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맛깔나게 한 번 써봅시다

박용수씨가 지은 <새로 다듬은 우리말 갈래사전>

등록 2005.10.09 13:10수정 2005.10.10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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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리 것은 다 좋은 것일까

지금은 고인이 되신 박동진 명창이 TV 광고에서 도포에 갓 쓰고 부채를 들고 나오셔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말씀하시던 90년대 TV 광고 기억나실 것이다. 나는 그 광고가 나올 때마다 선생의 아니리 아닌 아니리에 "아먼"이라는 추임새를 붙이곤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뭔가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한국 사람이니까 당연히 우리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당위성인가, 아니면 얼토당토 않은 어거지인가. 우리 것이기기만 하면 그것이 돌인지, 옥인지조차 가리지 않고 무조건 좋다고 부화뇌동해야 한단 말인가.

이와 비슷한 말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말이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다. 아무런 논리적 귀착점이 없이 무작정 들이대는 이 말은 이제 하나의 관용구처럼 굳어져 버렸다. 우리 문화나 음식에 대한 프로를 진행하는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늘어 놓다가 밑천이 떨어질 만하면 이 말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곤 한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거, 맞아?

오래 전 이야기 한토막이다. 장정일 원작, 김아라 연출의 <이디푸스와의 여행>이라는 연극을 구경 갔을 때다. 시골 사는 내가 일부러 대학로까지 그 연극을 보러간 것은 그 연극의 음악을 피아니스트 임동창이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난 초등학교 6학년 때 한 반 친구다.

연극이 끝나고 임동창과 그의 친구들 몇 몇과 함께 건너편에 있는 호프집에서 뒤풀이를 할 때였다. 무슨 이야기 끝이었던가. 누군가의 입에서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흘러 나왔다.

성질 급한 내가 그 말에 즉각 토를 달고 나섰다. 그런 말도 안되는, 아전인수에 지나지 않는 말일랑 앞으로 삼가했으면 좋겠다. 그 말 대신 "가장 원시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더 합리적이지 않느냐고 설레발을 쳤다.


나는 음악에 대해선 대책 없는 문외한이다. 그러나 사물놀이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바탕에는 원시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타악은 어느 민족에게나 마찬가지로 가장 원시적인 음악의 형식이다. 원시적인 리듬은 인간이 가진 시원(始源)에 호소하기 때문에 어디서나 다 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가 품은 생각인 것이다.

우리 음악을 대중화 시키는데 앞장서 온 김영동은 아마존 지역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낸 <아마존>이란 음반을 내면서 음반 뒤에 덧붙인 짤막한 글 속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디오를 보면서 문명이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현대의 삶이란 무엇인가?를 나에게 자문하게 된다. 특히 인디오들의 음악에서 우리 전통음악을 느꼈다는 점이 나에게는 참으로 여러가지 의미를 주게 되었다.

김영동이 지구의 반대편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서 '우리 전통 음악을 느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찾는다면 소리의 원시성, 시원성에서 그 연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앞서의 내말을 한 마디로 간추린다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진 맹목에 가까운 자기애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좋아하던 싫어하던 세계화는 벌써부터 진행되고 있으며, 그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지나친 아전인수나 배타적인 감정은 그다지 쓸모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 역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는 한국인이라는 숙명의 굴레를 쓰고 사는 사람이다. 나도 모르게 다가오는 핏줄의 땡김을 어쩔 것인가. 나이들수록 점점 더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는 나를 느끼곤 한다.

될 수 있으면 우리 음악을 들으며 살려고 애쓰고, 한 줄의 글을 쓰더라도 입에 밴 한자어 대신에 우리 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런 내 노력이란 것들은 너무나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들이라서 어디 내놓을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우리말을 뜻갈래와 쓰임새에 따라 나눈 사전

<새로 다듬은 우리말 갈래사전>
<새로 다듬은 우리말 갈래사전>서울대학교 출판부
오늘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만드신 지 559년이 되는 뜻깊은 한글날을 맞아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다. 박용수씨가 쓴 새로 다듬은 <새로 다듬은 우리말 갈래사전>이다.

저자인 박용수씨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야운동가들에게 유명한 사진가였다. 그는 경남 진양 출생으로 고등학생 때였던 18세에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은 뒤 사진가가 된 분이다. 시위 등의 현장을 포착하는 사진을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에 떨쳐나선 분이다.

그러다가 고 문익환 목사와 알게 된게 계기가 되어 문학과 사진을 접고, 우리말 정리와 연구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새로 다듬은 우리말 갈래사전>은 1989년 한길사에서 처음 나왔던 <우리말 갈래사전>과 1994년 서울대 출판부에서 냈던 <새 우리말 갈래사전>을 새롭게 다듬고 또 올림말도 크게 늘린 것이다.

저자는 생각과 사물에 딱 들어맞는 낱말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길잡이 구실을 할 수 있는 작문용 사전을 엮어 보고자 하는 의지에서 이 사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갈래 사전'이란 말을 붙인 것은 우리 고유의 낱말을 모아 그 뜻갈래, 쓰임새에 따라 분류한 사전의 특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 것으로 살아야 삶이 덜 괴롭다

책 속에는 사람, 생활, 문화 등 아홉개의 벼리를 바탕으로 하여 씀씀이에 따라 204개의 갈래로 나누어 제시한 약 7만여개의 우리 고유어가 들어 있다.

나타내고자 하는 뜻에 들어맞는 낱말을 십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으며, 우리 고유의 겨레말만을 올려 우리말의 어휘 실력을 높일 수 있도록 꾸몄으며, 남북한의 말도 함께 올렸다.

사전이란 본디 필요할 때 찾아보기 위한 것이지만, 난 이 책을 사서 처음에는 책의 이곳 저곳을 뒤적거리며 읽었다. 새로 찾아낸 아름다운 우리 말들이 신기했기 때문이다. 비록 책이 나온 지 꽤나 시간이 지났지만, 들어온 말이 토박이 말을 몰아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비춰 보면 이 책이 가진 의미는 오히려 처음 나왔을 때보다 훨씬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것으로 살아야 삶이 덜 괴롭다. 이것은 절대 아전인수가 아니라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결코 '들어온 말'에 대해 맹목적으로 배척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자는 뜻이다. 이 질서를 잃고 흐트러지면 정신도 슬슬 좀 먹기 시작하는 법이다.

이런 국어사전 한 권쯤 곁에 두고 시간나는 대로 한 번씩 들춰보자. 그리고 잊혀지고 파묻힌 우리 고유의 아름다운 겨레말을 찾아내어 실제 생활 속에서 써보면 어떨까. 이 책은 그런 분들에게 길라잡이 노릇을 톡툭이 해줄 것이라 믿는다.

덧붙이는 글 | 책이름: 새로 다듬은 우리말 갈래사전
지은이: 박용수 
펴낸곳: 서울대학교 출판부
책값:2만 5천원

덧붙이는 글 책이름: 새로 다듬은 우리말 갈래사전
지은이: 박용수 
펴낸곳: 서울대학교 출판부
책값:2만 5천원

우리말 갈래사전 - 새로 다듬은

박용수,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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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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