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경선 자금을 9월에 줬다?

[추적, X파일의 진실] 검찰 '세풍' 수사기록이 삼성 부실수사 증거

등록 2005.09.15 22:03수정 2005.09.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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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최근 입수한 '세풍 사건' 검찰 수사 및 공판기록과 'X-파일' 내용을 면밀히 비교분석하면서 두 기록이 정확히 일치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또한 이회창 후보측에 건네진 삼성 비자금의 전달자가 홍석현 사장임을 밝혔으며, 검찰이 불법자금 50억원을 알고있으면서도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세풍수사에서 삼성에 대한 조사가 왜 '부실수사'였다는 주장이 나오는지를 밝힙니다. <편집자주>
a 김인주 상무 진술조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세풍 사건 검찰 수사기록 자체가 '부실수사'의 증거가 되고있다.

김인주 상무 진술조서 아이러니컬하게도 세풍 사건 검찰 수사기록 자체가 '부실수사'의 증거가 되고있다.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가 최근 입수한 '세풍' 수사 및 공판 기록에 따르면, 지난 98년 세풍 수사에서 적어도 삼성에 관해서는 부실 수사를 면치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다른 언론들도 세풍 수사기록을 근거로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하자, 김종빈 검찰총장은 14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97년) 대선자금 내용은 여러분이 잘 아시듯 이미 수사가 다 됐던 부분들이며, (수사 결과) 당시 기소할 수 없었거나 (수사할) 필요가 없어서 안했던 것을 검찰이 굳이 발표하지 않았던 것일 뿐"이라면서 "명백한 것은 지금 제기되고 있는 여러 의혹 역시 이미 수사가 다 됐다는 것"이라고 반박성 해명을 했다.

그러나 검찰총장의 해명과 달리, 세풍 수사기록에 따르면, 당시 수사팀은 98년 11월 27일 당시 김인주 삼성그룹 재무팀장(상무이사·현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을 불러 이회성씨에게 전달한 10억원에 대해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고 삼성 계열회사 5·6개 회사에 기밀비로 처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서도 사법처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김인주의 진술 "영수증 처리 안하고 계열사 기밀비로 처리했다"

a 이번에는 진실을 밝혔을까? 김인주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이 지난 6일 밤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서울 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검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번에는 진실을 밝혔을까? 김인주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이 지난 6일 밤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서울 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은 후 검찰청사를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백승렬

또 지난 13일에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차장의 비밀' 제목의 <오마이뉴스> 보도가 나가자, 검찰과 일부 언론은 현대 비자금 사건에서 보듯이 당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차장은 불법자금을 주고받기에 좋은 '제3의 장소'일 뿐,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거주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X-파일 녹취록에는 홍석현 사장이 이학수 삼성그룹 비서실장에게 "그 전에 귀찮더라도 이회성이를 일단 '우리집'으로 오라고 하여 정보교환도 좀 하고…"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홍 사장이 일단 이회성씨를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자택으로 불러서 대선판세에 관한 정보교환 등 얘기를 나눈 뒤에 주차장에 가서 현금을 실어줬다는 얘기다.

98년 11월 27일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당시 이승구 대검 중수1과장(현 법무부 감찰관)이 계좌추적을 통해 밝혀낸 10억원(10만원권 자기앞수표 1만장)을 어떤 방법으로 조달했는지에 대해 묻자 김인주 상무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신세계백화점 김○수 자금담당 이사에게 전화를 해 백화점 각 점포 등에서 입금된 자기앞수표 중 배서가 되지 않은 10만원권 자기앞수표를 구해 10억원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였고, 그 교환자금은 삼성 계열회사 5~6개 회사에서 기밀비 등으로 처리했다"고 진술했다.


이승구 중수1과장과 김인주 상무의 문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문: 위와 같이 지원된 자금 10억원에 대하여는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는가요.


답: 일체 보고를 하지 않았고, 금번 문제가 발생되어 비서실장에게 보고하였을 뿐입니다.

문: 위 10억원에 대한 영수증 처리는 하였는가요.

답: 하지 않았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김 상무가 이회성씨에게 건넨 10억원은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은 '불법자금'이지만 윗선에는 보고하지 않고 자기 선에서 '결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검찰은 더이상 캐묻지 않았다

a 앞뒤 안맞는 진술조서 김인주 상무이사는 97년 4월 이회성씨가 '경선자금'을 요청했는데 7.21 전당대회가 끝난지 두 달이 지난 9월에 '경선자금 10억원'을 전달했다는 앞뒤 안맞는 진술을 했다.

앞뒤 안맞는 진술조서 김인주 상무이사는 97년 4월 이회성씨가 '경선자금'을 요청했는데 7.21 전당대회가 끝난지 두 달이 지난 9월에 '경선자금 10억원'을 전달했다는 앞뒤 안맞는 진술을 했다. ⓒ 오마이뉴스

그뿐이 아니다. 검찰의 진술조서를 톺아보면, 김 상무가 그룹 오너(이건희)와 그의 처남인 홍석현 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앞뒤가 안맞는 거짓진술로 자기 선에서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다음은 역시 이승구 중수1과장이 김인주 상무를 신문한 내용이다.

문: 진술인은 이회성을 어떤 경위로 아는가요.

답: 97년 4월경 저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성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의 소개로 서울 시내의 어떤 식당에서 이회성을 소개받아 알게 되었습니다.

문: 당시 이회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는가요.

답: 그렇습니다. 당시 이회성은 신한국당 경선주자의 하나인 이회창 후보의 친동생이라고 하면서 '경선자금을 도와줄 수 없느냐'는 식으로 요청을 하길래 본인으로서는 이를 거절할 수는 없고, 일단 '알았다'고 승낙을 하였던 것입니다. (…중략…)

문: 위와 같이 교환된 자기앞수표 10억원은 어떤 경위로 전달되었는가요.

답 : 97년 9월 초순, 누가 먼저 전화를 하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주차장에서 이회성을 만나 제가 007가방(두께 15㎝ 정도로 상당히 두꺼움)에 담아간 자기앞수표 10억원을 직접 전달하였습니다.

문: 자기앞수표가 마련되었다고 진술인이 직접 이회성에게 연락을 한 것은 아닌가요.

답: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회성은 97년 4월경 처음 만난 이후 본인으로부터 연락이 없으니까 그가 독촉전화를 2~3 차례 하였던 것으로 기억되며, 특히 위와 같이 수표를 전달할 무렵에도 전화가 걸려와 본인이 위 장소에 나가서 전달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이회성은 '경선주자로 확정되었다'고 하면서 '이미 경선과정에서 상당한 자금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금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습니다.


이회창 후보는 대선후보 경선 때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까

김 상무의 진술에 따르면, 97년 4월에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사람'(전후 맥락으로 볼 때 홍석현 사장으로 추정됨)으로부터 이회성씨를 소개받아 그 자리에서 경선자금 지원을 요청받았는데,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9월초에야 문제의 자기앞수표 1만장(10억원)을 전달했다는 얘기다.

따라서 김 상무의 진술에 따르면, 이 후보는 7·21 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되기까지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는 얘기다. 또 김 상무의 진술에 따르면, 4월에 '경선자금'을 지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7·21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확정된지 두 달이 지나서 '경선자금'을 제공했다는 자가당착에 빠진다.

a "삼성수사 의혹은 없다"? 삼성그룹의 대선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관련해 "과거에 모두 수사가 이뤄졌던 사안"이라고 밝힌 김종빈 검찰총장이 14일 오전 자원봉사를 위해 신림동 공립 정신지체 특수학교인 서울정문학교 찾아 장애학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삼성수사 의혹은 없다"? 삼성그룹의 대선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관련해 "과거에 모두 수사가 이뤄졌던 사안"이라고 밝힌 김종빈 검찰총장이 14일 오전 자원봉사를 위해 신림동 공립 정신지체 특수학교인 서울정문학교 찾아 장애학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서명곤

또 "당시 이회성은 '경선주자로 확정되었다'고 하면서 '이미 경선과정에서 상당한 자금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금이 부족하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는 김 상무의 진술도 꼼꼼히 따져보면 시점이 안맞는다. 두 사람이 7·21 경선 이후 한 달 보름여가 더 지난 9월 6일에 만났는데 '경선주자로 확정되었다'고 하면서 대선자금을 요청했다는 것은 앞뒤가 안맞는다.

결국 이는 검찰의 계좌추적으로 꼬리가 밟힌 자기앞수표 10억원 외에도 경선기간에 건넨 수십억원과, 경선 레이스가 시작되기 전에 건넨 15억원(안기부 X-파일 97년 4월7일자 녹취록이 근거)의 '꼬리'를 자르기 위한 거짓전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김 상무의 거짓진술을 곧이곧대로 믿고 더이상 캐묻지도 않았고, 불법자금 제공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삼성을 기소하지 않았다.

한편 참여연대 등으로 구성된 'X-파일 공동대책위원회'는 15일 성명에서 "오마이뉴스가 보도한 김인주 재무팀장의 진술조서에 따르면, 김인주 팀장은 수표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삼성그룹 계열사 5~6곳의 기밀비로 처리했다고 진술했다"면서 "이는 불법자금의 출처가 이건희 회장의 개인재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 각 계열사에서 조달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회사자산을 합법적인 범위내의 기업경영 행위에 사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불법적인 용도에 사용한 것인 만큼 형법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의 배임 및 횡령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아울러 세풍사건을 수사했던 대검 중수부가 당시에 불법대선자금이 회사자금이라는 단서를 김인주 재무팀장의 진술을 통해 확보했음에도 이를 덮어버린 것으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검찰은 분명히 해명해야 할 것인데, 특히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이었던 김종빈 현 검찰총장은 이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라며 김종빈 총장을 직접 겨냥해 반박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검찰의 세풍 수사기록이 부실수사의 증거로 활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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