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진술'이 사실이면 이회성은 '법정 위증'

[추적, X파일의 진실] 김태원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 진술과도 상충

등록 2005.09.22 16:14수정 2005.09.23 11:20
0
원고료로 응원
a 60억에서 30억원으로, 7년만의 진술 변경 지난 17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치고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는 이회성(오른쪽)씨와 정인봉 변호사.

60억에서 30억원으로, 7년만의 진술 변경 지난 17일 새벽 검찰 조사를 마치고 승용차를 타고 귀가하는 이회성(오른쪽)씨와 정인봉 변호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지난 98년 세풍(稅風) 사건으로 구속된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동생 이회성씨가 최근 검찰의 재조사에서 자신의 7년 전 진술조서 내용을 부인했다. 이른바 'X-파일' 사건과 관련, 삼성으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 9월 16일 검찰에 소환돼 피고발인 조사를 받은 것에 대해 이씨의 변호를 맡은 정인봉 변호사는 21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씨가 검찰 조사 때 '지난 97년 삼성 측으로부터 받은 돈은 60억원이 아니라 1997년 9~11월 사이 3차례 걸쳐 총 30억원'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7년 전의 '60억' 진술과 현재의 '30억' 진술, 과언 어느 쪽이 진실일까?

현재 이 '진실게임'을 풀 수 있는 단서는 검찰의 세풍 수사 및 공판기록과 X-파일 녹취록,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진술이다. 물론 이 등장인물들은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하는 '같은 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60억-30억 진실게임

a 7년 전의 진술 98년 작성된 검찰의 이회성씨에 대한 피의자신문 조서중 일부. 삼성 대선자금과 관련해 이씨는 "97년 9월 초순경 10억원, 10월 초순경 10억원, 10월 하순경 30억원, 11월 초순경 10억원 등 압구정동 모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았다"고 진술했다.

7년 전의 진술 98년 작성된 검찰의 이회성씨에 대한 피의자신문 조서중 일부. 삼성 대선자금과 관련해 이씨는 "97년 9월 초순경 10억원, 10월 초순경 10억원, 10월 하순경 30억원, 11월 초순경 10억원 등 압구정동 모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았다"고 진술했다. ⓒ 오마이뉴스

앞서 13일 <오마이뉴스>는 검찰의 98년 12월 세풍사건 수사 기록을 입수, 이씨가 "97년 9월 초순경 압구정동 모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10억원, 10월 초순경 같은 장소에서 10억원, 10월 하순경 같은 장소에서 30억원, 11월 초순경 같은 장소에서 10억원 등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이씨가 '60억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검찰에서뿐만이 아니다. 지난 99년 1월 23일자 제1회 공판조서에 따르면, "피고인은 삼성그룹측으로부터 97년 9월 초순경부터 같은해 11월 초순경까지 4회에 걸쳐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라는 검사의 법정신문에 "예, 있습니다"라고 분명하게 시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삼성그룹 관련 공판조서 전문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삼성그룹 관련》

문: 피고인은 삼성그룹측으로부터 97년 9월 초순경부터 같은해 11월 초순경까지 4회에 걸쳐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예, 있습니다.

문: 삼성그룹으로부터 받은 60억원은 어떻게 사용하였던가요.

답: 당에 전달을 하였습니다.

문: 동 금원도 김태원 재정국장에게 전달하였다는 말인가요.

답: 예, 그렇습니다.

문: 60억원은 부피상 상당히 큰 금액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동 금원을 김태원 재정국장에게 전달하였던가요.

답: 공소사실 이외의 사항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따라서 이씨가 이제 와서 돈 받은 시기(97년 9∼11월)만 시인할 뿐, 돈을 받은 회수(4회→3회)와 액수(60억원→30억원)를 변경하는 것은 자신이 직접 서명 날인한 검찰 진술조서 뿐 아니라 법정 진술마저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정인봉 변호사는 이씨가 최근 진술을 변경한 배경과 관련해 "그때는 그(삼성 돈) 문제로 처벌을 받지 않을 상황이었고, 수사의 핵심도 아니었다"면서 "그래서 본인도 이렇게 진술하나 저렇게 진술하나 크게 핵심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신경쓰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씨의 공판조서에 따르면, 이씨는 법정에서 아무렇게나 진술한 것이 아니었다. "공소사실 이외의 사항이기 때문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이유를 제시했다.

a 법정에서의 진술 99년 1월 이회성씨 공판조서중 일부. 이씨는 당시 법정에서 "삼성그룹측으로부터 97년 9월 초순경부터 같은해 11월 초순경까지 4회에 걸쳐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은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

법정에서의 진술 99년 1월 이회성씨 공판조서중 일부. 이씨는 당시 법정에서 "삼성그룹측으로부터 97년 9월 초순경부터 같은해 11월 초순경까지 4회에 걸쳐 총 60억원을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받은 사실이 있다"고 시인했다. ⓒ 오마이뉴스


이회성은 법정에서도 분명히 60억을 말했다

이회성씨의 30억 진술은 세풍 수사 및 공판기록에 등장하는 또다른 '같은 편' 핵심 인사인 김태원 당시 한나라당 재정국장의 진술에 의해서도 부인된다.

김씨는 98년 9월 세풍 사건이 터지자마자 한나라당의 피신 권유로 도피했다가 99년 7월에 체포, 구속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씨는 97년 11월말~12월 2회에 걸쳐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으로부터 모금한 30억원(현금 2억원씩 담은 여행용 가방 15개)을 강남구 논현동 경기고 앞에서 받아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로 직접 운반하는 등 약 95억원의 차명계좌 금액을 관리했다.

검찰의 계좌추적 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친구가 지점장으로 있는 모 은행 강동역지점과 마장동지점에 각각 55억1800만원과 41억2천만원을 입금해 차명계좌로 관리했다. 특히 이 가운데 김인주 삼성 구조조정본부 상무이사(현 삼성 구조본 사장)로부터 받은 10만원권 자기앞수표 1만장(10억원)이 입금된 강동역지점 차명계좌의 경우, 현금 입금액(24억7천만원)과 발행자를 확인하기 어려운 10만원 자기앞수표 입금액(26억원)이 전체의 92%나 된다.

고액일수록 안전하게 수표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인들의 통상적인 금융거래 유형이다. 그런데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나 종구로 관훈동 당사에서 가까운 주거래은행을 놔두고 굳이 멀리 떨어진 타은행의 강동역지점에까지 대형 여행용 가방 10여개(1개에 2억원씩)를 싣고 가서 입금한 것은 이것이 출처를 보호해야 할 '특별한 자금'임을 암시한다. 결국 입금 유형에 비추어, 현금 10억+15억원과 자기앞수표 10억+20억원의 상당액이 '삼성측 인사'로부터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김씨는 그런데 99년 7월 13일 대검 중수부 조사실에서 받은 피의자신문조서(제3회)에서 "이회성을 언제 처음 알게 되었냐"는 검사의 신문에 "99년 11월 초에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실에서 이회성을 처음 만나 알게 되었다"고 진술했다. 김씨의 진술은 이미 검찰 조사로 확인된 동부그룹 불법 대선자금 30억원을 받은 '시점'부터 시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아무튼 당시 지익상 검사와 김씨의 문답은 이렇게 이어진다.

문: 이회성이 대선자금을 거두는 데 피의자가 했던 역할은 무엇인가요.

답: 이회성이 거둔 대선자금을 당비로 입금시켜 관리하는 것이 저의 주된 임무였습니다.


또다른 '같은 편' 김태원 한나라당 재정국장의 진술

a 99년 7월 14일 김태원 한나라당 전 재정국장이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 고개를 숙인채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99년 7월 14일 김태원 한나라당 전 재정국장이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의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혐의로 구속, 고개를 숙인채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옥현

이어 다음날 피의자신문(제4회)에서 김씨는 "피의자가 이회성씨로부터 받아온 자금은 얼마나 되었나요"라는 검사의 신문에 "전회 진술한 2회에 걸쳐 30억원을 이회성씨로부터 받아온 것을 포함해, 모두 약 4~5회에 걸쳐 매번 20억원, 15억원, 10억원 정도였으며 총 금액은 약 60~70억원 상당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씨는 7월 18일 피의자신문(제6회)에서 검사가 "피의자는 5~6회에 걸쳐 이회성이 기업체로부터 거둔 자금을 운반한 사실이 있는가요"라고 파고들자 이렇게 한발 물러섰다.

"예, 그러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것은 동부그룹의 것을 포함해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4~5회라고 진술한 것은 동부그룹의 것을 포함하지 아니한 경우입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운반해준 자금액이 60~70억원 정도가 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요컨대 김씨가 이회성씨를 통해 받은 '삼성 돈'을 차명계좌에 넣어 특별히 관리한 행태에 비추어 동부그룹으로부터 받은 30억원을 제외한 30~40억원이 이씨가 삼성측 인사로부터 받은 '최소한의 불법 대선자금'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앞서의 진술에 따르면, 김씨는 97년 11월초에 이회성씨를 처음 만난 것으로 돼있다. 그런데 이회성씨의 진술에 따르면, 이씨는 이미 97년 9월에 삼성 돈 10억원(10만원권 자기앞수표 1만장)을 김태원 국장에게 건네 차명계좌로 따로 관리했다. 그렇다면 이회성씨가 김태원 국장에게 건넨 삼성돈은 이미 40~50억원이 된다. 이씨의 '30억 진술'은 자연스럽게 배척된다.

결국 이처럼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점을 엇갈리게 진술한 것은 초겨울부터 불기 시작한 '세풍'(국세청 압력)과는 무관하게 여름부터 삼성측이 '특별한 인사'를 통해 자발적으로 낸 '특별한 자금'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회성은 '위증'을 한 것일까

이씨의 '삼성돈 30억' 진술이 진실이라면 이씨는 법정에서 위증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이씨의 최근 진술은 세풍 사건으로 함께 구속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은 김태원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의 진술 등에 비추어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씨가 7년 만에 진술을 번복한 것은 삼성 측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가법)상 횡령 또는 배임 혐의를 피할 수 있도록 일부러 대선자금 수수 액수를 낮춘 것이라는 추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경가법에 따르면 횡령(배임) 액수가 50억원을 넘으면 공소시효가 10년인 반면, 5∼50억인 경우는 공소시효가 7년이어서 지난해에 이미 종료됐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