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문경 봉암사에서 있었던 서암큰스님의 영결식에서 조사를 하고 계십니다.임윤수
또한 공의 세계에서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사유작용 등 감각작용도 없고, 빛깔과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비감각적 대상인 원리 등 객관대상도 없으며, 시각의 영역, 청각의 영역, 후각의 영역, 미각의 영역, 촉각의 영역 등 주관 작용도 없음을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라는 구절로 담고 있습니다. 불자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반야심경에는 이렇듯 유독 '없다(無)'는 말이 반복되듯 많이 나옵니다.
어찌 보면 '무'는 수행자가 추구하는 구도의 키워드이며 본질일지도 모릅니다. 소유하고 관계됨에서 오는 굴레가 바로 탐•진•치 삼독의 단초가 되고, 망상의 번뇌를 낳게 하는 원천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없음을, 없다는 것을, 없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인식하기 위해 이렇듯 반야심경에는 도돌이표라도 찍힌 듯 '무'를 반복하여, 없음을 강조하는 가르침으로 남기셨는지도 모릅니다.
구도자의 길을 걷고 계시는 대개의 스님들은 무소유를 강조하고, 무소유한 가시밭길 같은 고행의 삶을 살고 계십니다. 그러다 정작 세수(世壽)를 다해 원적에 들게 되면 본의 아니게 뭔가를 남김으로 무가 아닌 유를 야기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스님이 남기신 사리는 공개여부 및 봉안장소로 알력이 되고 속인들의 입방아거리가 되었습니다. 어떤 스님이 남기신 유무형의 재산이나 영향권은 그 상속권을 놓고 시시비비가 걸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차라리 남기지 않았으면 시비 거리도, 입방아거리도 되지 않았을 텐데 남김, 유에서 파생된 갈등이며 망상의 싸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