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부탁을 해왔다. 대학교 사회복지과정에서 학점을 받기위해 장애인분을 도와야 하는데 같이 돕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마침 군대를 다녀와서 집에서 쉬고 있었기에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승락했다. 그리고 찾아가서 만난 아주머니. 10년이나 더 되었을까? 어느날 길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1급 장애인이 된 아주머니, 그 분은 우리 두 사람을 조심스레 집으로 받아들였다.
평상시 집안청소, 설거지, 잔심부름 정도의 가벼운 일을 하고, 한번씩 아주머니와 집 주변 수성못에 나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걸으며 얘기하고,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적은 돈이지만, 고기를 사서 맛있게 요리도 해먹었다. 아주머니는 몸이 많이 불편하시기에 집 밖에 나갈 때는 늘 휠체어를 타셔야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좀처럼 연락하지 않던 분이었는데, 나는 순간 긴장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한번씩 만나는 친구 장애인분이 바다로 해수욕을 가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물론 바다에 가는 데는 나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난 별 생각없이 "그러지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 말이 불러올 엄청난 결과는 생각지 못했다.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경북 포항에 위치한 화진 해수욕장, 그곳의 행사는 내가 소속되어 있는 대구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주최하는 여름철 행사가 아니었고, 다른 복지기관에서 주최한 행사로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벌써 수많은 텐트와 장애인분들 그리고 그 장애인분들을 돕는 개인자원봉사자들로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휠체어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사장을 이리저리 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었다. 원래 휠체어를 타고 모래사장에 오면 이동하는데 많은 힘이 들기에 행사를 주최하는 기관에서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분들이 모래사장은 많이 피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 너무나 참석하고 싶었던 우리 아주머니는 그 사실을 잠시 덮어두고 나를 데리고 애써 그 길을 갔던 것이다. 십년만에 처음일까? 사고 나기 전에 가족과 함께 찾았던 그 바다를 생각하고 계신 걸까? 파란 하늘과 파란 바다, 갈매기, 시원한 바람, 그리고 옛날 생각이 아주머니의 얼굴로 스쳐지나간 듯 아주머니는 해변에 조용히 앉으셔서 그렇게 미소를 지으며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저녁을 먹고 해변축제를 품바공연, 트로트가수의 무대로 마무리한 뒤 잠자리에 들 시간, 아주머니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이 힘드셨는지, 찾아오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아니면 이것저것 먹은 것이 탈이 났는지 "손군, 손군" 하시며 나를 하염없이 찾고 계신 것이었다. 나는 잠시 밤바다를 감상하러 나간 시간이었다. 같은 텐트에 계시던 눈이 좀 안 좋으신 장애인 분께서 멀리 떨어져 있던 나를 부르러 오셨다. 허겁지겁 텐트로 돌아와 아주머니를 모시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옆에서 간호를 해드린 뒤 그 날은 그렇게 아주머니 옆에서 조용히 잠을 청했다.
역시 휠체어를 타고 해변을 다니는 것은 무리였나 보다. 둘째 날이 되니 아주머니도 역력히 힘들어하시는 것 같고, 주위의 장애인분들도 아주머니에게 "하루 정도 구경했으니 이젠 집으로 돌아가라"며 싫은 소리를 자꾸하셨다. 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아주머니의 눈가에 깃드는 것 같았다. 주위의 싫은 소리에 동조라도 하듯 장내에 방송이 울렸다. "점심을 먹고 대구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준비하고 나오라"는 것이었다. 해변에 왔을 때부터 계속 "손군, 힘들지? 힘들면 말해!"라고 말씀하셨던 아주머니가 이젠 마지막으로 한번 해변을 보자고 나에게 청했다. 내가 힘이 좋았더라면 아주머니를 번쩍 안고 이곳저곳 다녔겠지만, 그러지 못했던 내가 참 미안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본 바다의 추억과 함께, 그 해 여름은 지나갔다. 그 후 몇 달을 더 아주머니와 시간을 보내다, 학교에 복학하기 위해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아주머니와 함께 한 기간 개인적으로 너무나 많은 소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어렴풋 느꼈던 봉사라는 의미를 새롭게 새길 수 있었고, 남을 도울 때만 느낄 수 있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감정, 그리고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이 아직 세상에 많이 있음에 감사할 따름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