 구멍이 뚫리고 깎이고 패인 모습이 마치 갑골문자 같다. 은밀한 신비가 묻어있다.

a 문섬과 섶섬이 그림처럼 떠있네

문섬과 섶섬이 그림처럼 떠있네 ⓒ 김동식


바다에 와서 바다를 잊는 순간

돔베낭골에는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흔적을 지우고 백로(白露)를 넘긴 가을이 제자리 찾기에 열중이다.

바다 동쪽으로는 문섬과 새섬이, 남서쪽으로는 범섬이 떠 있다. 한 폭의 그림같이 그 풍광이 제법 아름답다.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수평선 너머로 고깃배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갯바위 낚시로 망중한을 보내는 사람들은 한발 앞서 자연 속을 헤집고 있다. 바다에 와서 바다를 잊는 순간이다.

내 마음의 풍금이 켜지고 있다.

a 외돌개까지 갈 수 있는 환상의 해안산책로

외돌개까지 갈 수 있는 환상의 해안산책로 ⓒ 김동식


돔베낭골의 해안절벽을 끼고 그 위로 1.7km에 이르는 해안산책로가 있다. 산책로의 끝은 '남주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외돌개이다. 사색의 거리치고는 꽤 긴 편이다. 새소리, 바람소리, 파도소리를 들으며 허겁지겁 살아온 인생길을 더듬어 보는 것도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서귀포여자고등학교 동쪽 사잇길로 500m 내려가면 또하나의 세계가 열립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

눈여겨 가볼만한 주변명소로는 외돌개, 서귀포층패류화석, 소남머리, 이중섭미술관, 서귀포감귤박물관, 거믄여해안경승지, 쇠소깍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습니다. 서귀포여자고등학교 동쪽 사잇길로 500m 내려가면 또하나의 세계가 열립니다. 입장료는 없습니다.

눈여겨 가볼만한 주변명소로는 외돌개, 서귀포층패류화석, 소남머리, 이중섭미술관, 서귀포감귤박물관, 거믄여해안경승지, 쇠소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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