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루쉰의 비판의식은 다 죽었는가

[데일리차이나]루쉰 탄생 124주년에 부쳐

등록 2005.09.28 13:57수정 2005.09.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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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루쉰(魯迅) 시대에 문학은 힘이 있었다. 루쉰이 의학을 버리고 문학의 길에 들어선(弃醫從文) 것도 문학으로 국민성을 개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1881년 9월 25일 태어난 루쉰은 봉건의식에 젖어 있던 무지한 중국인을 일깨우기 위해 일생을 바쳤으며 그가 죽을 때 중국인들은 그의 시신을 '민족혼'이라고 쓴 비단으로 감싸 추모의 뜻을 표했다.

베이징 루쉰박물관의 루쉰이 죽었을 때 중국인들이 그에게 바친 '민족혼'이란 글귀.
베이징 루쉰박물관의 루쉰이 죽었을 때 중국인들이 그에게 바친 '민족혼'이란 글귀.김대오
루쉰이란 한 지식인의 힘은 분명 위대했고 루쉰의 계몽문학은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했다. 루쉰은 촌철살인과도 같은 그의 잡문을 통해 중국인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불굴의 투쟁정신으로 외세와 봉건세력과 마주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루쉰은 중국문단의 주장이며 위대한 사상가, 혁명가, 문학가다"라고 높이 평가해 중국에서 루쉰이 정치적으로 지나치게 우상화된 측면도 없진 않다. 중국현대문학의 절반이 루쉰이고 루쉰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 된 중국문단의 풍토에서 역설적으로 루쉰의 투철했던 비판의식이 그 루쉰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루쉰이 일본유학 시 보게 되는 러일전쟁에 관한 환등기에서 주위에 몰려든 각성되지 않은 많은 중국인들은 중국인이 처형되는데도 그저 웨이칸런(圍看人, 구경꾼)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동족의 처형을 지켜볼 뿐이었다.

최근 베이징 마라톤대회에서 한 선수가 레이스 도중 쓰러지는 일이 있었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모여들었지만 그야말로 웨이칸런이었다. 그 선수를 업고 근처 응급차로 달려 간 것은 한 외국시민이었다. 자신의 이익이 관여하지 않는 문제에 철저히 무관심 하는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루쉰이 1904년 보았던 환등기 속의 중국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루쉰의 케리커쳐-베이징 루쉰 박물관에서.
루쉰의 케리커쳐-베이징 루쉰 박물관에서.김대오
루쉰이 그토록 열망했던 국민성 개조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중국인의 국민성에서 보이는 병폐현상은 혹시 루쉰에게 있었던 그 철저한 비판의식이 증발했기 때문은 아닐까.

최근 중국을 방문하여 신성한 충격으로 대륙을 뒤흔들고 있는 타이완의 비판적 작가이자 정치인인 리아오(李敖)는 그런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아오는 루쉰은 원래 산 위의 작은 눈뭉치였는데 중국 정부에 의해 굴려지며 거대한 눈덩이가 되었다고 전제하고 루쉰의 문장은 거칠고 일본문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루쉰은 무엇이든 비판하고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붓대를 들었는데 중국공산당의 철저한 언론 통제 하에서 루쉰정신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중국의 지식인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 뿐만 아니라 리아오는 중국공산당에 대해서도 "공산당은 역사에서 나온 것으로 역사에서 나온 모든 것은 역사 속에서 소멸한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인용하며 중국공산당도 언젠가는 소멸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인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중국공산당이 더욱 잘 봉사할 수 있도록 공산당을 유연하게 만들어가야 한다"고 우회적으로 공산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베이징루쉰 박물관 입구에 있는 루쉰의 석고상.
베이징루쉰 박물관 입구에 있는 루쉰의 석고상.김대오
리아오는 모든 절망과 압제에 반항하며 온 몸으로 소리를 질렀던 루쉰의 정신은 오간 데 없고 오직 자신들의 먹고 살기에만 정신이 없는 베이징대학 학생들에 대해서도 "베이징대학이 비겁해졌다"는 말로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는 탱크와 총칼에 앞에 말도 꺼내지 못하고 정치문제에는 중국정부의 '접근 금지' 폴리스라인이 굳건히 쳐져 있다. 다만 경제적으로 '먹고 살기'에만 정신을 잃고 돈을 향해 나아갈(往錢走) 뿐인 중국의 현실에서 출생 124주년을 맞이하는 루쉰의 비판의식이 그리고 타이완작가 리아오의 비판적 충고가 중국인들을 새롭게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차이나]는 그날 그날의 중국 근현대 소사(小史)를 전하며 중국 역사 속의 오늘의 의미를 되새겨 보려고 합니다. 이 글은 국정넷포터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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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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